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Weekly칼럼(51-100)

내 안의 아이성이 더 어렵다. (66)

Joseph Lee 목사 2013. 10. 31. 05:14

 

 

내 안의 아이성이 더 어렵다. (66)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명성이 그 온땅에 퍼지니라" (수 6:27)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마소서 하므로 백성 중 삼천 명쯤 그리로 올라갔다가 아이 사람 앞에서 도망하니...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된지라" (수 7:3-5) 

 

<josephlee0212@gmail.com>

 

하나님과 함께라면 큰 문제때문에 쉽게 넘어지지는 않을것이다. 기도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감당하기에 큰 문제일수록, 하나님을 의지 하는 사람이라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찌르는 가시의 정도가 크면 클수록 영혼의 진액을 쏟는 기도를 하게 된다. 잠을 자도, 음식을 먹어도 어느 곳 하나 마음이 편안한 곳이 없지만, 하나님의 평안이 마음을 감싸 안으면서 이겨내게 하신다. 기도에 집중할때의 이야기다. 이러한 큰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을 대면할때는 어느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아무 이야기도 들리지 않는다. 하나님만 온전하게 바라보는 시간이기에 그렇다. 사방이 암흑으로 가득하지만, 영혼에는 성령의 해가 밝게 떠오르는 시간이다. 어느 순간이 지나서 하나님께서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길을 여셔서그 길을 통과하다 보면 그동안 영육간에 극도로 긴장했던 마음들이 조금씩 풀리면서 평상심으로 돌아 가게 된다. 이후 며칠은 새로운 시간을 찾은것 같은 느낌이다. 사물이 새롭게 보이고, 만나는 사람들이 귀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런 감정도, 느낌도 며칠만 지나면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다시 일상 생활로 깊이 돌아가 버린다. 사람이기에 그렇다. 그 어려웠던 시간에 대한 기억도, 하나님께서 건져 주셨던 그 은혜에 대한 감격의 뜨거움도 며칠 사이에 희미해 지면서 또 하나의 추억으로 남게 된다..

 

사람은 항상 긴장할 수 없다. 문제는 방심이다. 정말 큰 문제는 긴장이 풀리면서 우선 순위가 다시 흔들릴수 있다는 것이다. 영적으로 방심할 때 마음 속의 깊은 찌꺼기와 쓴뿌리들이 다시 올라오기 시작한다.

큰 어려움 속에서는 '이번 한번만...이번만 도와 주시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다 할께요.' 그러다가 문제가 녹기 시작하면 그 영적인 긴장감이 방심과 안일함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 받았던 여러가지 스트레스때문에 짜증과 혈기가 쉽게 올라 올수 있다. 영적인 은혜가 크면 클수록 은혜가 식는순간에 육적인 찌꺼기들이 더 많이 올라 올수 있다. 어느 순간에 주님을 많이 닮은 것 처럼 느껴지다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느낌을 가지기도 한다. 가끔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부분이다. 더 겸손하게 나아가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때로는 넘어지는것을 허용하기도 하신다. 이럴수록 더 빨리 돌이켜야 한다. 일어나는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사탄에게 틈을 덜 열어 주는것이다. 그 순간, 마귀는 자괴감과 자책감이라는 불화살을 정신없이 쏘아 댈것이다. 우리는 의의 흉배를 덧입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의가 되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인정하면서 방어해야 할것이다.

 

믿음의 훈련은 주님 앞에서 어떤 어려움과 유혹이 와도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받는 부분도 있지만, 넘어지더라도 속히 일어나게 하려고 허락하시는 부분도 많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만 훈련을 받는다면 한번 크게 넘어 지게 되는 순간에 깊은 영적인 늪에 빠져서 헤어나오기가 힘들수 있다. 두가지 차원에서 모두 훈련을 받을 필요가 있다. 외부에서 쏟아 지는 불화살...환경을 어렵게 만드는 일들에 대한 그러한 사탄의 공격은 하나님께서 피할길을 내시는것을 어렵지 않게 볼수 있다.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심령 내부에서 쏟아지는 사탄의 불화살은 마음과 생각을 제어할수 있는 힘을 빼앗아 가기때문에 이겨내기가 쉽지 않다. 빛과 어두움 사이에서의 갈등. 결국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서 인생도, 영적인 생활도 승패가 좌우된다. 외부에서 오는 문제는 자아와 생각이 오직 주님께로만 가기때문에 하나님만을 의지 할수 있지만, 심령의 내적 갈등은 상당한 은혜 없이는 일어나기가 힘들때가 있다. 마음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용납하고, 용서하고, 자신을 속히 일으켜 세우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것만이 유일한 방법일것이다.

