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91)
"곧 네 환란을 잊을것이라 네가 추억할지라도 물이 흘러감 같을것이며..." (욥11:16)
"저희가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며 주의 의를 노래하리로다" (시145:7)
오랫동안 고난의 시간을 보낸 사람들도 어느 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고, 세워 주셨을때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사람이 되어 버린 듯한 모습을 볼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전의 어려웠던 시절을 부끄러워 하고, 수 많은 실패속에서 좌절하고 낙심하던 모습은 자신의 모습이 아닌 것처럼, 지금 성공해서 서 있는 모습만이 자신의 모습인것 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을때가 많은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좋은 모습만을 보여 주고 싶은게 모든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약하고 힘든 모습들...인생에서 가장 처절했던 모습을 감추고 싶은것이 사람들의 심정일 것입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럴수도 있을겁니다. 그 시간을 기억하면 가슴이 터질것 같고,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을만큼의 아픔이 느껴져서 생각하고 싶지 않을수 있을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그 어려웠던 시간이 결코 자신의 인생의 일부분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을수 있을 것입니다. 성공해서 부와 명예를 가진 고귀한 모습. 남들에게 인정받는 모습만이 자신의 모습이라고 보여 주고 싶을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의 쓴뿌리를 무시하며, 기도하지 않으려는것과 현재의 성공한 부분만을 보여 주려는 모습...
둘다 문제가 있습니다. 과거의 시간도 우리 인생의 한 부분입니다. 덮고 싶다고 덮을수 있는 부분이 아닐수 있습니다. 기억으로 떠올리지 않을수 있지만, 잠재 의식속에서는 여전히 상처와 쓴뿌리가 되어서, 현재와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수 있습니다. 치유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기억을 안하는게 중요한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기억해서, 하나님께 솔직하게 올려 드릴수 있는 태도가 더 필요할 것입니다. 어두운 시절의 상처와 아픔, 쓴뿌리는 우리의 인격과 인성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오늘날의 말과 행동, 가치관, 성격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무시한다고 무시 할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그 아픈 부분을 놓고...생각하고 싶지 않은 부분을 놓고 기도하고 씨름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현재와 미래가 중요하지...과거가 중요한가? 이미 지나간 시간인데..."
그렇게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자신의 성격이 되어 있는 부분이 많을것입니다. 많은 상처가 자신의 성품에 쓴뿌리로 남아 있는데 자신만 제대로 모를수 있을것입니다. 과거의 쓴뿌리가 과거시간에 멈췄으면 좋겠는데, 현재와 미래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는것입니다. 삐뚤어진, 잘못된 표현의 방법이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지금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의 치유가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중의 하나일것입니다. 과거의 시간을 생각해 보면, 고통을 받았던 피해자이기에 억울할수도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파가 자신에게 깊이 남아서 아직도 악영향을 미친다면 그 피해가 여전히 확대 재생산 될수도 있을것입니다. 자신뿐만 아니라...가장 가까운 사람에게까지 말입니다.
어린 시절, 부모로 부터, 가정으로 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이 나중에 결혼을 하고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것을 봅니다. 아내와 남편에게, 자녀들에게 까지...어린 시절부터 애정결핍이었기에, 사랑을 주는 방법도, 사랑을 받을줄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치유가 되어서 회복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릅니다. 혼자 힘으로 불가능할수 있을것입니다. 사랑의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함께 아파해주고, 함께 웃어 줄수 있는 많은 영혼들이 함께 하는 그러한 공동체...결국은 교회일것입니다. 가정일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공동체입니다. 그곳에서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과거의 이야기만 나오면 몸서리 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거의 모습이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고 더 이상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현재의 모습, 성공하고 부해지고, 명예가 있는...모든 사람들에게 우러러 보이는 모습만이 자신의 모습이고, 사람들에게 고귀하고, 고상한 모습만을 보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항상 가면을 써야 할때가 많습니다. 늘 긴장 해야 합니다.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합니다. 가려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과거의 아픔도 포장을 해야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큰 문제 없이 자랐으며, 좋은 가정, 좋은 환경...많은 혜택을 받고 살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어느 한군데를 보더라도 아무런 상처가 없는듯 이야기 하고 싶어 합니다. 자신은 엘리트의 길, 남들이 부러워 할 만한 최고 상류층의 길만을 걸어왔다고 자부심을 갖습니다. 대화를 해 보면 하나님앞에서 많은 특권 의식을 가지고 있는것 처럼 보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은 남들과 달리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소명과 사명은 남들과 달리 고귀하고 거룩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제하는 사람들도 아무나 하는것이 아니라 명예와 덕망 있는 사람들만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속일수 있습니다. 하나님앞에 자신의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체험할수 있을까요? 하나님보다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어서, 하나님 보시는 눈보다 자신의 체면을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명예를 더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을수 있습니다. 깨닫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필요합니다. 신앙의 진정한 성장이 이미 멈춰있는지 모릅니다. 교제에서 하나님보다는 인간적인 교제에 집중하는 모습일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에서 낮추실때는 뜻이 있습니다. 그만큼 높이시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낮추시는 만큼 높이실것입니다.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 가기 위해서는 광야의 길을 반드시 지나야만 했습니다.
