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Weekly칼럼(51-100)

기도조차 우상이 될수 있다. (68)

Joseph Lee 목사 2013. 10. 31. 05:16

 

 

기도조차 우상이 될수 있다. (68)

"한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와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나의 원통과 격동됨이 많음을 인함이니이다 엘리가 대답하여 가로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가로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으니라" (삼상1:15-18)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josephlee0212@gmail.com>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무릎을 꿇는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또 여쭈어 본다. 현실의 장벽을 오직 기도로 무너뜨리려고 한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이 넘친다. 하나님께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응답하기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을 아는 단순한 지식에만 그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시키기를 원하신다. 때로는 우리가 마음에 소원을 품기만 해도 응답하기를 즐겨 하실때도 있다.

때로는 응답이 더디고, 지연되는것 처럼 느껴지지만, 다른 부분에서의 이른 비, 늦은비를 경험할수 있을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연약함을 꾸짖지 않으신다. 날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며, 주님을 생활 가운데 경험할수 있도록 무릎 꿇는것도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은사도, 믿음의 능력도 주셔야 하겠지만,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수많은 체험을 하는것도 중요하다.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 힘들지라도 자신만은 절대로 부인할수 있는 여러가지 경험을 시킬때도 있다. 나중에 믿음이 떨어지는것 처럼 보일때, 고난가운데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의심이 가거나 기도 응답에 자신이 없을때...지나간 시간에 하나님을 뜨겁게 체험했던 그 시간이 총천연색으로 생각나며 힘을 주게 될것이다. 성령께서도 그 기억을 되살려 주시면서 다시 일어 나게 하실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할때 기도만큼 중요한것이 없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부여 받을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기도를 하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는 고난이 왔을때 분명히 나타날것이다. 기도의 사람은 어려움이 오면 올수록 더 담대해지고, 사람을 찾는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 고난속에서 영이 더 살아나며, 기도의 깊이가 더 강력해 지는것을 경험할수 있다. 기도가 없는 사람은 이 순간,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이 사람, 저 사람 조언을 얻기에 바쁘다. 그리고, 많은 의견속에서 더 혼란스러워지게 된다.

자신의 수준 이상의 고난이 오면 불안, 초조 속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온 정신과 영이 마비 되어서 불안, 초조에 묶여 버리게 되고, 상황 판단력이 흐려져서 어쩔줄을 몰라하게 된다.

보통때는 잘 알수 없다. 교회를 잘 다니고, 여러 영적인 모임에 참석하는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이 신앙이 좋다, 약하다고 사람의 눈으로 쉽게 판단한다. 그러나, 위기의 상황, 절대 고난의 상황에서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은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어려움 속에서 그 사람의 마음 중심이 드러나게 되며, 그 사람의 생각하는 바가 그대로 나타나며, 하나님과 세상에 대한 태도가 그대로 보여진다.

자신도 내면의 깊은 모습을 모를때가 많다. 어려움을 허용하시는 이유 중의 한가지가 될수 있다.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그 어려움을 통해서 영적인 모습을 다시 한번 다듬는 시간이 되며,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게 하는 리트머스가 될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의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기도 할수 있을것이다. 그만큼 훈련이 중요하다. 하나님과의 영혼의 호흡은 저절로 되는것이 아니다. 훈련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도 인도하시지만, 자신의 의지와 노력 또한 가볍게 여길 부분이 아니다. 간절한 마음이 반드시 태도와 의지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사모하는 만큼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고 싶을것이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만큼 하나님과의 홀로의 시간을 즐기려고 할것이다. 이런 훈련이 된 사람은 아무리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바빠도, 반드시 홀로 하나님을 독대하는 시간을 가진다. 자신의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중추신경이기 때문이다.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외로움에 약하다. 혼자 있는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외로움을 하나님으로 먼저 채우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이미 기도의 진정한 깊이를 체험한 사람일것이다.

 

하나님을 대면하는 기도는 영혼을 빛으로 채우는 시간이다.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다. 영적으로 치열한 시간이다. 어두움이 일어나서 훼방하는 시간이다. 쉽게 물러 가려고 하지 않을것이다. 하늘문을 여는 기도가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이다. 기도의 방해가 크기 때문이다. 기도의 깊이를 경험한 사람은 이 순간 포기 하지 않는다. 영적 전쟁중이라는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고, 기도속에서 마음에 평안이 올때까지 기도로 뚫으려고 한다. 마음 중심의 불안, 초조가 물러 날때까지 기도해야 한다. 마음속에 깊은 확신이 올때까지 기도하고 또 부르짖어야 한다. 이런 시간이 오기까지 영적 전쟁이 치열하겠지만, 그 후에 주시는 하나님의 임재는 깊고 넘칠것이다. 성령의 빛을 영.혼.육. 골고루 비춰지도록 해야 할것이다. 전영역에 걸쳐서 기도를 해야 하는 부분이다. 기도의 영역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기도의 시간이 길어 질수 밖에 없다. 그만큼 하나님께 의뢰해야 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많은 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하다 보면, 어느 순간 부터 기도 제목이 단순 명료하게 되어 버린다. 성령께서 이끄시기 때문이다. 기도의 우선 순위도 바뀌게 된다. 그동안 중요하게 생각되던 제목들이 뒤로 가 버리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제목을 최우선으로 기도하게 될때가 있다. 정욕과 욕심으로 기도하던 제목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하나님 나라와 뜻으로 바뀌게 된다. 기도 제목의 정화가 이루어진다.

