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의인은 옆 사람을 힘들게 한다. (76)-고난이 주는 쓴뿌리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케 하겠느냐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며 우매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느냐 너는 이것을 잡으며 저것을 놓지 마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전 7:16-18)
영적인 축복은 단순히 쉽게만 받을수 있는 것이 아닌것 같다. 여러 성경 공부와 말씀 묵상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많이 얻을수 있다. 그러나, 그 말씀이 내 삶속에서 살아서 역사하는 말씀이 되기까지는 쉽지 않은 영적인 화학적 반응이 필요하다. 이성적으로 깨닫는 말씀도 중요하다. 그러나, 내 머리로 판단하는 말씀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와 닿기까지는 고난과 아픔이라는 영적인 화학적 요소가 필요할때가 많다. 고난의 시간에서야 지금까지 머리로만 알아 왔던 하나님의 말씀이 이런 것이었구나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고난 중에 있는 영혼이라면 시편의 말씀이 싱싱한 과일 열매처럼 달콤할수 있을것이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경험한 구원에 대한 감격이 크다면 로마서 말씀이 깊이 와 닿을수 있을것이다. 반대로 인생에서 그렇게 큰 어려움이 없다면 시편이 영혼을 위로하는 깊은 말씀이라기 보다 그냥 좋은 말씀, 그냥 위로하는 말씀 정도로 생각할수 있을것이다.
영적인 말씀은 자신이 영적으로 깊이 들어가는 만큼 와 닿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영혼의 깊은 곳으로 인도하는 동력이 고난과 역경일때가 많다. 고난과 환란을 성령의 은혜로 잘 넘어가게 되면 받게 되는 영적인 유익이 많다. 말씀이 나의 것이 된다. 지식의 말씀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체험하게 되고, 말씀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을 얻게 된다. 고난 가운데 드려진 기도를 경험한 사람은 어떤 경우에서도 하나님과 기도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인생의 어떠한 문제도 하나님 만이 길을 여실수 있다는것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고난과 연단의 깊이가 있는 사람은 인생의 폭이 단편적이지 않다. 자신의 생각대로 흘러가는 인생이 아니라는것을 잘 알기에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주권자이심을 잘 알기 때문이다. 깊은 아픔이 있었기에 다른 영혼들에 대한 Compassion을 함께 가지게 된다. 그 아픔에 대한 깊이와 넒이를 잘 알기에...이미 걸었던 길이었기에...함께 울게 된다.
하나님만 대면하는길은 외롭고 고독한 길이다. 성령의 은혜 없이 우리 힘으로만 할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힘 주시고 인도하셔야만 하나님께 나아갈수 있다. 하나님의 방법이다.
이러한 은혜가 환란의 시간에는 참 달콤하다. 고난의 시간에서도 누구나 하나님을 찾을수 있는것이 아니다. 오직 은혜가 머무는 사람만이 그렇게 할수 있다. 그 또한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늘문을 여는 기도는 결코 쉽지 않다. 어렵다. 쉽게 그 하늘문이 열리지 않기에 중간에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난 왜 항상 기도가 안되지? 기도만 하려고 하면 잡념이 들고, 이것 저것 생각도 많이 나고...기도하려고 마음만 잡으면 해야 될 일들이 어찌나 많이 생각이 나는지." 이런것이 공격이다. 기도의 자리에만 가면 졸리는 경우가 있고, 마음이 더 혼란 스러워지는 경우가 있다. 영적인 공격이다. 하늘문을 여는 기도를 방해하고자 반드시 따라 오는 어두둠의 공격이다. 이겨내야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을때가 있다. 그래서 동역자와 함께 올려 드리는 합심기도가 때때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혼자서는 힘들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 후에 느껴지는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만져 주심이 얼마나 달콤하고 강력한지...세상의 모든 문제들이 다 사라지는 느낌이다. 이 세상에 하나님과 나 밖에 없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하나님의 임재...쉐키나의 영광이 나타나기에 그렇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시간이다.
고난을 기도로 이겨내려는 영혼의 기도는 무척 강력하다. 겪고 있는 고난보다 더 큰 은혜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강한 손으로 붙잡으시기에 그런 기도를 할수 있다. 그런 시간에는 얼마나 은혜가 강력하고 큰지 잠시 기도만 해도 하나님의 보좌가 움직이는것 같고, 성령의 강력한 기름 부으심이 함께 하시는것이 느껴진다.