광야의 길은 애굽에서 심겨졌던 노예 근성, 내면의 쓴뿌리,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마음, 생각을 바로 잡아 주시는 라파(치유)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치유의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습니다. 430년 동안 세대를 거듭하면서 지속되었던 상처와 아픔이었기에 거의 40년에 가까운 치유와 내면의 회복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출애굽했을때의 모습으로는 새로운 민족을 만들수가 없으셨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했습니다. 새로운 마음이 필요했습니다.
부활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골고다를 올라가는 십자기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복음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곳에는 십자가의 흔적이 반드시 있습니다.
십자가는 고난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내면이 치유가 되고, 주님과 동행하는 회복이 일어나는 시간입니다.
십자가의 시간은 하나님과 나밖에 없는 인생에서 주님과 가장 친밀한 시간입니다.
그러한 시간 없이 부활이 주어진다면 하나님보다 자신의 영광이 더 드러나게 될것입니다. 죽음의 시간을 지나본 사람은 사람의 영광과 영화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말로만 하는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깊은 깨달음이 자신의 소유가 되어 있을것입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그 어떠한 시간에서도 자신을 십자가 뒤에 숨기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십자가에서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교제 중에서 이야기 할때 마다..."내가 이렇게 했다. 내가...내가..."가 대화 내용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 간증을 들어보면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가 대부분을 차지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더 이상 간증이 아닙니다. 자신을 드러내보이고, 자신을 자랑하기 위한 시간일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형편 없었던 모습, 자신이 보이기 힘든 모습, 자신이 주님안에서 완전하게 무너져서 더 이상 희망 없었던 모습에서 하나님의 간증은 시작되어야 할것입니다. 거기서 어떻게 주님을 만났고, 주님께서 어떻게 내면을 치유하셨으며, 마음과 생각, 인격을 만져 주셨는지...그것은 세상이 절대로 감당할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일것입니다.
자녀가 좋은 학교에 들어가는것...좋은 직장을 얻는것...사업에 성공하는것...돈을 많이 버는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것의 핵심은 그 부분이 아닐것입니다. 세상의 성공에 가치를 두는 사람은 반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각과 조금 다르게 일하시고, 자신이 생각한 만큼의 분량의 성공을 허락하지 않으실때는 하나님에 대한 섭섭하고 서운한 마음을 감당하기 힘들수 있을것입니다.
"모든것을 다 잃어 버려도 하나님을 만나셨다는데 만족하실수 있습니까? 그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만 계시면 된다는 고백이 아직도 유효한가요? 일이 잘되던지 잘못되던지...그것은 더 이상 인생에서 중요한것이 아닌가요? 성공하든지 실패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만 바라 보실수 있습니까? 그 어떤 경우에도,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는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하나님께서 그러한 길로 인도하신다고 하더라도 하나님만 신뢰할수 있습니까?"