그 많던 기도 제목들을 눈물 흘리며 하나님께 아뢰고 또 올려드리다가 어느 순간 부터 눈물대신 기쁨으로 채워지게 된다. 성령께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기도 제목으로 바뀌게 되고, 근심이 아닌 즐거움으로 기도하게 된다.

 

진정한 기도의 사람은 기도를 하고 나서 믿음의 태도가 더 드러나게 된다. 이 부분에서의 깊은 훈련과 연단이 필요할것이다. 많은 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분명 하나님과 대면하면서 여러가지 문제를 풀려고 하는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은혜다. 그런데, 기도하고 나서의 태도가 여전히 불안하고, 두려움으로 가득하다면 하나님께서 결코 원하시는 영적인 모습이 아닐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신뢰하는 태도의 표현이다. 진정한 기도 후의 모습은 평안과 안식이다.

그 문제와 제목을 우리 손에서 하나님께로 올려 드리는것이다. 더 이상 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문제임을 고백하는것이다. 내 손을 떠나서 하나님 손으로 그 제목들을 꼭 쥐게 하는 것이 기도다. 기도할때 많은 기도 제목들이 나 홀로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 되어 버린다.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문제다.

그만큼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만 의지한다는 믿음의 고백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기쁘게 보신다. 즐거워 하신다. 무엇보다 그 마음 중심을 받으신다.

하나님 없이 무엇인가를 자신의 힘으로 할수 있다는것을 바벨탑으로 보신다. 불신앙으로 받아들이시며, 하나님과 분리되려는 불순종으로 보시기도 한다.

이처럼 기도와 믿음은 함께 동행한다. 믿음이 있기에 기도하게 되고, 기도하기에 하나님께서는 더 큰 은혜와 믿음을 부어 주신다. 믿음의 사람은 결국 기도의 사람이 되는것이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찾고 갈망하는 태도다.

 

기도 후에 진정한 평안과 기쁨을 가지는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항상 그렇게 되기는 힘들수 있다. 만약, 기도 후에도 불안, 초조, 두려움이 가득하다면, 성령께서 이끄시는 기도를 충분히 못했거나, 사탄의 영적 공격이 거센 나머지, 기도로 충분한 대적을 못해서 그럴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기도의 시간 길이도 중요한 요소가 될수 있을것이다. 기도의 시간이 길면 길수록 하나님과의 대면을 더 깊이 할수 있고, 영적 전쟁을 더 강력하게 치룰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 제목이 우상이 된다면 불안해진다. 하나님을 향해서 절대 평안을 가지기가 힘들다. 하나님을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기도 제목이 우상처럼 자신의 마음에 새겨 질때는 하나님이 주님이자 주권자이기 보다는 자신의 소원을 해결하는 존재에 불과 할수 있다.

 

기도조차도 우상이 될수 있다. 이런 사람은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을까봐 불안해한다. 하나님에 대해서 깊은 확신이 없어서 기도를 못할수도 있지만, 기도를 해도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기에 이루어 주시지 않을거라는 내면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 의심을 들여다 보면 대부분,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야망과 욕심에 근거를 두고 있을때가 많다. 그래서 불안해진다. 마음에는 깊이 소원하는데 하나님께서 혹시나 들어주시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다. 하나님보다는 자신의 뜻과 소원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꼭 자신의 야망과 이기적인 욕심으로 기도하지 않더라도 불안할수 있다. 믿음의 훈련이 안되었거나 기도의 체험이 약해서 불안하고 두려워 할수 있다. 하나님도 아시고 그 영혼의 기도를 도우신다.

마음 중심에서 어떠한 동기로 기도하던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 제목을 거룩하게 바꾸어 주시고, 인간적인 욕심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바꾸도록 도와 주신다. 하나님의 열심이다.

시간이 흘러서 기도를 들어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께서 원하는 기도를 하고 있음을 보게 될때가 있다. 내가 하는 기도가 아니라 성령께서 이루 말할수 없는 탄식함으로 도와 주시기 때문이다.

 

어떤 분이 자녀의 대학교 입학을 위해서 기도를 쌓고 있었다. 그 분의 딸이 어느 대학교 입학을 간절히 원했고, 소원했기에 그 부모도 하나님께 그 학교의 문을 열어 달라고 기도를 올려 드렸다.

그 딸의 학교 성적이 생각만큼 나오지 못했고, 그 딸은 그 학교 아니면 안 가겠다고 떼를 쓰는 나머지 부모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할수 있는것은 기도밖에 없어서 새벽이고, 밤이고 기도의 자리라면 계속 쫓아다녔다. 성경책에도 그 대학교 이름을 붙여 둔 메모를 끼워 두고, 입학을 위해서 가장 먼저 기도하고 기도했다.

