그들은 결국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133)
"그들이 바로를 떠나 나올 때에 모세와 아론이 길에 선것을 만나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로 바로의 눈과 그 신하의 눈에 미운 물건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감찰하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출 5:20-21)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불평과 원망을 치유하고 싶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을 원했습니다. 고통받고, 억압받는 압제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육신적으로 먼저 편안해지고 싶었습니다. 쉬고 싶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계획을 들었을때 한없이 기뻤습니다. 이제 곧 해방의 시간이 다가 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의 중심을 분명히 잘 알고 계셨습니다. 백성들이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만남을 감사하는 것인지, 자신들의 육신의 해방을 더 갈망하는지 정확하게 잘 알고 계셨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인생이 편안해 지는것을 더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백성들보다 더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원하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원하는 것이 육신의 편안함이지, 하나님을 더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더 잘 알고 계셨습니다. 때때로 이적과 기적을 베푸시면서도...백성들의 마음이 하나님께 깊이 향하도록 다듬어 나가고 싶으셨습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은 하나님과 늘 동문서답하고 있었습니다. 육신의 해방과 자유만 갈망할뿐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뜻에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불평했습니다. 견디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에 대해서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미래보다 지금 현실의 안락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혈기와 불만이 금방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문제만 해결하는 분으로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을 끝까지 안아 주셨습니다. 절대로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또, 기다리셨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려고 할때 마다, 하나님은 인내하시고, 사랑해주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깊이 새겨지는것을 하나님은 소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생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 순종할때 삶이 풍요로와지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라파의 치유하시는 하나님. 백성들은 육신의 출애굽과 자유를 원했지만, 하나님은 백성들의 영적인 자유와 치유를 더 원하셨습니다. 백성들의 눈은 현실의 안락에, 하나님의 눈은 하나님 안의 안식에 있었습니다. 그 간격을 사람의 힘으로 줄일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셔야 할 문제였습니다. 출애굽은 이미 약속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말씀 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어 나가십니다. 백성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굴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당장 눈에 보이지 않을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실때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기대하기 시작합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응답이 바로 보이지 않는다면 상당한 마음의 갈등을 겪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영적인 올무과 그물에 자주 걸려 들었습니다. 애굽에서 육신의 노예였을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마귀의 노예가 되어 있었습니다. 애굽에서 오랜 노예생활로 인해서 영적으로 마귀가 만들어둔 영적인 노예 기질이 뿌리깊게 살아 있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 사탄이 불화살을 쏠때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에게 반응하고 있었습니다. 불평, 불만, 원망, 두려움, 의심이었습니다.
사건과 일이 있을때마다 백성들은 예외없이 자주 무너 졌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믿음으로 신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시간까지 기다려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와 갈망으로 부르짖는 모습을 보고 싶으셨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하나님을 경멸하도록 끊임없이 불화살을 쏘아 대었습니다. 신뢰하지 못하도록 역사했습니다. 백성들은 문제가 발생할때마다 원망과 불평으로...사탄의 편에 섰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백성들을 품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그렇습니다. 모세의 중보 기도가 있었기에 그러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까지나 참을수 있으시지만, 지혜의 하나님은 어떻게 하는 것이 백성들을 위하는 길인지 잘 알고 계셨습니다. 훈련과 연단을 통해서 사탄으로 부터 길들여진 영적인 노예 근성을 뽑아 내기를 원하셨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이었습니다. 불평, 불만이었습니다. 불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안에서의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의 입술의 분복은 감사와 찬양입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영혼을 사랑하시겠지만, 특별히 더 사랑하는 영혼일수록 하나님께서는 더 강한 연단을 시키십니다. 하나님의 꿈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영혼이 사탄이 아닌 하나님께 더 깊이 반응하길 원하시기에 하나님의 시간까지 연단시키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숨결에 언제든지 재빠르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치유? 감사와 찬양의 회복. 평안할때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양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을때 우리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수 있습니다. 신앙은 범사에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대한 문제입니다. 자신의 감정대로, 기분대로... 믿고, 찬양하는 것은 자기 중심의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범사에 한결 같은 하나님에 대한 마음입니다. 아무리 사탄의 공격이 거세고, 강하다고 할지라도...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말씀가운데 무엇을 원하시는지 믿음으로 반응하는게 신앙입니다.
