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나와 같은 사람. (71)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삼상 24:6)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망하리니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 가는 것이 상책이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경내에서 나를 수색하다가 절망하리니 내가 그 손에서 벗어나니라 하고 일어나 함께 있는 육백 인으로 더불어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삼상 27:1-2)
모든 훈련에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목적과 계획이 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 시간의 길이가 각자 다를뿐, 훈련 뒤에 깨닫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한 여름에 마실수 있는 시원한 생수와 같을것이다. 깊은 숲사이를 걸어 갈때는 하나님의 숨겨진 계획을 제대로 알수가 없다. 좁디 좁은 거친 길에서 한발자욱 옮길때마다 느껴지는 뾰족한 돌과 거친 바위에 1분 1초가 길게 느껴진다. 스쳐지나는 나무가 고통스럽게 생각이 나고, 무거운 몸을 옮기는 그 순간의 느낌과 마음이 가슴속 깊이 새겨진다. 그 어려운 시간을 지나갈때 우리의 영과 혼에 각인되는 고통스러운 감각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는것이다. 어떤 길로 가야 할지, 어떻게 이 길을 통과 할수 있을지 까막득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길을 반드시 통과하게 하신다.
오히려 이 시간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친밀감을 잊어 버리게 되고, 하나님 앞에 가졌던 초심을 잃어 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다. 고난은 반드시 끝이 있다. 숲 가운데 있을때는 스쳐 지나 가는 한 그루의 나무가 고통으로 다가오지만, 다 통과 한후에 높은 정상에서 바라보는 그 큰 숲의 모양을 보며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과 선하신 뜻에 감탄하고 경탄하게 될것이다. 이유없는 고난은 없다. 목적 없는 어려움은 없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허용하시기 때문이다.
오늘과 내일 스쳐 지나가는 거친 나무와 뾰족한 돌들이 인생의 경륜과 원리로 남을 것이다. 다른 영혼을 사랑하는 긍휼함으로 마음에 새겨 질것이다. 인생의 깊이와 지혜가 되어서 하나님의 뜻에 대한 통찰력과 분별력이 될것이다. 기도한다고 하늘에서 갑자기 주어 지는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거칠것은 거쳐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생의 척박한 길에서 배우는 영적인 원리와 인생의 경륜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이 길을 우리와 함께 걷고 있다. 급할수록 하나님의 훈련 강도는 더 강해진다.
누구보다도 척박한 길을 걸었던 한 사람이 있다. 바로 다윗이다. 나와 같이, 우리처럼 평범한 인생의 길에서 시작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훈련이 혹독했고, 어렵고 거칠었다. 평범해 보였던 어린 소년의 인생이었지만, 그 입술의 놀라운 고백에서 부터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고, 인생의 고난 중에서 어떤 별보다도 더 환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그 사람이 바로 다윗이다.
다윗에게 어려움이 없었다면 평범한 인생이 되었을것이다. 고난은 그를 하나님 앞으로 더 깊이 나아가도록 도와 주었고, 그 고난은 다윗을 열심히 만들었다. 더 넓고 큰 인생으로, 많은 영혼을 마음에 품을수 있는 큰 그릇으로...
수 많은 실패와 아픔이 그를 더 넉넉하게 만들었고, 뼈저리는 고통이 그를 영혼의 위로자로 세워 주었다.
시편에 향기 나는 찬양으로 기록되어져 있다. 다윗의 노래이다.
거친 광야의 길에서 의지할 인생이 없었던 그 시간이 하나님 앞에서 예배자로 노래 하게 했다.
다윗은 고난 중에 하나님만 찾는 사람이었다. 그 고난이 다윗을 성공하게 만들었다. 하나님 앞에서, 인생 앞에서... 그 어려움 가운데 흘러 나오는 위대한 고백은 오늘 거친 길을 걷는 나를 위로한다. 감동을 준다. 주님을 더 예배하고 싶게 만든다. 하나님을 찾는 생명수의 역할을 한다. 때로는 다윗처럼 위대한 고백이 넘치지 못해서 부끄러울때도 많다. 믿음의 크기를 비교하면서...이것 밖에 되지 못하는 나를 자책할때도 많다. 그러나, 그런 다윗을 만든 것은 하나님의 열심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렇게 했다.