 

영적인 긴장감이 풀어질때가 문제다. 어두움의 세력은 결코 쉬지 않는다. 놀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시기, 질투의 눈으로 영혼을 바라본다. 뒤에서 항상 어떤 음모와 방해를 꾸민다. 어두움의 목적은 우리로 방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믿음 생활도, 교회 생활도 이 정도 하면 괜찮지 않을까? 내가 하나님을 어느 정도 섬기니깐 사방이 평안해졌구나. 이젠 한숨 돌릴수 있겠다. 이전에 얼마나 힘들었는데... 숨도 못쉬고 기도하면서 하나님만 찾았는데 이젠 좀 푹 쉬어야 겠다."

 

우리는 큰 일이 아니라 항상 작은 일에서 무너지게 된다. 큰 부분에서 영혼의 둑이 무너 지는것이 아니라 작은 둑에서 조금씩 서서히 무너지게 된다.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엇이 새는지도 모르는 동안에...서서히 무너지게 된다.

사탄은 항상 허를 찌른다. 사탄이 지속적으로 넣어주는 생각은 방심 뿐 아니라 착각하게 만든다.

영적인 착각은 영혼의 무감각으로 인도할수 있다. 어느 정도 자신이 선 것처럼 어두움이 착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단점과 부족한 부분을 계속 눈에 보여 준다. "난 안 그런데 저 사람은 왜 저러지...왜 저걸 못 고치지? 아무도 알려 주는 사람이 없나?" 누굴 봐도 다른 사람의 단점과 문제만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분별일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분별은 항상 하나님의 마음으로 다른 영혼을 바라보게 하신다. 어두움이 주는 분별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서 보여준다.

이러한 착각 속에 사로잡힌 사람은 영적인 우월주의에 빠져서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하나님을 더 잘 믿는다고 생각하거나 영적인 배타주의에 빠져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생각하기에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생각은 철저하게 무시해 버린다. "당신같은 사람이 뭘 안다고...나처럼 준비도 안되었고, 훈련도 안 받았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기질이 되어 버려서 시간이 흘러간다면 상당한 어려움을 초래 할수 있을것이다.

 

큰 응답을 받은 뒤에 사탄이 주는 유혹 중의 하나는 영적인 지나친 승리감과 도취감에 빠지게 만드는것이다. 생명걸고 기도해서 받은 귀한 응답인것은 알겠지만, 다시 마음을 다스리는 태도도 필요하다. 감정적으로 붕떠있다 보면 영적인 마취상태가 되거나 무감각상태가 될수 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영적인 분별과 사리분별력도 흐려 질수 있다. 좋아도, 기뻐도, 마음을 어느 정도 가라 앉히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다시 영혼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일것이다.

 

영적으로 어릴때는 사탄의 공격 수준도 낮을수 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허용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성장하며, 성숙할수록 마귀의 공격 정도와 수준이 높아지게 된다. 예수님께서 공중 권세 잡은 어두움을 무저갱에 완전하게 집어 넣어 실때까지 우리는 영적 전쟁을 해야만 한다.

그 영적 전쟁을 통해서 주시는 엄청난 영적인 전리품이 있다. 믿음과 담대함일것이다.

엄청난 지혜와 분별력을 선물로 받게 될것이다. 성령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임하게 될것이다.

기름 부으심이 넘치게 될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게 될것이다.

인격적인 성숙이 더 하게 될것이다. 신앙의 성숙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자라면 자랄수록, 사탄에 대해서도 더 많은 부분을 보여 주시고, 가르쳐 주실것이다. 사탄의 전략과 전술에 대해서도...

