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Weekly칼럼(51-100)

하나님이 사랑했던 고멜 (69)

Joseph Lee 목사 2013. 10. 31. 05:17

 

 

하나님이 사랑했던 고멜 (69)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호6:1-3)

<josephlee0212@gmail.com>

 

 

나는 고멜이다. 내 힘으로 절대로 호세아가 될수 없다. 호세아처럼 다른 고멜을 사랑할 수도 없다. 고멜은 호세아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 여인이다. 호세아를 떠나 아무리 음란하고, 다른 곳에 마음을 두면서 우상을 섬기더라도 호세아의 유일한 여인이다. 자신의 마음 중심을 잡지 못하는 불행한 여인이면서, 한 남자인 호세아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점에서 축복 받은 여인이다. 아무리 변덕스럽고, 제멋대로 살아도 호세아의 보호 속에 있다. 끝까지 자신의 아내로 여겨준다. 그리고, 존중해 준다. 한번도 아니고, 여러번을...수십번을.

그렇게 호세아는 받아 주고 사랑해 준다. 그 고멜이 바로 나이며, 우리다.

영적으로 은혜가 임하면 하나님 밖에 모르는 것처럼 고백한다. 하나님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노래한다. 은혜가 조금 떨어지면, 이 세상에 왜 나를 만드셨냐고, 왜 고통속에서 시간을 보내게 하시냐고 항변한다.

변덕스럽게 넘어졌다가 일어났다가 반복한다. 제 멋대로다. 하고 싶은대로 한다. 꾸준하지가 못하다.

고멜의 모습이다. 나의 심장에 호세아의 모습이 더 깊게 새겨지길 원했지만, 고멜의 모습이 온 마음을 차지 하는듯 하다. 고멜의 가장 큰 문제는 자아 속에 깊이 숨겨진 내면 속의 고멜이 무엇이었는지 몰랐다는 점이다.

몰랐기에 무시하며, 당연한듯 살았고, 끊임 없는 반복속에서 호세아의 마음을 칼로 찌르고 도려냈다는것이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고멜의 가시가 호세아의 마음을 짖누르게 했다. 고멜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 내기 위해서는 그 안에 숨겨진 깊은 자아를 깨닫는데서 시작한다.

 

첫번째 내 안에 깊이 숨겨진 고멜은 열등감과 피해의식이다.

어린 시간부터 형성되고 만들어진 모습이다. 자신을 늘 다른 사람과 비교의 대상으로 만들어 왔다. 남들보다 조금 더 잘 하면 우쭐하거나 목에 힘이 들어간다. 반대로 계획했던 일이 잘 안 되거나 어려워질때는 극심한 열등감에 휩싸이게 된다. 열등감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교만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을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왜곡해서 듣는것도 심각한 피해의식에서 나온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도 기분이 안 좋거나 컨디션이 안 좋을때는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상대방 생각이 어찌되었든 자기 방식대로 해석해 버린다. 그리고, 마음이 강팍해져 버린다. 주기적으로 찾아 올때가 많다. 이런 경우 감정의 기복이 심해진다. 조금 기분이 좋아지면 모든것이 감사해지다가, 조금 나빠지면 깊은 수렁속에 빠져서 나오기가 어려워진다.

말을 해도 말속에 가시가 숨어 있을때가 있다. 남들이 잘되는것을 보지 못한다. 겉으로는 축복하는것 처럼 말하지만 마음에는 뿌리 깊은 열등감과 피해의식이 움직인다.

주어진 환경과 맡겨진 일에 감사하며 만족하기 보다는 남들과 비교를 한다. 이런 생각은 뿌리가 깊어서 정신세계의 중추 신경을 장악하는 경우가 많다. 날카롭다. 예민하다. 자기에게 남들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상당히 민감해 한다. 자기 보다 성공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만족하기도 한다. '내가 이런 사람들과 친하다니...' 대화 내용에 과시가 가득하다. '내가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을 아는데... 그런 사람과 친하다. 전화만 하면 연결이 쉽게 되는 사람이다. 그 사람에 대해서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이 없을것이다. 대화 내용에서 과시욕이 가득하다.  대화를 통해서 자신을 높이고 싶은것이다. 열등감에 대한 보상과 함께 그 부족한 모습을 그런씩으로 감추는것이 습관화 되어 있다. 주님안에서 자유하지 못하다.

