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Weekly칼럼(101-150)

하나님의 사람은 다른 영혼을 품게 됩니다. (141)

Joseph Lee 목사 2013. 11. 1. 17:13

 

 

하나님의 사람은 다른 영혼을 품게 됩니다. (141)

"나는 사랑하나 저희는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저희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으며 미워함으로 나의 사랑을 갚았사오니 악인으로 저를 제어하게 하시며 대적으로 그 오른편에 서게 하소서 저가 판단을 받을 때에 죄를 지고 나오게 하시며 그 기도가 죄로 변케 하시며 그 년수를 단촉케 하시며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시며 그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 아내는 과부가 되며 그 자녀가 유리 구걸하며 그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 먹게 하소서 고리대금하는 자로 저의 소유를 다 취하게 하시며 저의 수고한 것을 외인이 탈취하게 하시며 저에게 은혜를 계속할 자가 없게 하시며 그 고아를 연휼할 자도 없게 하시며 그 후사가 끊어지게 하시며 후대에 저희 이름이 도말되게 하소서"(시 109:4-13)

<josephlee0212@gmail.com

 

하나님의 사람은 다른 영혼을 품을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를 쉽게 품을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특히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해서는 더 그렇습니다. 아프게 한 사람에 대해서 화가 날수 밖에 없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죄성적으로 분노와 혈기가 올라 오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가까운 사람때문에 힘든것 처럼 어려운 일은 없습니다. 건강때문에, 물질때문에 힘들수 있지만, 가까운 사람때문에 아프고, 고통스러울때는 그 어떠한 문제보다도 더 힘들게 느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이러한 시간을 친히 보내셨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로부터 배신을 당했습니다. 골고다 언덕의 가시 밭길과 채찍질 사이로 지나갈때 바로 옆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과 이적에 환호하며, 환대했던 모든 사람들이 떠나갔습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으셨던 주님께서 한순간에 모두로 부터 배신을 당했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이 도망갔습니다.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아픔을 겪습니다. 눈물과 회한으로 기도하는 많은 이유가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을 봅니다.

 

가정에서 이러한 문제가 생길수 있습니다. 공동체와 교회안에서도 사람들 관계가 힘들어 질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때, 그 잘못으로 이러한 아픔이 생긴다면 어느 정도 이해할수 있지만, 애매한 일때문에 받는 고통이라면 혼란스러워집니다. 변명하면 할수록 오해가 더 생기는 순간이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엉망이 되는 시간이 있을수 있습니다. 기가 막힌 웅덩이의 시간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도저히 섬길수 없는 그 시간에 선으로, 사랑으로 선대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가까운 사람들의 악한 행동일수 있습니다. 선한 동기와 행동들이 이용당하는 것처럼 보여 질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아프게 다가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일에는 깊은 뜻을 감추어 두고 계실때가 많습니다. 결국은 영적으로, 인격적으로 더 깊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의 뒤에는 마귀가 춤을 춥니다. 사탄이 이러한 문제를 즐기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사랑하는 관계를 결코 두고 보지 않습니다. 깨뜨리고 짖밟으려고 합니다. 자신들과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원망하고, 시기.질투하는 관계로 만들려고 합니다. 마귀의 성품입니다. 사탄의 성품의 씨앗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에게 자라길 원합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서 어느 정도 성공한것 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을 만난자에게는 사탄의 이러한 역사가 오히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마귀가 그렇게 열심히 역사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잠시 넘어졌다가 다시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이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역사할때는 사탄의 강력한 능력이 보입니다. 그런 시간에는 하나님의 손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이 너무 거대해서 느껴지지 않을 뿐입니다. 그동안 마귀는 관계를 왜곡해서 수많은 교회들과 공동체, 가정을 깨뜨리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영혼들은 오히려 더 강력하게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강하게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억울하고 원통한 시간에는 인간적으로 행동하면 할수록 문제는 더 꼬이게 됩니다. 아무리 지혜롭고, 선하게 하는 행동조차도 더 어렵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기에 조용히... 오랫동안 기도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배후에서 곳곳에 사탄이 서슬퍼렇게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웅덩이와 함정을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 시간에 무엇보다 입술을 조심합니다. 행동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충분한 기도를 먼저 쌓으려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움직이는 것보다 더 큰 능력은 없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역사 해 놓은 것을 사람의 힘으로 풀수는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오래 기도를 하다보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실것입니다. 때가 되면 깊은 감동을 주셔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게 하실 것입니다. 사탄이 영적인 세계에서 묶은 것은 현실에서 무척 강한 영향력이 있습니다. 보이는 현실에서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 될수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생각을 능가하는 지능과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아파할지, 고통 받을지 잘 알고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이 역사하도록 허락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회복시켜 주시고, 갚아 주시겠지만, 영적 세계에 대해서 더 깊이 배우도록 하기 위해서 인도하시는 방법입니다. 사탄의 역사에 대해서 더 알아 갈수록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하심에 대해서도 더 많은 지식과 영감을 가지게 됩니다. 사탄이 즐겨 역사하는 대상이 사랑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신들처럼 우리도 서로 미워하고, 하나님께 버림 받은 존재가 되도록 만들고 싶어합니다. 마귀가 가장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고 용납하길 원하시지만, 마귀는 좋은 것도 다 꼬아서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하고 싶어합니다. 사랑의 은혜에 대해서는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하고, 분하고 억울한것만 생각하게 하려고 합니다. 쓴뿌리와 상처가 많을때는 이겨내기가 힘듭니다. 일이 잘 안될때는 참기가 어렵습니다. 환경이 힘들때는 이런 마귀의 역사가 무척 고통스럽습니다.