그럼에도, 다윗은 나와 같은 사람이었다. 고난을 두려워했으며, 아픔과 질병을 무서워 했고, 도망가고 싶어 했다. 강하고 담대하기 보다 피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더 컸고, 하나님에 대한 절대 고독 속에서 사람에 대한 외로움 또한 작지 않았다. 실패속에서 좌절을 겪는 모습 또한 나와 같다. 고통속에서 느껴지는 두려움이 커서 벌벌 떠는 모습도 우리와 같다. 하나님은 나와 같은 다윗. 우리 모습의 다윗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계신다.
특별한 다윗이 아니라 평범한 다윗을 통해서. 그러나, 그러한 고통 가운데, 두려움가운데 벌벌 떨고 있는 다윗이 그 마음 중심이 드려 질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반응하시고, 응답하시는지 다윗을 통해서 분명히 보여 주셨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의 약함속에서 자주 무너 졌던 다윗. 그에게 사울에 대한 두려움은 결코 작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때로는 그 두려움이 하나님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도망하고 피했다. 그래도 사울 왕은 늘 근처에서 맴돌았다. 그 스스로 보호한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지키셨기에 다윗은 안전할수 있었다.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강한 손이 느껴지지 않을때가 많다. 내가 약할때 그렇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하나님의 모든 테스트에 합격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고,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다 이루셨다. 하나님의 열심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사울이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 하였으나 그는 사울의 앞을 피하고 사울의 창은 벽에 박힌지라 다윗이 그 밤에 도피하매..."(삼상 19:10)
그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사람인 사울을 두려워 했다. 믿음 중의 믿음의 사람, 다윗. 그의 온 마음이 하나님으로 가득하고 하나님만 노래했던 다윗은 하나님을 늘 사랑하고 경외했다. 하지만, 그는 사람 때문에 무너졌다. 두려움 때문에 넘어졌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도 그를 죽이려고 했던 사울왕 앞에서 두려움에 떨면서 도망가야만 했다. 골리앗을 믿음으로 죽였던 다윗.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왕 사울이기에 머리털 하나 건드리고 싶어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주권에 맡겨 드렸지만...그 역시 자신을 힘들게 했던 사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나와 같다. 우리의 모습이다. 오늘은 믿음이 있어서 하늘에서 불을 떨어 뜨렸던 엘리야, 하나님의 특심한 마음을 가졌던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 역시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들과 치열한 영적 전투를 승리로 끝내 놓고선 이세벨 여왕의 말 한마디에 두려움으로 도망 가야만 했다. 로뎀 나무 옆에서 쓰러져 있어야만 했다.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던 다윗과 엘리야.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요의 주인공. 다윗. 그러나, 사울 왕 때문에 깊은 산으로 숨어 들어가야만 했던 다윗. 그리고, 갈멜산의 엄청난 영적 전쟁 후, 로뎀 나무 옆에서 주저 앉아 있어야만 했던 엘리야.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기에...그런 모습이 내 모습이기에 오늘도 또 다시 희망을 가지고 일어선다.
그러했던 다윗과 엘리야의 삶의 아름다운 결국이 어떠했는지 너무나 잘 알기에...하나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실것을 잘 알기에.
어느 날은 하나님을 찬양하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닥쳐 오는 어려움과 고난에 끝없는 두려움과 불안의 늪에 깊이 빠지게 될때가 많다. 호렙산의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이세벨만 보인다. 우는 사자처럼 달라드는 원수의 모습에 나는 한없이 도망가 버린다. 넘어졌다가 일어났다가...나 뿐이 아니다. 다윗도, 엘리야도 그랬다. 문제는 다시 일어나느냐다. 빨리 일어나는것이 능력이다. 일어나기만 하면 된다. 넘어져 있을 시간이 없다. 아무리 길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길을 만드신다. 진정한 믿음은 넘어졌을때 어떻게 일어나느냐에 있다. 얼마나 빨리 일어나는것이 능력이다. 하나님도 우리가 두려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음을 잘 알고 계신다. 그리고, 용납하시고, 일으켜 세우신다. 두려움...믿음의 가장 큰 적이다. 동시에 그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더 붙잡게 되는 보호 장치이기도 하다.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삼상30:6)
다윗도 나와 같은 사람이다. 우리의 모습이다. 그렇게 충만한 믿음으로 가득 차 있었던 다윗. 하나님께 모든것을 의탁하고 모든것을 상의했던 다윗. 하지만,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하나님께 여쭈어 본것은 아니었다.
