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Weekly칼럼(101-150)

우리 역시 물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132)

Joseph Lee 목사 2013. 11. 1. 17:05

 

 

우리 역시 물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132)

"그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 이름을 모세라 하여 가로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내었음이라 하였더라" (출 2:10)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은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출2:15)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출3:4) 

<josephlee0212@gmail.com

 

아기 모세는 바로의 손을 피해서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건져진 아들이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애굽에 들어간지 43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400년의 시간이 흘러갔을때...이스라엘 백성은 더 가혹한 대우를 애굽에서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노예로서 살기 위해서 발버둥쳤습니다.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손길이 눈에 보이지 않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학대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번성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다른 곳에 임했습니다. 애굽 사람은 더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고통받으면 받을수록 더 강해집니다. 더 강성하게 됩니다. 배후에서 하나님께서 강한 손으로 붙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고통속에서도 일어날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 받는 다면 그 길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기다렸던 해방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들들이 태어나면 죽이라는 명령까지 왕에게서 받게 됩니다. 백성들은 야곱과 그의 아들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반대로 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일어나기는 커녕 더 큰 핍박과 아픔이 그들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두려웠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고 믿고 있었지만, 그들의 눈 앞의 현실은 상상 이상으로 절박했습니다.

현재의 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도 종종 경험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그렇게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 보지만, 주어진 현실은 이들 이스라엘 백성처럼 처참한 상황에 놓이기도 합니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일수 있겠지만, 아직 하나님께서는 강권적으로 개입하시지 않으실때도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때를 기다리십니다. 아무리 급할지라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가 되어서야 서두르십니다. 그 시간까지는 보호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는 이미 큰 계획이 이루어 지고 있을 시점입니다.

 

진퇴양란의 상황. 바로 왕의 명령이 준엄했습니다. 아들이 태어나면 나일강에 던지고, 딸이 태어나면 살려두라고 합니다. 아우성과 부르짖음 속에서 한 아이가 태어납니다. 아들이었습니다. 태어나서 몰래 키워졌지만, 더 이상 숨길수 없게 됩니다. 갈대 상자에 담아서 떠내려 가게 됩니다. 그것을 누이가 지켜 보게 됩니다.

 

Let it Go. 사람의 힘으로 할때까지 하다가 도저히 못하는 순간이 올수 있습니다. 많은 갈등이 생길 것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방향을 모를때...평안한 가운데 상황을 하나님의 손에 온전하게 맡겨 드릴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 우리가 할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아기를 더 이상 키울수 없어서...기도하면서 아들 모세를 갈대 상자에 담아서 물에 띄웁니다. 그 상자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 나일강에서 목욕하던 바로의 딸에게로 정확하게 떠내려 갑니다. 하나님께서 간섭하고 계셨습니다. 그 아기를 보던 바로의 딸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십니다. 마음을 강팍하게 하셨다가 부드럽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 순간, 바로의 딸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하셨던 일입니다.

더 이상 할수 없을때...때로는 우리 손에서 모든 것을 놓을 때가 있습니다. Let it go의 상황입니다. 그렇게 할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반드시 책임지시는 상황입니다.

이미 많은 기도를 쌓았다면...하나님에 대한 마음이 간절하다면...이 모든 상황은 이미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정확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를 담고 있었던 갈대 상자는 바로의 궁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애굽의 왕자로 키워 지기 위해서 입니다. 더 이상 할수 없을때 하나님은 개입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실 시간이십니다. 모세의 엄마는 아기를 더 이상 키울수 없어서 하나님의 온전하신 손에 맡겨 드리게 됩니다. 그 손에 이끌려서 바로의 궁안에서 키워지게 됩니다. 죽어야 될 아이가 바로의 궁안에서 왕자의 신분이 되게 됩니다. 이미 하나님의 큰 섭리와 계획이 있었지만...믿음으로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그 기도의 고백을 하나님은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간섭. 그 믿음에 대한 대가는 생명이었습니다. 모세가 살게 됩니다. 궁에서 자라게 됩니다. 믿음의 어머니 역시 모세의 유모가 되어서 삯을 받고 아들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갚아 주십니다. 모세의 어머니의 믿음을 사용하셨습니다. 그 믿음은 모세를 구할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도록 돕는 리더가 되는사람을 키우는 산파역할을 하게 됩니다. 아기가 자라나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의 자부심을 잊지 않도록 가르쳐 줍니다. 깊은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도 가르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세는 아직 자신의 의와 열정이 훨씬 더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은 모세의 어머니가 가르쳐 준다고 되는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야 합니다. 은혜로 주실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강요한다고 하나님을 믿을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어린 시절 하나님에 대해서 들었지만...하나님께서 호렙산에서 부르실때까지 살아 있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지 못했습니다.