지나온 시간이 화려한 시간이었다는 말이 늘 입술에 붙어있다. 예전에 얼마나 잘 나가던 사람이었는데, 그런 집안이었는데...얼마나 큰 집을 가지고 있었는데...어느 학교를 나왔고,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데...그런 말들.

현재 자신의 어려운 모습에 대해서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미래에 성공할 모습만이 자신의 모습이며, 지금 막히고, 어려운 모습에 대해서는 감추고 싶어 한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숨막힌다. 마음이 답답하다. 도피적인 미래형의 사람이다.

오늘이 싫어서 열등감을 풀어줄 내일을 기다리는 고멜이다. 그러한 내일이 온다고 할지라도 열등감이 아닌 교만으로 다른 사람을 비하하고 무시할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하루 아침에 변화 시킬수 없는 내 안의 고멜이다. 깨닫고 고치려고 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이미 정신 세계를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있는대로의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한다.

호세아이신 하나님은 이러한 나같은 고멜을 사랑하셨다. 아무리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허우적거려도 나를 버리시지 않는다. 기다려 주신다. 강하게 몰아쳐서 고치시는것이 아니라 온유하고 섬세하게 만져 주신다.

 

두번째 열등감으로 가득찬 고멜은 있는대로 솔직하게 자기 모습을 보여 줄수가 없다. 가려야 한다. 감추어야 한다. 좋은것만 보여 주고 싶어한다. 여러가지 단점과 어려운 현실의 모습을 누군가 알까봐 두렵다.

누군가가 힘든 형편의 안부를 묻는것조차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럴때는 사람들로 부터 도망치고 싶다. 나중에 모든것이 잘되면 그때서야 혜성처럼 나타나서 보여 주고 싶다.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혼자서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모든 일이 아주 잘되고 있습니다. 모든 일이 너무 잘 풀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는 마음도 있지만, 자신을 높이고 싶은 것이다. 영적으로 포장을 하려고 한다. 그러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좋아한다.

영적으로 다른 사람을 컨트롤하기에 익숙하다. 모든것을 있는대로 오픈해서 삶을 나누지를 못한다. 자신의 부족한 모습이 드러날까봐 조마조마 하기 때문이다. 생명걸고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기도 제목을 낼때도 포장을 한다. 아주 어렵게, 그것도 자신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만큼 이야기를 한다.

영적으로 포장을 잘 하는 사람은 결코 자신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한다. 사람들을 만나도 긴장한다.

항상 웃으며 아무 문제가 없는척하려고 한다. '하나님의 은혜속에 모든 일이 잘 되고 있습니다.

아무 염려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시는데요. 부족한것이 없습니다. 늘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어두운 그늘이 가득하다. 깊은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 상대방이 부담스러워 한다. 영적 거인처럼 행동한다. 성숙한 크리스챤으로 보이려고 노력한다. 늘 정답만 주는 대화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솔직한 내면을 보여 주지 않기에 대화가 겉돌기가 일수다.

이런 사람은 외롭다. 항상 포장을 해야 하며, 가면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부족한 모습을 알까봐 두근거린다.

이런 내면의 고멜이 강한 사람은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달라고 심각하게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응답보다도 영적으로 자유하게 만들고 싶으셔서 일하실것이다. 육적인 응답을 갈구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게 가장 큰 응답은 이러한 영적인 포장과 가면을 벗기는것이다. 이곳에서 하나님과의 솔직한 깊은 만남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영혼과의 교제가 이루어 지는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부터 영적인 성장이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비젼을 위한 내면의 기초 공사가 세워지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유롭다. 영적으로 솔직한 사람은 조금 못가져도, 못 배워도, 할줄 아는것이 없어도 다른 사람 앞에서 당당한 하나님의 자존감이 있는 사람이다. 담대하다. 솔직하다. 있는대로 사람에게 이야기한다. 자신의 어려움을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면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영적인 축복의 모습이 결국은 육적인 축복을 가지고 오는 영적인 Key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원하셨던 영적인 원리는 다스리고 정복하는것이다.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사람은 이미 성령의 큰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영적인 원리를 자기것으로 만드는 사람은 육적으로 어떠한 축복이 와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잘 다스리게 될것이다. 이런 사람은 내면의 세계가 질서정연하다. 어떠한 문제가 와도 담대하다.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께로만 초점이 맞추어 진사람이다.