그런 기도는 온 마음과 몸이 불덩어리가 된듯이 느껴지기도 한다. 성령의 소멸하는 불이 회개가운데 임하시기도 하고, 기도의 능력이 너무 강하게 임재하기에 온 몸이 감당하기 힘들때가 있다.
혹독한 고난 속에서 영적인 은혜가 없이는 견딜수가 없다는것을 하나님께서 잘 아시기에 때로는 영적인 은사도 체험하게 하신다. 여쭈어 보는 기도에 대해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환상이 에스겔의 환상처럼 강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처음 경험할때는 당황스럽고, 무섭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영적 체험이 기도를 더 깊이 하도록 돕기도 한다. 때로는 이런 영적인 깊은 임재가 온 몸을 마비시키는것 같을때가 있다. 그 정도로 강렬하다는 것이다. 20분 정도 기도 한것 같은데 4-5시간이 쉽게 지나가는 경우도 있다. 온 몸이 굳어서 입술만 움직이는것 같다. 내가 기도하는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기도하시기에 가능한 일이다. 내 입술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인다. 방언이 흘러 나온다. 처음에는 그 뜻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기도를 하지만, 어느 시간부터는 그 의미가 영적으로 와 닿는다. 찬양과 감사가 대부분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과 같은 은사가 임하기도한다.
영적인 능력과 은사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다. 어떤 사람은 상대적으로 쉽게 받을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난의 시간에 주님과 함께 큰 어려움을 넘어가면서 받게 되기도 한다.
고난 가운데 받게된 은사든지, 기도 가운데 쉽게 받게 된 은사든지 주의 할것이 두가지가 있다.
먼저는 기도와 말씀 가운데 계속 계발되어져야 한다. 항상 말씀 아래 있도록 주의해야 한다. 들려준 음성과 환상에 대해서는 해석과 검증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비록 보여 주시고 들려 주셨다고 할지라도 그 일이 언제 이루어 질지 그 시간은 알수가 없다. 여러가지 환상에 대해서도 그 해석을 어떻게 해야 할지 성령님의 인도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고, 들려 주신 부분에 대해서 항상 조심해야 한다. 영적인 세계에 속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해석과 manual에 대해서 성령께서 친히 인도해 주시도록 더 많은 기도를 쌓아야 한다. 아니면 사탄이 그 영적인 은사를 멋대로 휘두를수 있다. 영분별력이 없는 은사와 능력은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영혼들까지 힘들게 할수 있다. 자신이 받은 몇가지 환상과 음성을 가지고 다른 영혼들을 두렵게 만들기도 하고,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서 자신의 방법대로 그 영혼을 끌고 가려고 하기도 한다. 주변에서 가끔 볼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manual이 잘못되었거나, 이 부분에 대해서 제대로 계발 되지 못해서 그렇다. 어떠한 경우에서도 은사와 능력은 하나님 나라와 영혼의 회복에 초점이 맞추어 져야 한다.
영혼에 대한 compassion이 없는 은사 사역은 영혼을 얽매이게 한다. 영혼들을 두려움의 노예가 되게 한다.
그러나, 진정한 하나님의 은사는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설수 있는 힘과 위로를 공급한다.
하나님만 바라 볼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다시 허락한다. 아무리 말씀을 보아도 기도를 해도 쉽지 않은 시간에 때로는 이러한 은사 통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체험하게 하시고, 다시 말씀을 붙잡게 하신다.
모든 은사와 능력은 절대적으로 말씀 아래 균형 맞춰져야 한다. 또한, 그 계발이 되어진 은사의 통로를 통해서 많은 환상과 음성을 보고 들을수 있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말씀과 영적인 원리를 캐는것은 어려울수 있지만, 기도를 통해서 보는 것은 더 쉬울수 있다. 이런 경우에 말씀을 등한시 할수 있다는 것이다.