사람속에는 그러한 거룩한 본능이 없습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에 유익한대로 하려고 하는 것이 사람의 본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영적인 연단을 시키십니다. 영적인 훈련을 하나님께서 이끌어 나가십니다. 그 어떠한 일에도 하나님께만 반응하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만일, 마귀가 불화살을 쏠때마다...우리가 불평,불만으로 반응하지 않는다면 마귀도 어느 순간에 포기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원하는대로 반응한다면, 그 악한 세력의 역사하는 힘이 더 강해질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는 우리가 좋든 싫든...두가지 선택만 있습니다. 하나님을 선택하느냐, 마귀를 선택하느냐의 인격적인 선택이 창세로 부터 오늘까지 모든 인생에게 주어진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백성들이 기분따라 우왕좌왕하는 것을 마음 아프게 보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음을 슬퍼하셨습니다. 이른비와 늦은비를 주시면서 백성들의 온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이키도록 기다리셨습니다. 누구보다 백성들을 축복하고 싶으셨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어떠한 문제든 하나님을 찾을때 살게 되어 있습니다. 영육간에 풍성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치유되어야 할 하나님의 백성>
첫번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얼굴이 아닌 하나님의 강한 손을 더 기뻐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가서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장로를 모으고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모든 말씀을 전하고 백성 앞에서 이적을 행하니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 보시고 그 고난을 감찰하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출4:29-31)
애굽으로 돌아 오면서, 형 아론을 만난 모세는 하나님의 약속을 전하게 됩니다. 그들은 곧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아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계획을 말하게 됩니다. 이적과 기적을 보여 줍니다. 온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기 시작합니다. "이제서야 하나님께서 고난을 감찰하시고, 해방시키시는구나" 기뻐합니다. 머리 숙여서 경배합니다.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왕에게 가서 하나님의 백성을 보내라고 말합니다. 바로는 조롱합니다. 오히려 더 무거운 짐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워줍니다. 그들의 노역이 더 고통스러워 졌습니다.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즉각 반발합니다.
"그들이 바로를 떠나 나올 때에 모세와 아론이 길에 선것을 만나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로 바로의 눈과 그 신하의 눈에 미운 물건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감찰하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출 5:20-21)
바로 얼마전에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며칠을 못 넘겨서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자신들이 기대했던 일들이 당장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는 해방시켜 주시겠지" 하면서 나름 기대감으로 풍성했었는데...나타나는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가지 일들을 의도적으로 겪게 하실때가 있습니다. 편안할때는 우리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생길때 우리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알게 될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의 계획을 이루어 나가시면서, 동시에 백성들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생각들을 하나씩 들추어 내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문제가 생길때마다 불평과 불만으로 여지없이 쓰러졌습니다.
하나님의 얼굴보다 여호와의 강한 손의 기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기대했던 일들이 일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을 멸시하는 영적인 노예 기질이 뿌리 깊었습니다.
두번째,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눈에 보일때는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뿐이었습니다.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출12:27)
아홉번째 여호와의 재앙이 애굽에 일어난 후에, 하나님은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를 명하십니다. 백성들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찬양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이제 곧 약속하신 말씀대로 출애굽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들 떠 있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행하고 계셨기에, 어렵지 않게 감사할수 있었습니다. 이럴때 백성들은 여호와께 머리를 숙여서 경배합니다. 여호와께서 열번재 재앙을 통해서 애굽의 장자를 치셨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에 즐거웠습니다. 지난 400년동안 억압되어 있었던 그들이 자유의 몸이 되니 행복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살아계신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체험들을 했습니다. 애굽이 어떻게 굴복하는 지도 확실히 보았습니다. 부인할수 없는 증거들을 그들 모두 보았습니다. 그럴때, 하나님은 홍해앞의 막다른 길로 백성을 인도하셨습니다. 바로의 마음을 다시 강팍하게 하셨습니다. 바로와 군대가 뒤따라 왔습니다. 앞에는 홍해, 뒤에는 애굽 군대가 따라 오고 있었습니다.