 

첫번째, 그래도 이겨내야 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로 할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마귀가 원하는 것은 원망입니다. 싸움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사랑입니다. 화해입니다. 감싸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마귀가 강하게 역사할때는 생각만큼 쉽게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기도를 쌓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을 주장해 주실것입니다. 나중에는 서로가 왜 그랬나 싶을 정도로 부끄럽게 만드실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데...왜 이렇게 마음이 강팍해 졌을까? 하나님앞에서 서로가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로 은혜를 주실때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힘으로는 어렵습니다. 그 시간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강팍해 지는 것처럼 마음이 어려울때는 없습니다. 기도가 막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가로 막기 때문입니다. 감정보다 말씀에서 뭐라고 하시는지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눈에 들어 오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더욱 더 의지로 하나님께 가야 합니다. 한참동안 헤맬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동안 하나님을 찾고 찾는다면 하늘로 부터 상당한 능력을 받게 될것입니다. 도저히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 없을때, 하나님의 은혜로 한걸을씩 나아가게 될때...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빈손으로 만들지 않으십니다. 하늘의 것으로 채우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상황을 극복하려고 하는 사람만큼 축복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미 승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할수 없는 상황에 하나님의 음성에 주목하고, 순종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하늘의 비젼으로 채우십니다. 그러한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겨내려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 주십니다.

 

두번째,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다윗은 억울하고, 원통할때 사람을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기가막히고, 억울해서 화가 발하는 시간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허용하셨음을 알고 하나님앞에 자신의 마음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앞에서는 절대적으로 입술을 조심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었습니다. 그 어떠한 행동도 조심하고 절제했습니다. 시109편에서는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이 이런 저주의 기도를 할수 있을까 할 정도로 심각하고, 처절하게 마음을 쏟아 냅니다. 보통 사람이 보기에는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만으로 판단하면 안될 것입니다. 다윗의 마음이 그 정도로 힘들고, 배신감으로 견딜수 없었다는 것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다윗의 마음을 쏟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셨다는 것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은 이러한 다윗의 한과 분노의 기도를 선하게 바꾸셨습니다. 이게 기도입니다. 다윗의 그릇을 깨뜨리셨습니다. 다윗은 도저히 감당할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하셨습니다. 다윗이 훗날 왕이 되었을때, 자신의 모든 원수를 다 껴안습니다. 사울왕의 군대 장관과 아들과 그 집안까지도 다 용서하고, 용납합니다. 자신을 해롭게 했었던 모든 사람에게 인간적으로 대하지 않고, 사랑과 용납으로 감싸 안습니다. 인간적으로 우유부단해 보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인격속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이 무척 성숙해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씨앗이 무럭 무럭 자랐습니다. 사탄의 수많은 공격속에서 받았던 상처와 쓴뿌리가 분노와 한이 아니라 사랑으로 승화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앞에서 마음을 쏟아낼때, 하나님은 치유하셨습니다. 그 마음을 받아 주셨습니다. 상한 마음을 멸시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을 상대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대면하는 사람입니다. 결국 이 모든 상황을 하나님께서는 가장 아름답고 선하게 바꾸어 주셨습니다.

