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Weekly칼럼(51-100)

사랑은 듣는것이다. (70)

Joseph Lee 목사 2013. 10. 31. 05:18

 

 

사랑은 듣는것이다. (70)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가로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삼상 3:1-5)

<josephlee0212@gmail.com>

 

 

하나님의 사람들중에서 기도에 생명을 거는 사람을 보면 행복하다. 다른 일을 다 한 후에 시간이 나서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바쁘더라도 하나님께 온 마음을 올려 드리기 위해서 특별히 시간을 내는 사람들을 보면 행복하다. 하나님이 인생의 가장 최우선이기에 할수 있는 하나님을 향한 태도다.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 많은 경우, 조상때부터 내려 오는 기도의 가정이거나 배후에 이미 기도가 많이 쌓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처음 믿은 1세대라고 할지라도 기도의 원리를 알고 생명을 거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축복 중의 가장 큰 축복이다. 모든 일에 하나님을 찾는 예배자이기에 그렇다.

하나님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다. 우선 순위를 하나님으로 채우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인간적으로 쉽게 할수 있는 일들 조차도 하나님과 상의하며 행동하는 사람이다. 기도의 사람은 행동하는 사람이다.

게으리지 않다. 우유부단하지 않다. 조용히 기도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정확하게, 재빠르게 움직인다. 하나님의 보좌도 함께 따라서 움직이는 사람이다. 지혜가 넘치는 사람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문제 해결의 중심에 앉아 있는 사람이다.

인생의 경륜이 기도 속에 있고, 모든 문제를 기도로 풀어 나가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무엇을 하던지 확신이 있고, 자신감이 있다. 때로 일이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기도 가운데 의뢰하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시 굳건하게 하며 무릎으로 나가는 사람이다.

 

어릴때부터 기도를 배운 사람을 보면 행복하다. 영혼의 호흡이 몸에 가득 차 있다. 생활 속에서 빈틈이 많은것 같아 보이지만, 기도가 그 사람의 중심을 움직인다. 겸손이 몸에 베여 있다. 영혼에 대한 섬김을 아는 사람이다. 대화 내용의 모든 부분이 하나님으로 가득 차 있다. 함께 있기만 해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선명하게 눈에 보일 정도이다. 하나님을 더 뜨겁게 믿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사람이다. 뜨거운 영혼의 도전자이다.

그런 사람과 교제를 나누고 돌아와서는 기도하고 싶은 마음에 견딜수가 없다. 다른 사람을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가게 하는 영권이 있는 사람이다. 문제가 있으면 가까운 사람을 의지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깊은 영적 씨름 속으로 들어간다. 고통 가운데 기도하고, 골방에서 나올때는 평안과 성령의 빛이 가득하다.

자신은 힘들어도 다른 사람을 살리고 싶어서 견디지 못한다. 자기 문제보다 다른 영혼의 문제때문에 아파한다. 이런 사람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평범해 보이는 기도의 사람을 하나님께서 일으키실때는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함께 해 나가신다.

진흙 속에 묻힌 진주다. 지금까지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뿐, 이미 기도로 하나님을 움직이는 강력한 영권의 사람이다. 고된 훈련가운데 하나님만 의지하는 연단을 받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일이 영육가운데 열리게 될때는 기도의 지경이 우리의 생각밖의 범위이며, 하나님께서 맡기시는 일들의 범위와 규모가 상상을 뛰어 넘는다.

사람의 눈에는 별것아닌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뜻이 살아서 움직이며,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으로 쉬시지 못하도록 만든다. 기도의 사람은 평범해 보이지만, 때가 되면 반드시 드러난다. 문제 해결의 Key를 쥐게 된다. 하나님의 존귀가 그 영혼을 다시 세우게 될것이다. 주위의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능력이 그 안에서 역사한다.

 

사무엘이 그런 축복의 사람이다. 모태부터 기도가 쌓인 사람이었다. 하나님을 기도로 의지하는 선지자였다.

이스라엘을 자신보다 더 사랑하고 섬기는 하나님의 사사였다. 하나님의 전에서 어린아이로 자랐지만, 기도로 블레셋을 무찌르는 강력한 하나님의 종이었다. 말만 하면 이루어졌다. 말 그대로 하나님앞에서 응답되었다.

기도 그 자체. 사무엘을 움직이는 Key word가 기도며,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사랑이었다.

그가 가진 영권의 비밀이며, 그가 사사로 섰을때 온 나라가 평안할수 있었던 원리도 기도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었다.

사무엘은 배후에 기도가 많이 쌓인 사람이었다. 모친 한나가 고통 가운데 서원하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때 응답하셨던 아들이었다. 그런 사무엘을 키우시려고 모친의 기도를 미리 받으셨다. 한나가 브닌나로 인해서 고통과 시기.질투를 받게 하신 큰 이유중의 하나가 사무엘을 키우시고, 세우고 싶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기도를 받으셨다. 이스라엘을 위한 마지막 사사, 위대한 선지자를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한나를 통해서 응답되고 있었다. 한나는 자신의 문제때문에 고통 가운데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움직이길 원하셨다. 한나는 전혀 몰랐다. 알수가 없었다. 한나는 자신을 위해서 살고 싶어서 기도했을 뿐이었다. 그 과정가운데 혹독하다고 느낄만큼 하나님은 침묵하셨고, 매몰차게 대하다시피 하셨다. 그런 한나는 외로움 연속이었다. 가혹한 브닌나의 질투속에서 눈물이 흐르고 또 흘러 내렸다. 하나님은 기다리셨다. 때를 기다리셔야 했다. 한나 나름대로 자신의 상황을 비관도 해 보고, 생명을 다해 기도도 해 보았지만, 그 이유조차 모르는 힘든 상황이었다. 앞이 막막했다. 길이 보이지 않았다. 엘리 제사장이 술에 취했다고 야단칠때 그 자신은 하나님만 바라볼뿐 마음이 상할 여유조차 없는 고통의 여자였다. 엘리도 자신이 한나에게 축복한 내용이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한나는 자신의 믿음가운데 하나님의 약속으로 받았다. 한나의 믿음이다.