 

훈련의 시간과 강도. 우리는 어릴때부터 하나님을 뜨겁게 믿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을 일찍 부터 살아 온 사람들을 부러워 할때가 많습니다. 사무엘이 그랬습니다. 어릴때부터 성전에서 자랐습니다. 다윗도 10대때부터 이미 뜨거운 믿음으로 흘러 넘쳤습니다. 다니엘과 세친구들도 어린 10대였지만, 어느 누구도 체험하지 못했던 강렬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많은 사람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가끔은 늦게 부르심을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하나님을 일찍부터 알고 믿음의 훈련을 받았으면 하는 것을 꿈꿉니다. 반면, 모세는 80세가 되어서야 하나님의 깊은 부르심을 받습니다. 바로 궁에서 왕자로서 40년, 광야에서 40년 동안 훈련을 받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무척 고되고, 힘든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모세는 이 시간 자아가 깊이 부서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몰랐었고, 하나님에 대한 깊은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랬기에, 더 깊은 좌절과 낙심을 경험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아직 못 만났지만,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지금도 훈련되는 영혼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시간이 곧 올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깊이 알고 훈련 받는 영혼도 있지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받아 들이지 않은 시간에...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깊이 만져 지는 영혼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입니다.

 

 

물에서 건져진 모세는 인생의 Turning Point를 세번에 걸쳐서 겪게 됩니다.

 

첫번째, 바로 왕궁에서의 40년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기 위한 지적인 준비 기간이었습니다.

바로왕의 준엄한 명령때문에 죽어야만 되는 운명이었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손에 의해서 건져지게 되었습니다. 바로의 딸의 양자가 되어서 궁에서 40년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하실때는 목적을 가지고 계실때가 많습니다. 모세와 그의 가족들은 모세가 왜 바로 궁에서 자라는지 몰랐지만...하나님은 모세에게 그 당시 최고의 선진 지식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무엇보다 시내산에서 율법을 하나님으로 부터 직접 받아야 했던 모세였습니다. 하나님께 받아서 백성에게 정확하게 풀어서 설명하려면 상당한 수준의 지식과 해석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그 공부를 어린시절부터 바로궁에서 시키셨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왜 그러한 공부를 어릴때부터 하는지 몰랐을 것입니다. 출애굽해서 백성을 이끌면서 그 의문이 하나 둘씩 풀리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십계명과 수많은 율법을 받게 되었을때, "아...이 전에 어린 시절 부터 공부했던 것들이 이렇게 사용되는 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모세에게는 어렵지 않도록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께서 세심하게 준비하고 가르치셨을 것입니다.

특별한 축복을 타고나서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라고 모세에게 그러한 환경을 제공한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려고 모세의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다듬어 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인생의 전반기 40년은 영성보다 애굽의 선진 학문을 습득하는 것이 모세에게 훨씬 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모세는 그 배움을 자신의 백성들이 해방되는데 사용되기를 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애굽 사람이 히브리 사람을 치는 것을 보고, 분에 못 이겨 쳐 죽이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모세는 자신의 동포에 대한 깊은 애정을 품고 있었던 것을 알수 있습니다. 생각하는 지식인이었습니다. 행동하는 지식인이 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습니다. 자신이 배운 것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자신의 위치에서 무엇을 할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마음 속에 생각만 품고 있었는데...결국 하나님의 시간에 어린 시절부터 배웠던 학문과 깊이가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많은 것이 준비 되고 있습니다. 때로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모를수 있습니다. 나중에 지나보면 알 것입니다. 우리는 몰라도 하나님의 세심한 계획에 의해서 인도함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광야에서의 40년은 자아와 내면을 깨뜨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왕자로서 살다가 떠돌이 생활하기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면서 가는 길은 참 힘듭니다. 하나님께서 연단을 시키실때는 자신이 어디로 걸어가야 할지 모르는 시간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낮추실대로 낮추셔서, 사람이 할수 있는 분량이 거의 없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모세는 정처 없이...갔습니다. 우연히 미디안 땅에 머물다가 십보라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타국에서 정착하면서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최고의 선진 문화, 문명을 배웠었던 모세가...누릴수 있는 그 당시 최고의 문명 혜택을 누렸던 모세가 양무리를 치는 목자로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배운 것을 사용하기는 커녕...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길 정도로 다 잊어 버릴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새벽에 눈을 뜨면 양을 치고...목축을 하고, 자신의 재산을 불려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장인 이드로의 양들을 칠 뿐이었습니다. 처가살이를 하는 그였습니다.