 

세번째, 그 어떠한 판단과 심판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화가 나고 분노가 일어나는 상황일지라도 이 모든 일의 주권자와 심판자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이것을 잘 알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주권을 드리기를 즐겨 했습니다. 자신이 인간적인 방법으로 무슨 일을 할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하나님 앞에만 기도로 올려 드렸습니다. 당장 눈앞에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하나님만 바라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마음 중심을 다윗의 믿음으로 받아 들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즐겁게 하려고, 속시원해 지고 싶어서 자신의 마음대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주인일때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이러한 시간에도 주권을 드리는 사람은 원수 갚는 일뿐만 아니라 진정한 존귀의 축복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다윗은 억울한 일때문에 인생이 오히려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시간에 여호와를 대면하면서 영적으로 성장하고 깊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이름때문에 참으면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 드리는 신앙이 되게 되었습니다. 원수를 자신의 손으로 갚으려고 하지 않았기에, 자신의 이름때문에 피를 묻히지 않았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은 다윗을 더 존귀하게 만드실수 있었습니다. 그 억울한 일이 다윗을 더 높이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이 모든 아픔이 다 치유되고, 회복되어서 온 민족을 품을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반드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높이십니다. 결코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그 주권은 자신이 어떠한 상황을 당하고, 겪든 하나님의 손에서 나왔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판단을 올려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을 올려 드리는 만큼 더 많은 영역에서 권세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네번째, 깨어지면 깨어질수록 더 많은 영혼을 품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아프고, 힘든 연단은 결코 달콤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어려움을 허용하시는 이유는 다른 영혼들을 품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밖에 모르는 존재입니다. 그러한 연약한 존재를 변화 시킬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깨어짐입니다. 마귀도 이해할수 없는 것입니다. 마귀가 생각하기에 깨어지는 것은 버림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데 사람이 깨어질수록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면 마귀는 미칠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적인 신비이며, 오묘함입니다. 기묘와 모사입니다. 다윗도 야망과 성공에 대한 욕심이 결코 작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마음과 야망이 뒤범벅되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사울왕의 군대 장관으로서 성공한 위치에, 사울왕의 사위의 자리에 앉을수 있었던 다윗이었습니다. 그러한 다윗을 하나님께서는 깨어짐의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훈련과 연단이었지만, 훗날, 수많은 백성들과 원수들을 껴안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던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결국은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높은 자리에 앉히시는 것만이 존귀의 축복이 아닙니다. 진정한 존귀의 축복은 수많은 영혼들을 품고 가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과 나라 전체를 품고 나아갔습니다.

 

다섯번째, 영혼들을 품고 가는 사람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과만 친하기를 원합니다. 자신의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은 멀리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판단 기준은 결코 자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자신의 입맛대로 영혼을 가까이 하는 것은 사교일 뿐입니다. 인간적인 사귐입니다. 도저히 가까이 할수 없는 영혼을 주님이름으로 품고 나가려고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비지니스가 아닙니다.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품으라고 하면 품어야 하는 것입니다. 헌신과 섬김입니다. 진정한 섬김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영혼들을 감싸 안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할수 없기에 하나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발버둥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셨을때는 Calling에 합당한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다른 영혼들을 Touch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어떠한 사역이든지 사랑하지 않는다면 비지니스와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삭막합니다. 율법만 있을 뿐입니다. 율법과 은혜의 가장 큰 차이는 사랑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은 사랑이 있습니다. 영혼을 대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서...사랑이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막연한 사람에 대해서는 눈물 흘릴수 있습니다.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모습을 아는 사람을 감싸 안기는 힘들수 있습니다. 단점이 자신의 비위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열방을 놓고 기도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힘들게 하는 한 사람을 놓고 기도하기는 힘들수 있습니다. 잘 모르는 수백만명을 놓고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를 힘들게 하는 한 사람을 놓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움직이게 할 것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모습은 결국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