사울 왕에게 오랫동안 쫓겨다니면서 하나님의 특별한 건지심이 눈에 보이지 않자 지칠수 밖에 없었다. 어느날 불안과 초조속에서 하나님께 여쭈어 보지도 않고 스스로 쉽게 결정해 버린다.
이스라엘을 벗어나 블레셋의 경내로 들어가기로 결정한다. 하나님과 상의없이 그 자신이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 지금까지 사울 왕으로부터 완전하게 보호 하셨던 하나님보다 자신의 방법을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자신의 수하 600명을 데리고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간다. 그 결과는 다윗의 판단대로 사울이 더 이상 쫓아 오지 않았다. 그 자신의 판단이 맞는것 처럼 보였다. 이제부터 평안과 평화가 시작된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기스왕에게 아부를 해야 하는 비참한 상황에 놓이게 되고, 블레셋 사람들의 시기, 질투와 불신속에서 아슬아슬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비록 사울왕의 손에서 벗어난것 처럼 보였지만, 아직 훈련의 시간이 다 끝이 난것이 아니었다. 또 다른 모습의 어려움으로 바뀌어서 연단은 계속되고 있었다.
하나님의 시간에 모든 훈련이 마무리 되기 까지 피한다고 피할수 있는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강한 손안에 피하는것이 가장 최선이며, 하나님의 방법이 최고의 수단이다. 때때로 다윗이 인간적인 방법을 쓸때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보호 하셨다. 감싸 안으셨다. 그 마음 중심을 아시고, 그 연약함을 이해하시기에...
하지만, 다윗은 그 인간적인 선택으로 대가를 지불해야 할때도 있었다. 블레셋 땅에 머물렀기에, 그 지역의 사람들로 부터 따돌림과 적대어린 시선을 받아야 했고, 어떤때는 아말렉의 공격으로 자신들의 처자식이 모조리 잡혀 가는 수모도 당했다. 자신이 그토록 믿었던 자신의 수하들로 부터 돌을 맞을뻔 하는 상황까지 다윗은 몰리게 되었다. 사울이 아니라 하더라도 블레셋으로, 아말렉으로, 자신의 부하로 부터 고난이 왔다. 여러가지 거쳐야 할 훈련은 반드시 거치게 되어 있다.
나 또한,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에서 인간적인 방법을 쓰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그 순간에는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지혜처럼 느껴진다. 그 상황에 가장 최선의 방법인것 같다. 이 순간을 잘 모면할 수 있는 길인것 같다. 하지만, 기도하면서 점점 깊이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사실을...기도를 하고 또 하다 보면 생각이 정리가 된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주장하신다. 그것이 기도다. 기도없이 움직일때는 어느 순간에 상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시간이 올수도 있다. 사탄이 그 틈을 노려서 깊은 늪에 빠지게 하려고 도사리기 때문이다. 영분별력이 필요한 이유중의 하나다.
너무 지쳐서 기도 없이 인간적인 선택을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보호하시고, 이끌어 주실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 질것이다. 하지만, 하지 않아도 될 대가를 지불해야만 하는 상황이 올수도 있다.
아말렉에게 처자식이 모두 끌려가고 부하들로 부터 돌을 맞을뻔한 다윗을 하나님은 도우셨다.
그 순간 다윗은 하나님을 다시 의지 했다. 하나님께서 쫓아가면 반드시 다시 되찾게 될것이라고 응답하셨다.
다시 믿음으로 일어섰다. 쫓아갔다. 머리가 복잡했지만 하나님만 의지했다. 다른 어떤 사람의 음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였다. 그 결국은 잃은것 없이 빼앗겼던 모든것을 다시 되찾았다. 하나님께서 도우셨다. 다윗이 왕이 되기 전 블레셋땅에서 주어졌던 마지막 test였다.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의 낳은 아기가 정녕 죽으리라 하고" (삼하 12:13-14)
환란과 고난에 무척 익숙했던 사람. 다윗...그러나 사방에 적이 없고 모든것이 평온했을때 그는 스스로 무너졌다. 다른 가시 때문이 아니라, 다른 원수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이 스스로 무너졌다. 환란과 고난에서 자신을 다듬는것과 유혹앞에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모습은 별개다. 어떤 사람은 고난에 강할수 있지만, 조그마한 유혹앞에서는 맥없이 무너 질수 있다. 환란이 왔을때는 금식과 엄청난 기도로 중무장을 하다가 평안함이 왔을때 어느 누가 흔들지도 않았는데 혼자 무너 지는 경우도 많다.