우리의 대답은 어떨까요? 저 역시도 정말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시간이 가면서, 연단의 깊이가 더 해가면서 점점 자신이 없어 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머리로는 수 없이 들어서 알수 있는 영적인 원리라고 할지라도, 위기의 상황에서 자신의 믿음이 되어서 고백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이 순간에, 삶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이미 영적으로 하나님에서 큰 은혜를 입은 사람일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홀로 큰 영광을 받으시는 시간일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평상시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위기와 어려움의 시간에 더 빛이 나며, 다른 어려운 영혼을 세워주는 Mighty Warrior가 될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열심히 영혼들을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모든 사람에게 큰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은혜에 믿음으로 다 반응하지는 않습니다. 그 은혜를 자신의 출세 성공을 위해서, 자신의 가정만을, 자신의 미래만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하나님의 계획보다 자신만을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찾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기도와 간구도 자신이 필요한것에 집중합니다.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면 하나님은 선한분이시고,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더 이상 사랑의 하나님이 되지 않을수 있습니다. 자신 마음대로 하나님을 평가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상황에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고 물어 보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아닌 하나님의 얼굴, 구원의 즐거움으로 만족하며 기뻐할수 있는지 물어 보십니다. 이 질문은 하나님의 능력의 손을 베푸시지 않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선 순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의 향기와 빛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손이 그 어떠한 일을 하시든지, 잠잠하시든지 주님 한분 만으로 만족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찾고 계시고, 만들고 계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대답을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것이 잘 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은혜가 쉽게 새어 나갑니다. 하루를 못 넘길때도 많습니다. 사탄도 시기. 질투때문에 역사를 하겠지만, 우리의 내면의 그릇에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과거에서 그 해답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치유와 회복가 되지 않은 과거의 시간에서 온 쓴뿌리와 상처가 너무 많아서 그럴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 보면 거의 대부분의 기도 제목이 진로, 장래, 막혀 있는 현재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에 대한 기도 제목들입니다. 자신의 내면의 상처와 아픔...그것때문에 드러나는 주님과의 왜곡된 관계...거기에서 파생된 현재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깊은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은듯 합니다.
그러한 쓴뿌리를 자신의 성격의 일부분으로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자신의 뿌리 깊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요한것은 그 부분이 자신의 일부분의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 때문에 지금도 모든 생활과 일, 인간관계, 가족관계에 영향을 줄수 있다는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존재 문제, 내면의 문제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을 합니다.
시간이 가면서, 많은 부분을 포기하는것 같습니다.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말하는 태도와 행동, 다른 사람을 대하는 모습에서,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에서 한층 더 성숙한 변화가 있는 사람들이 많이 드문것 같습니다.
이러한 쓴뿌리가 결코 작은 부분이 아닐것입니다. 막혀 있는 육적인 기도 제목들이 자신의 내면의 상태, 영적인 상태와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큰 기도 제목보다 자신의 내면과 주님앞에서의 정결함, 회개... 자신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께 대답을 찾아야 할것입니다.
우리는 이거 주세요, 저거 주세요...이거 풀어 주세요, 저 문 열어 주세요...기도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내면의 준비가 아직 부족하다고 말씀 하실수 있습니다. 평생이 걸려도 못할수 있는 부분일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도 주님과 한걸음씩 준비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결국은 인격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관심 가지시는 영역중의 하나입니다.
저의 가장 약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또, 기억해야 할것이 있습니다. 고난에는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고난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시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문을 열어 주실때, 자신의 피해의식과 열등감때문에, 스스로 지나친 보상을 하기 위해서 애쓰면 안된다는것입니다. 자신의 억눌렸던 시간, 남들 보다 못했던 시간에 대한 아픔을 보상 받고 싶어서 영육간에 애쓰는 사람들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보상하실것입니다. 그 눈물을 주님께서 직접 닦아 주실것입니다. 원수 갚는것도, 원수앞에서 상을 베푸시는것도 언제까지는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주신 축복도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사용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기억해야 할것이 있습니다. 힘들었던 시간에 가졌던 하나님에 대한 마음과 첫사랑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평안한 시간이 오면 쉽게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 순간부터 영적으로 변질을 가져 올수 있을것입니다. 영적으로 무감각하게 될것입니다. 여호와보다 세상의 방법으로 살려고 할수 있을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손에 쥐어 주신 부분을 지나치게 인간적으로 휘두르려고 할수 있습니다.
또한, 그 어려웠던 시간 주님께서 깨닫게 하셨던 마음으로 다른 영혼들을 섬겨야 합니다. 자신은 십자가 뒤에 감춘채로 오직 예수님만이 드러나셔야 합니다.
또 기억해야 할것이 있습니다. 고난의 시간이 끝나고, 축복의 시간이 올때...얼마나 그 축복을 잘 다스릴수 있는지는 자신의 상처와 쓴뿌리, 아픔, 내면의 질서를 얼마나 하나님께 치열하게 기도하며 올려 드렸는가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오늘 주님앞에 올려 드리는 내면의 일그러진 부분의 회복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수 있을것입니다.
치유와 회복이 필요한 부분은 사업과 세상적인 부분이 우선이 아닐것입니다. 더 급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의 내면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접하기 위해서 그 마음의 문을 여는것도 중요하지만, 치유를 위해서 다시 한번 마음을 깊이 열어 드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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