낙심하고, 좌절하다가 포기하게 되고...자신 속의 내면이 시커멓게 타서 재가 되는 그러한 시간을 모세는 보내고 있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그 시간에 차라리 하나님을 좀 더 일찍 만나서 하나님께서 하실 계획을 들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질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시간은 정확했습니다. 모세에게 인생의 중반기 40년은 힘을 빼는 시간이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그러한 시간이었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촌로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가졌던 자존감과 명예, 자아, 자랑들을 철저하게 부서 뜨렸습니다.

자아가 살아서는 수백만명의 백성들을 이끌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감정대로, 생각대로 이끌어 버리면, 수많은 백성들과 부딪히거나, 백성들을 엉뚱한 곳으로 몰고 갈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시간을 다 계산하고 계셨습니다. 얼마나 좌절하게 하고, 낮추셔야만 모세의 자아가 부서질지, 온전한 순종의 사람이 될수 있을지...하나님은 연단의 날을 계수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간이 40년이었습니다.

눈뜨면 목축을 하고, 해지면 집에 들어오는...쳇바퀴 도는 인생을 40년동안 보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리석고, 낭비하는 시간인것 처럼 보일수 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자아가 철저하게 부서지는 내면의 축복을 이미 받고 있었던것이었습니다. 이 인생의 중반기가 모세에게는 축복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인생의 중반기 40년 동안...모세의 생각, 계획, 혈기, 분노를 버리게 하시는 시간이었습니다. 바로 궁에서 배웠던 학문적인 지식만으로는 하나님은 사용하실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친히 훈련을 시키십니다. 좋은 프로그램과 학문이 연단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듬어 나가십니다. 모세는 자신의 인생이 어디로 흘러 가는지 몰랐지만, 하나님은 세심하게 이끌고 계셨습니다. 이 시간이 모세에게는 어리석어 보이는 시간이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모세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간없이 모세를 사용할수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에게 헛된 시간은 전혀 없습니다.

 

세번째, 훈련을 먼저 시키신 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마지막 인생의 후반기 40년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모세의 모든 힘이 다 빠져서 아무것도 할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십니다. 80세 노인이 되어서야 모세에게 하나님이신것을 드러내십니다. 그 시간에, 40세에 자신의 동포 히브리 사람을 괴롭히던 애굽인을 죽였던 그 열정과 열심은 찾아 볼수 없습니다. 모세에게 남은 것은 무능해서 아무것도 할수 없는 껍데기 같은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라고 했지만, 머뭇거렸습니다. 몇가지 기적을 보여 주셨지만, 모세는 나아가기를 주저 했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열심으로 무엇인가 할수 있다고 할때는 아무 일도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외에는 아무것도 못한다고 고백할때...하나님은 그때 일을 시작하십니다. 입술의 고백만이 아니라 온 몸과 마음속 깊이 자신이 "Nothing"이라고 선포할때...그 시간이 하나님의 시간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모세의 모습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이해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즉시 순종하지 못하는 모세의 모습에 화내지 않으시고, 인격적으로 대하십니다. 하나, 둘...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시고, 모세가 두려워 하는 부분에 대안들을 제시해 주십니다. 그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의 연약함을 익히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무엇때문에 주저하는지 잘 이해하십니다. 그럴때, 하나님은 기다려 주십니다. 또, 구체적인 방법을 주셔서 이끌어 주십니다.

 

광야 생활의 40년 동안 보석처럼 귀하게 다듬어 졌던 모세의 모습은 절대 인내와 절대 순종, 절대 겸손이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어리석어 보이고, 바보처럼 보이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수백만명의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해서 이끌기 위해서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뛰어넘는 탁월한 인격이 필요했습니다. 백성들이 출애굽 하면서 어떻게 불순종할지, 얼마나 마음 아프게 할지 하나님은 미리 앞서서 보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언변과 카리스마가 아니라, 조직을 꾸밀수 있는 행정력도 아니었습니다. 참고 또 인내 하는 모습, 그 어떠한 일이 벌어 져도 하나님의 수준까지 기다릴수 있는 그러한 모습,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는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 아무말 없이 엎드릴수 있는 그러한 모습을 모세에게서 기대하셨습니다. 모세도 연약한 사람이라서 몇번의 실수는 하기는 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모세처럼 온유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으셨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탁월한 학문과 능력이 있으면 사용하실것 같습니다. 똑똑하고, 지혜로우면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크게 사용될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 어떠한 놀라운 능력보다 하나님앞에 납짝 엎드리는 모습, 겸손과 온유함이 흘러넘치는 모습을 먼저 사용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적으로 잘 준비되고 싶어합니다. 사람들 눈에 보기에 아름답고 칭찬받는 모습이 되고 싶어 합니다. 필요한 모습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모습보다, 내면과 성품이 다듬어 질때, 하나님은 더 크게 사용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형상으로 더 다듬어 져 갈때... 하나님은 반드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비젼은 Doing 보다 하나님 닮은 인격에서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닮아 가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눈이 이곳을 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