다윗이 그랬다. 사람으로서 어느 누구도 쉽게 감당할 수 없는 모든 어려움을 기도로, 눈물로 다 이겨 놓고선 승리의 영광 가운데 그 자신을 지켜 내기 어려웠다.
수 많은 여인을 자신의 아내로 받아 들였던 다윗은 그것으로도 만족할수 없었나 보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많은 것을 허락했지만, 자족하고, 손에 쥐어준 부분에 감사하며 절제하기 보다는 편안함 가운데 그 생각이 이끄는대로 마음을 풀어 버렸다. 그리고 넘어졌다. 자신이 어디로 끌려 가는지도 모르는채로.
다윗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다. 우리 전체의 모습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강하다. 또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약하다. 어떤 골짜기에서는 강력한 믿음으로 하나님만 바라본다. 어떤 평지에서는 장애물 없이 유혹 앞에서 자신을 스스로 무장해제 해 버린다. 외부의 적보다 자신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하나님께서 그 어떤 부분보다 우리 자신을 다스리고 절제하기를 원하신다. 형통함의 축복은 여기서 부터 시작 된다. 말씀과 기도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나와 우리는 쉽게 넘어 진다. 오늘 갈멜산에 승리를 맛보고 내일은 로뎀 나무 아래에서 쓰러져 있다.
다행히 그 위대했던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우리와 같다. 우리처럼 연약했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쉽게 무너졌다. 위로가 된다.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났을때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셨기에 마음에 큰 소망이 생긴다. 반복적으로 지속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시겠지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기에 책망도, 질책도 하시는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진정한 용서와 안식을 경험하게 하실것이다. 그러한 하나님의 크신 용서를 경험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용서할수 있을것이다. 하나님의 용서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것을 깨달을수 있을것이며, 다른 영혼을 용서하고 감싸 안는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경험하게 될것이다.
다윗은 나와 같은 사람이다. 자신이 두려워 하는것을 감당하기 어려워서 멀리 도망치는 모습,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안에 거하면서도 벌벌 떠는 모습,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즐거워 하기 보다는 고통하는 모습... 나와 같은 모습이다.
그러한 아픔이 싫어서 어떻게 하면 빠져 나갈수 있을까 고민하는 모습.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도 나 혼자 살 궁리를 처절하게 하고 있는 내면. 다급할때는 하나님의 뜻보다 내 뜻이 우선일때가 많다. 평상 시는 하나님께 물어 보다가 정말 급할때는 혼자 결정해 버리는 모습. 하나님과 그렇게 친밀했던 다윗조차 때로는 하나님께 묻는것을 소홀히 할때가 있었다. 종종 그런 문제로 쓰러지는 우리이기에 다윗을 통해서 위로를 받는다.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 생명 걸면서 엎드리다가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평안함과 축복을 이기지 못해서 넘어지는 모습. 실수의 실수. 알면서도 넘어져야만 했던 그러한 모습. 고난보다 유혹을 이기기 어려워서 한순간에 너무나 어이없이 무너져야 했던 다윗이 바로 나와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다윗이 그랬다. 넘어졌다가 일어섰다가 수도 없이 반복했다. 나도 그랬다. 우리가 그런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이미 그러한 연약함을 다 아시고 받아 주셨다.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계획과 치유와 회복의 시간을 허락하실것이다. 어느 정도, 하나님의 시간을 보낸 후에, 어느 순간에 다시 비상하게 될것이다. 넘어지는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문제는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일어서려는 사람에게 손가락질 하는것이다. 다른 영혼이 고통하고 있는 순간이다. 처절한 영적 전쟁 중이다.
하나님께서 돕고 계신다. 다윗의 인생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시면서, 다시 하나님앞에서 마음을 새롭게 할때 어떠한 은혜와 위로와 인생의 계획을 허락하시는지 다윗을 통해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허물 많은 다윗이기에, 많은 약점을 가진 다윗이기에 위로가 된다. 그 모습이 내 모습이기에. 우리 모두의 인생의 아픈 흔적이기에...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이다. 주님 안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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