 

마귀는 항상 허를 찌른다. 그 허를 찌르는 많은 모습이 우리의 영적인 태도와 인격과 연관되어 있다. 큰 어려움이 오고, 시험이 왔을때 모든것을 사탄의 탓으로 돌리지만, 그 사탄의 공격중 많은 연결 고리가 우리의 영적인 태도와 미성숙함에서 오는 부분이 많다. 인정해야만 하는 부분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넘어 졌던 부분에 대해서 묵상하며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서 미래를 대비하는 사람도 있다. 그 반면에 사탄이 찌를때 마다, 아무 생각도 없이 연속적으로 넘어지는 사람이 있다.

그러한 사탄을 매일같이 대적하면서 묶어야 하겠지만, 자신의 기질과 습성, 약점에 대해서도 많은 묵상과 기도를 쌓아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어두움의 공격을 통해서 우리로 얻게 하시는 영적인 큰 전리품중 하나이다.

인격적인 약점을 다듬게 되는 부분이다.

 

여호수아때 요단 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서 정복 전쟁을 벌일때, 첫 관문부터가 쉽지 않았다.

모압 광야에서의 모세의 고별설교, 신명기의 생동감 넘치는 마지막 말씀을 듣고, 영적인 권면과 자신감을 얻어서 가나안 땅에 들어 가려는 첫 관문부터가 난관이었다. 어려웠다. 힘들었다.

요단강에는 물이 넘쳐 흘렀다. 비가 와서 물이 넘쳐 흐르는 시간에 그 강을 건너가도록 인도하셨다. 홍해처럼 물을 미리 갈라주지 않으셨다. 인간적인 눈에는 어떠한 환경도 만들어져 있지 않는것 같았다. 40년 가까운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 가나안 땅의 족속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보다 더 큰 평안을 허락하신것 같았다.

이스라엘 백성을 죽을 힘을 다해서 훈련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그 땅의 이방 족속은 편안하게 삶을 영유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생각하기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땅이었기에 비어 있기를 바랬고, 모든 것이 예비 되어 있어야만 했다. 이미 엄청난 훈련과 대가를 치루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 너무 많이 지쳤기에 이젠 조금 평안하고 싶었기 때문에 기대 수준도 높을수 밖에 없었다. 모세의 뒤를 이끄는 여호수아와 함께 요단강을 건너가게 하시고, 길갈에서 다시 한번 할례를 명하시며 마음에 여호와를 새기게 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 앞에 온 민족이 헌신하는 밤이었다. 그리고,  다가오는 첫번째 전투는 가나안 땅에서 가장 강력하고, 견고한 세력인 여리고였다.

인간적인 눈에는 하나님께서 어떠한 준비도 안 하신것처럼 느껴졌다. 두려웠다. 무서웠다.

이러한 여리고 성을 마주 대할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것은 한가지였다. 침묵하며 성을 도는것...

동문서답하는것 처럼 느껴졌고, 답답하게까지 느껴지는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것은 한가지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하실 일이었다. 하루에 한바퀴씩...일곱째 날에 일곱번을 돌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일하셨다.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의 생각 수준을 능가했다. 순식간에...한 순간에...하나님께서 개입하셨다. 어떠한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사람이 할것은 여리고 성을 돌면서 하나님을 의뢰하는것이었다. 침묵하면서 성을 도는 그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받아 들이셨다. 믿음의 행동이 믿음의 능력을 가져오게 되고, 기적과 이적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여리고 성이 무너졌다. 인생의 큰 어려움이 여리고 성처럼 다가왔을때 각자에게 이러한 은혜와 기적을 하나님의 방법대로 많이 허락하신다. 나름대로 모두에게 은혜로운 간증이 있고, 어려움속에서 건져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셔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명성이 온 땅이 퍼지게 되었다. 처음부터 가장 강력한 적을 만났고, 하나님의 은혜로 손쉽게 승리해서 자신감과 기쁨으로 넘치게 되었다.

