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주도권을 쥐는것이 영권이다. (74)
"바로가 요셉에게 묻되 네 연세가 얼마뇨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창47:9-10)
<오늘의 칼럼을 저의 사랑하는 어머니를 위해서 드립니다. 저를 위해서 태중에서부터 중보해 주셨던 어머니.
제가 받아 왔던 고된 훈련과 연단때문에 하루도 마음 편하게 쉬실 날이 없으셨던 어머니. 이 모든 칼럼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훈련 가운데서 흘러 나온 저의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 어머니의 기도와 희생이 있으셨기에 오늘 부족한 믿음의 고백과 원리를 하나님 앞에 올려 드립니다. 사랑합니다.>
문제에 휘둘릴 때가 많이 있을것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연속으로 일어날때가 있을것이다. 아무리 지혜를 짜내어 보고, 생각을 해 보지만 능력밖의 일이 일어날때는 어디론가 숨고 싶지만, 그렇게 할수도 없다. 하나님께서 그 문제들을 우리 앞에 던져 버리시고, 정면으로 승부를 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수도 없다. 그러한 문제가 일때문에, 아니면 사람때문에...여러가지 모습으로 올때가 많지만 분명한것은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는것이다. 도망가고 싶지만 도망 갈수도 없다. 원든 싫든 그 문제를 안고 가야 한다.
두려운 마음때문에 밤잠을 못잘때도 많지만, 영과 혼이 깨어서 기도할수 밖에 없는 시간이다.
어느 순간에는 이러한 문제들이 다급해서 구석에 몰릴때도 많다. 처음에는 이런 저런 방법으로 변명도 해 보고, 수습도 해 보려고 하지만, 여전히 퇴로망이 없는 구석에 몰리게 된다. 맞고 또 두들겨 맞고...억울하고 원통하고... 이렇게만 꼬이고 힘들어야 하는것이 내 인생이구나 생각할 정도로 깊고 깊은 수렁으로 넣어 버리신다.
처음 문제가 왔을때는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려서 기도하지만, 곧 그 힘이 빠져 버리고, 지쳐서 넘어 지게 된다. 다시 일어나려고 하지만, 일어나 봤자 또 문제의 연속일텐데...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도 엄청 큰데...거기다가 또 다른 문제의 연속...
이러한 일이 일어날때는 신앙의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그것만이 살 길이다. 피할 궁리를 하면 더 몰리게 된다. 피하려고 하는것은 두려움이 내면에 깊이 차지하고 있다는것이다. 어두움에 덮이게 될것이다. 두려움을 통해서 사탄이 더 강력하게 역사하기 때문에 모든 퇴로를 차단하고 죽으면 죽으리라 결심하면서 믿음의 배수진을 쳐야 할것이다.
그래도 극심한 공격에 넘어 질수 있다. 쓰러질수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혼자가 아니라는것을 체험하게 될것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스며드는 평안을 느낄수 있을것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것이다.
먹구름만 보이던 내면에 빛이 들어 오게 된다. 그 믿음을 붙잡고 기도하게 되면 도저히 길이 없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길이 만들어 지게 될것이다. 하나님의 방법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는 순간이다.
하나님의 방법과 길은 치열한 영적 전쟁을 겪어야만 한다. 사탄과 마귀가 절대로 쉽게 지나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그 사랑을 끊게 하려고 발악하기 때문이다. 할수만 있다면 하나님과 철저하게 분리하고자 노력하는것이 사탄의 목적이다. 그래서 믿음 생활은 매 순간마다 방심할수 없다. 어느날 평안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사탄의 교묘한 영적 공격이 시작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늘 깨어 있어야만 하는 이유다.
영적으로 깨어있는것 못지 않게 중요한것이 겸손한 태도를 늘 마음에 새겨야 한다는것이다. 겸손한 사람만이 하나님을 찾을수 있으며, 하나님께 의뢰할수 있기 때문이다. 교만 자체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겸손으로 주님께 순복하게 될때, 그리고, 겸손으로 기도하게 될때 어두움의 세력은 더 빨리 힘을 잃게 된다.