기도를 조금만 해도 환상이 보일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신비주의와 은사주의로 흘러가게 된다. 진정한 하나님의 은사 사역자의 입술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 넘쳐야 한다. 자신에게 주시는 그 어떠한 환상과 음성도 항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연결되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동떨어진 은사와 능력은 없다. 모든것이 말씀안에서 질서 정연하게 균형잡혀서 행해져야 한다. 이러한 영분별력은 훈련이 필요하다. 시행착오 또한 따라 올것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인도하시는대로 잘 사용되어진다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게 될것이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기에 그렇다.
두번째, 많은 은사자들은 고난과 환란 속에서 은사와 능력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혼자 하나님과 대면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넘어가게 되고, 강한 하나님의 손을 체험하다 보니 그만큼 은혜도, 많은 간증도 있을것이다. 하나님의 영광도 크게 경험했을것이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있는 연약한 영혼들을 보면 많이 답답할수 있다.
허우적거리는 영혼들을 보면 그냥 넘어 가기 힘들때가 있다. 도와 주고 싶다. 건져 내고 싶은데 그 영혼들이 따라오지 못하면 어떻게든지 그 어려움에서 빨리 건져 주고 싶은 마음이 뜨거울떄가 있다.
시간날 때마다 그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심는다. 그러나, 영적으로 잘 따라오지 못할때는 그 안에 있는 쓴뿌리가 나오기도 한다. 다른 영혼을 휘두르거나, 자신이 경험한 방법을 강요하는 경우가 있을수 있다. 쓴뿌리가 강하게 남을 경우는 정도가 심해진다.
지나간 고난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지만, 자신이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겼다는 점에서 자신의 의와 자신감의 쓴뿌리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고난에는 반대 급부가 따른다. 쓴뿌리다. 분노와 혈기, 감정의 기복, 다른 사람을 Control하려는 강한 기질...등등이 남아 있을수 있다. 여러가지 응답의 문이 열린다고 할지라도 고난 가운데 어쩔수 없이 받게 되었던 상처가 치유되도록 더 간절히 기도해야 할것이다.
기도가 강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기질이 강한 경우가 있다. 그러한 기질이기에 그 어려움을 다 이겨낼수 있었을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역에서도 그러한 기질이 그대로 드러난다는것이다.
기다리지 못한다. 성미가 급해질때가 많다. 그래서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억지로 끌고 가려고 하던가 가르치려고 할때가 많다. 상대방의 마음은 따라가지 못해서 숨이 차다. 자신이 원해도 마음대로 안되는것을 너무 강하게 몰아 치니 힘들수 밖에 없다. 정답을 몰라서 그런것이 아니라 알아도 자신의 마음대로 안될때가 많다.
그런 사역자를 만날때마다 그런 부분에 야단을 맞게 되는 경우가 많다. 부담스럽고 힘들수 밖에 없다.
주의하고 또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말씀과 은사로 사역하는 사람은 특히 더 주의해야 한다. 다른 영혼을 은사로 살릴수도 있지만, 반대로 죽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양날의 날카로운 검을 손에 들고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늘 새겨 두어야 한다. 함부로 휘둘러서도 안되며, 자신의 이기적인 생각을 위해서 사용해서도 안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영적인 달란트와 능력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데 있어서 영혼 회복을 위해서 필요한 부분에서만 사용되어져야 한다.
이러한 모습을 교회안에서 흔히 볼수 있는 현상이다. 문제는 은사가 아니라 은사를 사용하는 사람이다. 말씀이 문제가 있는것이 아니라 말씀을 전하는 사람의 인격과 삶이 문제다. 하나님 나라와 교회가 문제가 아니라 교회안에 있는 우리가 문제다. 항상 생각하면서 기도해야 할 내용은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다. 지나친 극단적인 부분은 항상 문제를 불러 온다. "우리 교회는...", "우리 모임은..." 우리 의식이라는 공동체 의식은 축복이지만, 당신과 절대로 다른 나. 다른 교회. 다른 모임은 항상 문제를 일으키는 근원이 된다. 하나님을 섬기는데는 모두가 똑같다. 우리 모두 함께 가야 한다. 특별한 사명과 소명이 있을뿐,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그 눈은 똑같다. 오직 맡겨주신 일을 할뿐이다. 영적인 축복을 더 많이 부어 주셨다면 두려워하고 떨면서 그 축복이 흘러 넘치게 해야 한다. 은사를 더 많이 주셨다면 하나님 앞에서 더 조심해야 한다. 말 한마디가 영혼에게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클수 있기에 그렇다.