 

 

세번째 내 안의 고멜은 외로움이다. 마음이 여리고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외로움을 잘 탄다. 혼자 있기 보다는 자신과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있기를 좋아한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필수적으로 시키시는 훈련이 사람에 대한 훈련과 외로움에 대한 연단이다. 하나님 외에 어느 누구도 믿을 존재가 없다는것을 뼈속 깊이 가르쳐 주시며, 사람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채워질때 깊은 평안과 진정한 즐거움을 느낄수 있다는것을 반드시 가르치신다. 외로움은 잘만 다듬어 지면 하나님에 대한 갈망으로 연결되어 진다. 하지만, 반대로 하나님보다 늘 사람들을 찾으려고 할수 있다.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보다 사람을 먼저 찾는다. 사람들과 상의하는것을 더 편하게 여긴다. 하나님과의 기도속에서 Sign을 받는것을 어려워한다. 꾸준한 기도가운데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지 못한다. 행동이 급하다. 하나님보다 앞서 나간다. 이러한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은 조금 생각하지 못한 일이 나면 견디지를 못한다.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은 주변에 사람들이 많을때 포근함을 느낀다. 행복감을 느낀다.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데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려고 한다. 또한,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은 마음이 더 따뜻할수 있다. 정이 많다. 긍휼이 많을 수 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기대가 많아서 사람들의 말과 행동 하나에 기분이 좋아질수도, 쉽게 나빠질수도 있다. 기도의 방해를 쉽게 받는다. 사람들을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외로움이 크면 클수록 자기 연민이 강할수 있다. 자신이 불쌍해진다. 오직 자신만이 버려진 사람같다. 자신만이 더 어려움을 겪는것 같다. 자신감도 잃어버린다. 지나친 자기 연민은 그만큼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다.

우상일 수 있다. 세상의 중심이 자기 자신이다. 사람을 보아도 자신에게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예민해진다.

영혼과 하나님의 필요에 민감한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항상 관건이다.

이기적일수 있다. 자신이 남들에게 어떻게 하느냐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연민이 있는 사람은 눈물이 많다. 감동받아서 우는것이 아니라 서운해서 잘 운다. 모든것이 섭섭하다.

어느 순간에 기다렸다는 듯이 가까운 사람에게 그 서운한 마음을 쏟아내어야 한다.

내 자신 속에 깊이 숨겨진 고멜이다. 벗어나고 싶지만, 내 힘으로는 절대로 감당할 수 없는 또 다른 나이다.

겉으로는 거룩해 보이지만, 내면은 이러한 고멜로 곪아서 허우적 거린다.

하나님은 고멜을 더 이상 아프게 내버려 두시지 않으신다. 치유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지가 무척 강하다.

여러 훈련과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통해서 이러한 부분을 touch하시지만, 나의 우둔함때문에 못 깨달을때가 많다.