치열한 영적 전쟁의 초반에 궁지에 몰리는것을 어렵지 않게 볼수 있다. 하나님의 영광이 크게 나타나는 곳에서 사탄의 강력한 진이 공격한다. 최전방에서 사탄의 정예부대가 함께 공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것은 우리와 함께 하는 하나님이 훨씬 더 강력하다는것이다. 우리에게 붙여 주신 하나님의 군대가 더 능력이 강하다는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우리의 태도며, 기도이다. 우리의 영혼의 자세다. 무릎 꿇는 곳에서 승리가 흘러 넘치게 된다.
이러한 어두움의 치열한 공격이 인생에서 몇번, 아니 수십번, 수백번도 더 있을수 있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러한 사탄의 공격의 칼날이 무뎌지는것을 경험하게 될것이다. 치열한 영적 공격을 생명걸고 주님 이름으로,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나가는 사람들만이 체험하게 되는 고백이다. 이러한 능력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볼수 있는 영적인 전리품은 영적인 주도권을 손에 쥐게 된다는 것이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이러한 사람은 모든 문제 해결의 핵심이 되며, 축복의 근원이 된다. 이러한 영적인 주도권이 있는 사람이 있는 곳에서 하늘문이 쉽게 열리는것을 볼수 있다. 함께 기도하면 막혔던 영적인 문이 쉽게 열려지는것을 경험할 수 있다.
영적인 주도권을 가진 사람이 하는 말에는 권세가 있다. 권위가 있다. 그 말이 결코 땅에 떨어 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으로 움직이며, 영적으로 설득하는 권세가 있는 사람이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혈기로, 사람을 억압하고 움직이는것이 아니라, 기도가운데 부드러운 말 몇마디로 영혼들을 주님 방법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이러한 영적 주도권이 상당한 영권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능력의 원천이셨다.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도 모두 이러한 권세와 능력이 있었다. 사무엘이 기도했을때 하나님께서는 블레셋으로 부터 이스라엘을 보호 하셨다. 엘리야에게 주셨던 영권과 능력으로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들과의 큰 영적 전쟁으로 부터 승리를 맛보게 하셨다.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우상으로 부터 보호하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러한 주도권을 엘리야에게 허락하셨다. 비록 포로로 끌려온 이스라엘 백성이었지만, 다니엘은 바벨론의 총리가 되어서 강력한 주도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을 할수가 있었다.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랬다. 결코 문제에 끌려 다니지 않았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로 문제의 핵심에 서게 하셨다. 고난과 핍박도 많이 따랐다. 인간적인 해결 방법이 전혀 없는것 처럼 보였다.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왔다. 그러나, 말씀 가운데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한명의 예외없이 영적인 주도권을 가지고 다시 일어섰다. 하나님이 일하셨기에 그렇다.
고난과 역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게 되고, 기도를 하게 된다. 많은 영적인 유익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 강력한 영권을 부여 받게 되는것이다. 강력한 영적인 주도권은 대가 지불이 요구되기도 한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한다. 눈물과 아픔을 미리 심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주도권을 주시는 사람에게 먼저 지헤를 허락하신다. 지혜가 Manual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과 마음이 그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 나타날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마음이 없는 주도권과 영권은 다른 영혼을 죽일수 있다. 공동체를 깨뜨릴수 있을것이다.
많은 연단이 필요하지만, 진정한 영권을 받기 위해서, 더 강한 능력으로 옷입기 위해서 필요한 몇가지 원리가 있다.
먼저는, 매일 매일 순결한 모습과 정결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것이다. 우리의 생각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과 정욕으로 섞여 버릴수 있다. 자아와 결코 분리 될수 없는 우리 내면이라서 영적으로 늘 깨어 있는것이 중요하다. 강력한 영권을 가지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치열한 회개의 시간이 요구된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아무 문제가 없는것 처럼 보이는것도 하나님 앞에서 더 깊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시라고 기도하고 기도해야 한다.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회개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더 성숙하고 더 발전된 모습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다듬어 져야 한다. Leader가 되기 위한 전제요건이다. 리더는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동기 부여를 하기 전에 하나님의 지성소에 깊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하나님의 임재는 회개의 열매를 맺게 한다. 회개는 내가 하는것이 아니다. 내 안의 영이 하는것이다. 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수 없는것이 회개 기도다. 간구 기도는 혼과 정신으로 할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회개 기도는 성령의 강력한 도우심이 있을때에만 가능하다. 영의 노래며, 영의 찬양이 회개다. 진정한 회개는 기쁨이 넘친다. 마음에 평안이 온다.