가장 힘든 어려움은 이제 부터 시작 되었다. 방심과 착각이라는 무서운 적이 온 백성의 내면에 스며들어서 무장해제를 시켜 버린것이었다. 여리고에 비해서 아이는 작은 성이었다. 숫자도, 성의 규모도 작았다. 그 큰성을 무너뜨렸더니 아이가 우습게 보였다. 하찮아 보였다. 하나님께 물어 볼 필요도 없게 느껴졌다. 이번에 올라간 정탐꾼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했다. 백성들을 다 올려 보내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는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내었다. 그 정탐꾼의 말대로 움직였다. 하나님의 의견이 아닌 정탐꾼의 생각대로 행동했다. 그리고, 패배했다.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아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아이성에서 패배하기도 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의 물건을 몰래 감추어 두었던 아간의 범죄에 진노하셨기 때문이다.

또 한편, 영적인 방심으로 정탐꾼과 이스라엘 백성 모두 착각속에 빠져 버렸다. 이전 승리를 자신의 힘으로 얻게 된것처럼 믿고 행동하게 된것이다. 오로지 하나님의 방법으로 여리고에서 큰 승리를 가져 왔는데, 하나님의 허락과 인도함없이 자신의 힘만 믿고 아이성에 올라가게 된것이다.

자신만의 판단과 방법속에 속절없이 무너지게 된것이다. 여리고에 대한 승리의 기억이 아이와의 전투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한 기쁨과 마음을 진작 다스렸어야 하는데 붕 떠 버린것이다. 착각과 방심으로 연결되었다. 실패했고, 패배했다. 그러나, 좋은 리더가 있었다. 여호수아... 그 한 사람이 이스라엘 장로들과 여호와 앞에 엎드려서 하루종일 기도했다.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온 종일 중보했다. 오직 중보와 기도만이 하나님의 뜻을 돌이킬수 있다. 하나님을 움직일수 있다. 이러한 실패가 다시 영적인 긴장감을 가져다 주고, 하나님앞에 무릎으로 나아가게 했다. 성결운동이 시작되었다. 회개가 시작되었고, 여호와 앞에서 섞은 누룩을 도려내기 시작했다. 아간의 범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정죄하시고, 심판하셨다. 그 정죄에는 온 백성의 영적인 나태와 방종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골 골짜기 속으로 모든 죄악을 불태워 버리셨다. 하나님의 크신 분노가 아골 골짜기에서 타고 있었다.

 

여호와께서 친히 여호수아와 백성을 아이성의 전투로 이끄셨다. 영적으로 온 백성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영적으로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태도가 열려졌다. 하나님께서 아이에 대한 매복과 복병을 허락하시고, 친히 전쟁을 명하셨다. 여호수아의 손에 단창이 들려 있었지만, 단창으로 전쟁하지 않았다. 단창을 들고 아이성을 가르키며 하나님께 부르짖을 뿐이었다. 마음을 찢으며 부르짖는 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응답하셨다. 아이성이 무너졌다.

 

우리는 큰 문제보다 작은 문제때문에 더 쉽게 넘어 질수 있다. 방심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힘으로 하려고 하기에 그럴수 있다. 이 정도쯤은 내 힘으로 할수 있다는 착각 속에 자신을 쉽게 무장 해제할 수 있다.

하나님 보시기에 진정으로 커 보이는 문제는 내 안에...우리 안에 있을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오랫동안 훈련을 받아 왔지만, 아직도 쉽게 흔들린다. 조금만 좋은 일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응답이 있으면 기도가 약해진다. 이전에 주셨던 귀한 응답에 대한 기억이 시간이 조금 흐르면 쉽게 지워진다. 외부의 여리고 보다 내 안의 내면의 아이성이 문제다. 영적인 교만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영적인 나태함과 방심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은혜의 자리에 많이 나아가다 보면, 스스로 영적 수준이 높아진것 처럼 착각할수 있다. 좋은 말씀을 많이 듣다보면 그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기 보다는 영적인 지식의 분량만 커질뿐 내 것이 안될 수 있다.

그렇게 어려운 여리고 성을 주님의 은혜로 정복해 놓고, 너무나 어이없게 아이 성앞에 무너 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니의 은헤는 더 크시다. 다시 일으켜 세워주신다. 영적으로 다시 한번 점검하며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다.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영혼을 멸시치 않으시며, 상한 갈대를 절대로 꺽지 않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