금식도, 철야도...딸을 위해서라면 생명까지도 드리는 모습이었다.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를 못했다. 딸이 늦게까지 공부를 해서 그런것도 있었지만, 그 학교에 입학하지 못하면 어떻하나...이러다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어떻하나...깊은 고민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고 잠을 뒤척일때도 많았다. 기도를 해도 평안한 가운데 하는것이 아니라 늘 부족한것만 같았다. 뭔가를 더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는것 같은 불안이 엄습해 왔다. 뭔가를 빠뜨리는듯한 느낌...얼굴 표정도 피곤함과 불안함이 깊이 스며 들어 있었다.

 

누구의 이야기라기 보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일수 있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을 가면 자녀의 인생이 보장 되는것 처럼 생각한다. 우리의 짧은 소견과 식견으로 바로 앞에 주어지는 몇가지가 잘 진행이 되면 모든 것이 잘 되는것 처럼 착각을 한다.

이 가정에는 기도 제목이 우상이다.

하나님께서 딸과 가정에 원하시는 기도 제목으로 기도를 하는것이 아니라 딸이 우상이었으며, 그 학교가 인생의 성공을 위한 우상이 되어 버렸다. 기도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 되어 버렸다. "이 기도를 생명걸고 합니다. 안 이루어 주시면 제 생명도 거두어 주세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우상을 위해서 생명을 걸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 딸과 가정을 더 사랑하신다. 어떤 길이 가장 좋은 길인지는 하나님께서 더 잘 아신다.

인생의 모든 발걸음은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서 준비 되고 있다. 하나님께 그 뜻을 묻기보다는 자신의 뜻을 가지고 하나님을 이끌고 가려고 한다. 앞서 나간다. 때로는 이렇게 떼쓰는 기도가 응답될때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를 고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훈련의 시간을 허락하실것이다. 더 중요한 영적인 축복이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기도조차도 우상이 될수 있다. 기도의 시간도, 기도의 양도 중요하지만, 기도의 방향이 제대로 설정되어야 한다. 기도는 나를 버리고, 하나님으로 채우는 시간이다.

나의 이기적인 욕심과 자아가 부서져 버리는 시간이다. 나 대신 하나님으로 채워 지는 시간이 기도다.

기도하기 전에는 이런 저런 고집과 생각이 가득하지만, 기도하고 나서 평안할수 밖에 없는것은 선하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 그 분의 크신 손에 모든 것을 맡겨 드리기 때문이다. 절대 믿음이자 절대 신뢰다.

 

기도가 우상이 되어 버린 사람은 자신의 인격적인 변화와 주님을 닮아가는 모습에는 관심이 없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향하여 가지신 생각과 마음에는 일절 관심이 없다.

오직 자기와 자신의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

이런 이기적인 기도 또한, 하나님의 열심이 바꾸어 놓을수 있다. 거룩하고, 진실한...아름다운 기도 제목으로 다듬어 놓을수 있다.

 

내가 기도하는것이 아니다. 내 안의 성령께서 기도하시는 것이다.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대로, 기도의 우선순위대로 이끌림을 받는것이다. 비록 내 생각과는 다르다고 해도, 순종하면서 내려 놓으려고 할때, 엄청난 영적 성장과 성숙을 경험할수 있을것이다. 영적인 깊이는 이러한 순종과 내 자신을 굴복하는데서 시작할것이다. 단순히 기도의 시간을 늘린다고, 기도의 양만 많아 진다고 살아계신 성령님을 뜨겁게 체험하는것은 아니다.

기도를 통해서 자아와 주님과의 만남속에서 그 사랑의 능력으로 자신이 변화되며, 이끌림을 받는것이 큰 축복이다. 이 전에 잘 안되어 지던 자신의 모습이 점점 변화 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자신을 드릴수 있는것은 하나님 안에서 누릴수 있는 큰 특권이다.

 

일이 되든 안되든 상관없이...하나님께 모든것을 진심으로 맡겨 드리는 사람은 기도 후에 마음이 평안으로 채워진다. 기도 전에는 불안, 두려움이 있을수 있겠지만, 기도를 마치고 나서는 하나님의 평안이 가득하다.

 

이것이 하나님의 응답이다. 이미 응답이 시작된것이다. 자신이 하나님께 굴복하는 깊이와 넓이 만큼 자신의 영육간의 지경이 더 넓어 지게 될것이다.

기도를 드린 후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 떼를 쓰면서 불안속에 사는지, 하나님께 올려 드리며 감사와 평안속에 사는지 진정한 기도자의 모습이 나타나는 순간이며, 하나님께서 믿음의 깊이를 저울질 하는 시간이기에 그렇다.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다. 믿음의 고백이다. 기도후에 평안이 마음에 가득하다면 이미 모든 기도 제목들이 하나님의 손에 올려진것이다. 더 이상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해야 한다면 지혜와 감동을 주실것이다. 순종하길 원하신다면 마음을 주장하시며 이끄실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때 엄청나게 넓은 영육간의 지경을 경험하게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