사방의 문제들로 감당하지 못해서 간구하는 기도로 시작해서 회개하게 될때가 많다. 회개의 의미는 하나님께 돌이키는것도 있지만, 우리의 모습을 하나님께 비춰 보는것이다. 영적인 깨어짐과 낮아짐...애통함이 회개다.
이러한 회개는 하나님의 마음이 임하기에 하늘문을 여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다.
하나님께 깊이 나아가는 사람일수록 회개의 시간을 많이 가지게 된다. 입술에서 맴도는 회개가 아니라 영으로 기도하게 된다. 이러한 회개의 열매는 영적인 민감성이다. 하나님의 뜻과 성령의 역사에 민감해진다.
회개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의 마음이다. 삶 속에서 죄를 안 지을수는 없다. 불가능하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이미 죄사함을 받았다. 문제는 이러한 은혜도 시간이 가면서 감정적으로 둔감해 질수 있다.
무디어 지다 보니 성령께서 삶속에서 어떤 변화가 있길 원하시는지, 어떤 마음을 가지기를 원하시는지 무감각해 질수 있다. 예배의 자리에 나아가면..."주여.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옵소서..."그렇게 기도하지만, 정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에서는 늘 Stereo type이다. 자신이 기준으로 세운 크리스챤으로서 원하는 형상에 도달하지 못해서 괴로운것이지, 성령에 민감해서 가슴을 두드리는 경우가 아닐수 있다.
회개의 목적도 하나님의 마음이지만, 회개 기도후에 맺게 되는 가장 큰 열매도 하나님의 시각과 마음이다.
모든 사물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기 위해서, 모든 일어나는 일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기 위해서 회개 기도가 필수적이다. 회개가 없는 곳에서는 원망과 좌절, 낙심이 가득하게 된다. 화살의 초점이 다른 사람을 향하기 때문이다. 회개 기도의 유익성은 모든 일의 처음과 끝을 자신의 영적인 상태로 보는 것이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돌이키는 것을 가장 우선으로 삼는것이다. 모든 태도를 하나님 앞에서 다시 조율하는것이다. 다른 영혼들에 대해서도 여유가 있다. 겸손의 태도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게 된다. 말로만 남들보다 못하다고 고백하는것이 아니라 영적인 진정한 고백으로 드리는 겸손이다. 하나님 앞에 늘 부족한 모습을 깨닫기에 그렇다. 회개 기도의 초점은 자신을 보는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하는것이다.
두번째, 이런 사람은 자유롭다. 모든 일에 대해서 숨김이 없고, 다른 사람을 억압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유롭지 못한 사람은 힘으로, 자신이 가진 수단으로 다른 사람을 눌러야 한다. 모든 것을 보는 관점이 이기느냐? 지느냐?로 보기때문이다. 이기지 못한다면 진다고 생각하기에 긴장감이 넘친다. 가까운 사람들의 부탁이나 요구, 필요에 민감할수 없다. 그들에게 끌려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 둘...들어주다 보면 상대에게 굴복한다고 생각하기에 그렇다.
영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상대방을 풀어준다. 이야기를 들어 준다. 위로해 준다. 조용히 옆에 있어준다.
상대의 필요에 민감하다.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 섬세하게 접근한다.
자유롭지 못한 사람의 특징은 목소리가 커진다. 말이 많아진다. 권위를 자신이 직접 세우려고 한다. 원통함과 분함을 이기지 못한다. 불평이 가득하다. 상대방의 단점에만 초점맞춘다. 모든것이 상대방 탓이다.
이런 사람들의 유형은 악순환이다. 태도가 변화되지 않으니 변화가 없다. 예배 드릴때 하나님께서 마음을 만져 주셔서 평안하지만, 생활가운데 연결되지 못한다. 남편을 보아도, 아내를 보아도...상대가 문제다.