바로가 가까와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출14:10-12)
이미 여러번에 걸쳐서 여호와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애굽에서 그 어떠한 기적을 통해서 출애굽하게 하셨는지도 선명하게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시되, 백성들의 마음속 깊은 생각도 확인해 보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막다른 골목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홍해 앞에 갇혀진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바로에게 죽게 생겼습니다. 그 순간,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짖긴 합니다. 그러나, 바로 원망과 불평이 시작됩니다. 마귀가 원하는대로 즉각 반응하는 모습입니다. 절대 신뢰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살기 위해서 어느 쪽이든 좋은대로 몸부림 치는 수준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몰랐던 자신들의 영적인 노예기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홍해의 기적을 통해서 건져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시기에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백성이기에 구원하시되,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듬어 나가셨습니다.
세번째, 이스라엘 백성은 늘 먹고 마시는 문제로 불평했습니다.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출15:23-24)
백성들의 관심은 대부분 몸의 편안함이었습니다. 먹고 마시는 문제였습니다. 육신의 평안함이었습니다. 홍해의 기적을 경험한뒤 불과 삼일 길이었습니다. 마라에 도착했습니다.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일하실까 하면서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즉각적인 빠른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었습니다. 그 누룩은 백성 가운데 금방 퍼졌습니다. 죄의 본성이기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도 먹고 마시는 문제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이미 앞서 나가셔서 다 예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만 신뢰하면 됩니다. 마라에서 백성들은 하나님께 여쭈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 즉시, 빠른 불평, 마귀가 원하는대로 즉각적인 반응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백성들의 모습이 마라였습니다. 영혼속에서 단물이 전혀 없는 쓴물만이 가득한 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은 영혼의 깊은 곳을 먼저 치유하십니다. 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것입니다. 먹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초점 맞추도록 하는 것입니다.
네번째, 하나님은 반드시 치유하실 것입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출15:25)
하나님께 부르짖을때는 더 이상 우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문제입니다.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강권적인 개입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작은 부르짖음에도 반드시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문제가 생길때마다 해결하고 싶으신 하나님이지만,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영적으로 백성을 치유하고 싶으셨습니다. 깊은 죄의 본성과 노예기질은 사람의 힘으로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은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노래하기 시작하십니다. 모세가 부르짖을때 나무를 준비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힘으로 안되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과 부활의 생명력으로 치유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새로운 약속입니다.
나무를 물에 던지매 달아졌습니다. 우리의 뿌리 깊은 나약한 영적 모습에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생명이 흘러 넘칠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를 누려야 합니다. 예수를 즐겨야 합니다. 예수안에서 행복해야 합니다. 예수와의 친밀한 교제만이 우리를 변화시킬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예수께서 그 부활의 생명력으로 치유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인생의 처음도, 마지막도 대안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다섯번째,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때, 빨리 돌이켜야 합니다.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출14:23)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는 자 곧 나를 원망하는 자의 전부가...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출14:29-30)
백성들도 애굽과 광야에서 쉽지 않은 길을 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할지라도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원망으로 시작된 출애굽의 여정이 원망때문에 광야에서 죽게 됩니다.
그동안 수많은 기회를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것은 마음 중심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였습니다. 그러나, 기적이 있을 때는 찬양하다가 조금 마음에 안 들면, 즉시 원망해 버리는 그들이었습니다. 하나님도 오래 참으셨습니다. 그들에게 축복의 땅을 약속하셨지만, 백성은 끝까지 하나님은 배반했습니다. 하나님께 인격적으로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도 그들의 모습에 끝까지 참지 않으셨습니다. 그동안 허락하셨던 회개와 축복의 기회를 그들의 어린 자녀들에게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20세 이하의 자녀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을 위해서 연단해 나가실때...그 축복의 그릇으로 먼저 만들어 나가십니다. 축복받을 만한 그릇이 결코 되지 못할때는 하나님도 뜻을 바꾸실때가 있습니다. 그 축복의 그릇의 처음도, 마지막도 감사와 찬양, 신뢰가 가장 중요합니다. 백성들은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결국 광야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축복을 위해서 수많은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마음 중심에 감사, 찬양...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넘칠때는 살게 될 것입니다. 더 풍성하게 주실 것입니다. 구약에서 가장 온전한 세대였던 여호수아 세대였습니다. 광야 세대의 아들과 딸이었습니다. 이들은 부모세대와 달랐습니다. 여호와를 경배하는 것이 마음 안에 깊이 새겨 졌습니다. 감사와 찬양할때 가나안을 어떻게 정복하게 하셨는지...하나님은 분명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의 인격적인 선택이 중요합니다. 성령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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