 

네번째 내안의 끊기 힘든 고멜은 이기적인 꿈이다. 야망이다. 세상에 보여 주고 싶은 내 자신의 모습이다. 자신의 야망과 하나님의 순수한 비젼이 섞여서 뒤범벅 되는 지점이다. 집념이 강하면 강할수록 자신의 힘으로 이루고 싶은것이 많아진다. 세상에서 하고 싶은것도, 가지고 싶은것도, 누리고 싶은것도 많기 때문이다. 기도를 이용하고 싶어한다.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사용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또한, 하나님께 Deal을 하고 싶어한다. 한번만 이런 꿈을 이루어주시면 하나님께 많은것을 드리겠다고 고백한다. 그 야망에는 숨겨진 날카로운 칼이 도사리고 있다.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다. 야망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늘 머리가 되고 싶어한다. 다른 사람들을 꼬리처럼 생각한다. 그 꼬리를 이끌기 위해서 오랫동안 하나님으로 부터 훈련을 받아 왔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섬겨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신이 Lead하고, 가르쳐야 하며, 그들에게 자신이 아니면 채워줄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문제점을 듣고, 기도로 도우며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돕는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주입시킨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이 절대적으로 맞다고 생각하고, 상대가 그대로 따라 주기를 원한다. 거칠기까지 하다. 자기 주장이 강해진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이기고 지는 관계가 되어 버린다. 상대가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자신이 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이기려고 한다.

이런 가운데서 상대방과 마찰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인도하시고 이끄시는 방법이 다 다르다.

허용하는 범위도 각자 다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사람은 야망을 위해서 자신이 노력하는것을 희생하는것이라고 생각한다. 보상 심리가 강하다. 그만큼 희생했다고 생각했기에 다른 영혼을 짖밟고서라도 보상 받고 싶어한다. 다른 영혼들의 아픔에 무감각해 질수 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 해도 성공과 목적을 위해서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안에는 수 많은 고멜이 살고 있다. 다듬어 지지 않은 내 자아의 숨은 모습이 어느 순간부터는 절대로 놓을수 없는 나만의 우상이 되어 버렸다. 그 우상이 어느덧 나 홀로의 경배의 대상이 된듯하다. 조금이라도 상처를 받는다든지 흠집이 난다든지 하면 견디지 못한다. 밤새 끙끙 앓는다. 어떻게든 자신의 방법으로 자신의 내면의 우상을 복원시키려고 한다.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데서 문제가 시작된다. 지나친 외로움도, 자기연민도, 자기 과시와 포장도, 과도한 열등감과 피해의식...모두가 자기 사랑에서 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은 이 모든것을 아시고 감싸 안으셨다. 그리고, 치유하고 치료하기를 원하신다. 이것은 성격문제도, 성품과 기질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영혼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 안의 고멜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것이다. 다른 영혼들을 찌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상대가 얼마나 아파하는지 제대로 모르는 가운데 다른 영혼을 아프게 한다. 내면의 중심부에서 하나님은 온유하고 섬세한 방법으로 일하기 시작하셨다.

자기에 대한 사랑을 하나님만 바라보는 주바라라기로, 자신의 아픔을 위해서 우는 대신 다른 영혼들을 감싸안는 중보 기도자로 세우고 계신다. 오늘 하루의 매 순간에 그 어떠한 기도 제목보다 이러한 상처받은 고멜을 감싸안기 위해서 하나님은 열심히 일하신다. 고멜에게는 호세아가 필요하다. 호세아를 만나야 치료가 된다.

그분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호세아와 같은 교회, 중보 기도 공동체가 필요하다. 호세아와 같이 감싸 안을수 있는 영적인 아버지, 가정이 필요하다. 호세아와 같이 기다려 주는 사역이 있어야 한다.

고멜 대신 울어 주고, 대신 아파 해 줄수 있는 사람. 대신 매 맞아 주고, 대신 고통해 줄수 있는 그 사람이 바로 호세아다. 내 안에 호세아는 없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열심히 그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 줄수 있는 교회, 가정을 오늘도 만들고 계신다. 고멜을 치유하기 위해서...

우리의 자녀들을 보면서 이러한 상처 받은 내면의 고멜이 치유되기 보다 육적인 화려한 이세벨이 되기를 꿈꾸는것은 아닌지. 사업에서도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오직 세상적인 성공만을 위해서 열심히 달려가는 아간의 모습만이 우리 삶을 차지 하는것은 아닌지...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내면의 세계에 묻고 계신다.

'너의 이름은 뭐니?'

' 하나님, 전...당신없이 살수 없는 상처받은 고멜입니다. 당신만이 나의 호세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