그래서 가르쳐야 한다. 상대가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적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적인 힘이 없고, 감동이 없고, 삭막함만이 있다. 냉냉한 분위기가 흐른다. 갈등의 연속이다.
상대를 받아 주기에는 그릇도 작고, 마음의 여유도 없다. 상대를 힘으로 이기기 전에 이미 영적으로 지고 있다.
모든것을 세상의 힘의 원리로만 판단하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고난을 많이 겪으면서 영적인 원리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훈련의 목적을 다 놓쳐 버리는것이다. 일이 되고, 안되고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배울수 없다. 이 가운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깨닫을수 없다.
진정한 영적인 훈련은 영적인 자유함으로 인도한다. 영적인 자유로움...죄에서, 세상에서, 고난에서, 상처에서... 많은 부분에서의 진정한 자유로움. 자유롭기에 상처 받지 않고, 어두움이 마음을 차지 하지 않게 된다. 상처가 없기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지 않게 된다. 자신이 구속 받지 않기에 다른 사람을 구속하지 않게 된다.
다른 영혼들을 상처와 아픔에서 자유롭게 풀어 주는 사람이 주도권을 가지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권이 따르게 된다.
예수그리스도의 권세가 있어도 자신의 모습을 깨닫는 회개 기도의 열매가 있기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항상 비추어 보려고 애쓰는 사람이 진정한 영권의 사람이다. 성령의 검을 휘두르는게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이 중요한 핵심이기에 하나님과 영혼 앞에 겸손하다. 모든것이 자신의 영적인 상태와 태도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상대방 탓이 아니다. 자신의 모습에 문제를 맞추게 된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모든 상황을 해결하고 이끌수 있는 영적인 주도권을 주신다. 하나님 앞에서 객관성을 유지할수 있기에, 자신의 감정대로 움직이지 않기에 그렇다. 다른 영혼을 자신의 생각대로 휘두르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를 배려하기에 그러한 권세를 주셔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실수 있다. 이런 영혼의 말은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수 많은 전투에서 죽음의 시간을 맛보는 고통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 보석보다 귀한 영적인 원리가 자신의 것이 되었다. 그러한 원리에다가 하나님께서는 권능으로 옷입혀 주신다. 예수그리스도의 영권이다. 마귀가 두려워한다. 문제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영혼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이 있다. 그 영혼들을 상처와 아픔에서 치유하며,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권능이 있다. 그 말이 사람을 살린다. 그 행동속에 하나님의 보좌가 함께 움직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 많은 영혼들을 자유하게 한다.
이미 많은 능력이 우리 안에 주어져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기도로, 무릎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 더 많은 권세와 권능의 문을 더 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실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다.
이런 사람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도 대화와 모든 일의 주도권을 함께 쥐게 될것이다.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은헤이다. 영적인 일뿐만 아니라 세상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주변인이 아니라 핵심에 서 있는 사람이 될것이다. 없어서는 안되는 사람. 꼭 필요한 사람. 모든 문제에 다윗의 열쇠는 가지는 사람이 될것이다. 그러한 영권과 능권을 하나님께서 주실것이다. 상당한 지혜가 필요하다. 영적인 권세를 사용하는 manual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지혜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자신이 하는 몇마디의 말이 어떻게 응답되는지 보게 될것이다.
치유와 회복의 역사, 영혼이 자유롭게 되는 그곳에 이미 하나님의 권세가 주어 져 있다. 영혼들을 어두움에서 빛이 나게 하는 그 사람. 영혼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는 사람. 눈물을 닦아 주는 그 사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 두시지 않을것이다. 수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건져 내신다. 이러한 능력을 주시려고, 권능과 지혜를 얻게 하시려고 잠시 허락한 시간이었지만, 하나님 나라와 다른 영혼들을 위해서 반드시 반석에 세우신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법칙이다. 훈련은 짧다. 하지만, 여기서 얻는 영적인 원리와 권능은 엄청난 역사를 일으킬것이다. 하나님의 꿈과 희망이 담겨 있다. 진정한 성령의 날개를 다는 첫단추가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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