영혼을 묶을수도 풀수도 있는 능력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늘 기억해야 할것은 옆에 있는 영혼보다 내가 영적으로 훨씬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다. 옆에 있는 사람보다 늘 부족한 나... 라는것은 마음에 새겨야 할것이다. 반대가 되면 독선이 생기며, Control하려고 들것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인이 된 존재다. 행위에서는 절대로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만이 있을뿐이다. 은혜로 되어진 의인임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입술로 고백하지만, 때때로 교회안에서 다른 영혼들에게는 좀 더 나은 의인의 모습으로 보여 지고 싶을때도 많다. 가식과 가면을 쓰려고 할때가 많다. 스스로 거룩한 의인이 된것처럼...
특별한 능력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많다. 귀한일이다. 말씀과 균형만 맞춰져 있으면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사용하실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영적인 능력을 자신의 열등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 사모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순전한 하나님의 마음으로 영혼들을 섬기기 보다 자신의 의를 나타내려고 영적 은사를 구하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을것이다. 영적인 은사와 능력을 구하되 마음의 태도를 다시 가다듬어야 한다. 마음의 동기를 다시 세워야 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다. 그러나, 행위는 여전히 죄인의 모습이다. 몇가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영적 체험이 있다보면 스스로 착각에 빠질때가 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의인처럼 느껴진다. 좀 더 나은 사람처럼 생각되어 질수 있다. 누구를 보면 가르쳐 주고 싶고,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것을 경험한 사람처럼 생각되어 진다. 믿음이 좋은것처럼 생각한다. 착각하고 있는것이다. 진정한 겸손이 없다면 언제든지 무너질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거룩한 능력이시기에 그 능력은 부르짖을때마다 나타날수 있지만, 주님 앞에서 자신을 지키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쉽게 무너 질수 있는게 바로 우리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없으면 할수 없는 것이 영혼을 섬기는 사역이다. 영혼을 돕는 사역은 어려운 일이다.
좋은 것을 가지고도 옆사람을 힘들게 할수 있다. 은사뿐만 아니라 영적인 모든 달란트, 축복을 사용하는데서 그럴수 있다.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나쁜 모습만 힘들게 하는것이 아니다. 때로는 우리가 하나님 이름으로 하는 일이, 주님 일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일들이 바로 옆 사람을 지치게 할수도, 힘들게도 할수 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귀한 일이라도 바로 옆사람을 힘들게 할수 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둘러 보아야 한다. 무엇이 그 영혼을 힘들게 하는지.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어쩌면 내가 잘 한다고 하는 일들이, 주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바로 옆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 모른다. 좋은 의도로 하는데도 불구하고...
지나친 의인도, 지나친 지혜자도, 지나친 선인도...스스로를 패망케 하는 지름길이 될수가 있다.
하나님보다 자신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믿음이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의가 될때, 자랑 거리가 될때 그렇게 될수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가지고 자신을 높이려고 할때, 무너 질수도 있다. 착한 일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보다 내 자신의 열심이 되어서 마치 선행으로 구원을 이루는 것 처럼 착각하게 될때는 모래성 위에서 사는 삶과 다름 없는 일이다.
하나님을 진정한 마음으로 사모 하는 것만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만이 우리 자신을 지키는 보호 장치가 될수 있다. 항상 하나님과 독대하는것은 중요하다. 영적인 교제를 통해서 Tune Up 하는것도 말할수 없이 중요하다.
자신의 내면이 완전하게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내면의 문제조차 무엇인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이러한 영적인 은사와 능력 그리고, 하나님께서 부어 주신것들을 자신의 기준에서 마음대로 사용하게 된다면 다른 영혼들에게 큰 상처를 줄수 있을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영육간의 축복을 잘 다스려야 할것이다.
잘못하면 나도, 우리도, 옆에 있는 사람도 힘들게 할수 있기에 그렇다.
사탄은 우리를 착각하게 만들수 있다. 고난 뒤에 마치 우리가 진정한 의인이 된것처럼, 다른 사람보다 탁월한 믿음의 사람인것 처럼 생각하게 만들수 있다. 그때부터 무너짐의 시작일수 있다.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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