오랜 기도속에서 깊은 영감과 믿음이 계발되었고, 엘리의 축복이 하나님께서 주신 응답이라는 것을 한나는 금방 깨달을수 있었다. 마른뼈 같았던 엘리는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하나님의 응답의 도구로 사용을 받았다.

기도의 자리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응답하신다. 비록 그 당시는 깨닫기 힘든 하나님의 음성 조차도 때가 되면 알게 된다.

 

한나는 하나님을 사랑했다.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다해서 사랑했다.

사랑하면 듣게 된다. 사랑하는 이의 음성에 민감하게 된다. 무엇을 말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하고자 하는것이 무엇인지...세심하게 관심이 가게 된다. 관심이 가면 예민해 진다. 그 사람의 필요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가장 최선으로 대해 주는지 민감해 질수 밖에 없다. 사랑은 상대방에게 초점을 맞추는것이다.

상대방 관점에서 말하고, 대화하고, 이해하려고 한다. 상대가 이기고, 내가 지는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내 자아가 죽는것이 사랑이다. 사랑속에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다. 상대에게 동화되어 진다. 내 입술에서 흘러 나가는 말은 사랑하는 사람을 살게 한다. 세워준다. 조금이라도 아파 할까봐 힘들어 한다. 내가 맞는것조차도 상대를 위해서 때로는 틀렸다고 말한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참아준다.

사랑하는 이에게는 말을 많이 하기 보다...많이 들으려고 한다. 상대를 더 알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가르치지 않는다. 그냥 있는대로 들어 준다. 판단하는 마음이 들지만, 잠시 더 기다려 준다.

브닌나를 통한 훈련속에서 한나가 얻게 된 엄청난 영적인 축복이다.

이러한 영적 유산과 축복이 아들 사무엘에게 전수되어 지고 있었다.

 

한나는 자신의 기도 응답을 위해서만 엎드린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기도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문제를 응답 받기 위해서 아들을 바치겠다고 서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서원기도를 한것이었다. 모든것을 다 드려도 아깝지 않은 하나님이기에...사랑이시기에...

하나님의 전을 사모해서, 하나님의 품을 사랑해서...하나님으로만 가득 찬 한나였다. 하나님을 생각하면 감당할수 없는 감격이 자신의 고통과 뒤범벅 된 사람이 한나였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을 듣고 있었다.

아들 문제로 온 이스라엘을 시끄럽게 한 엘리 제사장의 축복이었지만, 한나는 자신만이 아는 영적 Channel을 통해서 하나님의 응답이었음을 믿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염려하지 않았다. 믿음으로 되어질 일을 미리 보았다. 지금의 무릎 기도를 통해서 앞으로 다가 올 일을 믿음으로 보고 있었다. 믿음대로 되었다. 입술로 고백한 내용이 그대로 그녀의 삶에 이루어 졌다. 기뻤다. 황홀했다.

자신의 기도가 응답이 되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음성을 듣고 있는것을 알았기에 즐거웠다.

 

엘가나의 처도 아닌 첩으로서의 인생, 또 다른 처 브닌나의 격동속에서 아내로서, 여자로서의 많은 자존심을 포기하게 되었던 한나. 남편의 사랑을 받고 있었지만, 내면의 깊은 고독과 근심으로 가득찼던 그녀. 어느 곳 한군데도 제대로 기댈 곳이 없었지만, 그녀는 하나님을 택했다. 사람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방법, 기도를 사용했다. 남편의 말조차 크게 위로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한나는 기도하고 또 엎드렸다.

통곡해서 쓰러질 지경이었다. 기도에 생명건 한나.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했던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하나님을 듣기로 결심했다. 사랑하기에 그 분의 뜻을 듣고 싶었다. 묻고 싶었다. 들을 자세가 되어 있었다. 인생의 주권자가 하나님임을 인정했다. 순종의 태도였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듣고 있었다.

모든 영육간의 감각을 하나님께만 맞춘채로...사랑은 듣는것이다.

 

그 영적인 유산이 사무엘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아이 사무엘. 10살도 채 되지 않았던 사무엘은 하나님의 전에서 살았다. 하나님의 전이 그의 집이었고, 예배 장소였으며, 놀이터였다. 그가 숨쉬는 곳이 여호와의 전이었고,노래하는 곳이 하나님의 전이었다. 그 하나님의 전이 바로 사무엘이 먹고 잠드는 장소였다.

 

너무나 어린 나이의 사무엘...그 어린 아이 사무엘을 부르시는 하나님을 이해 하기가 힘들다.

온갖 지식과 학문으로 가득 찬 수많은 사람이 있었고, 종교인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아이 사무엘을 찾아 오셨다. 어른도 아닌 아이에게...아직 세상 분별력조차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는 한 아이에게 인격적으로, 따뜻하게 다가 오셨다. 돈 많고, 명예 많은 사람을 찾아 오신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사무엘에게 찾아 오셔서 그 이름을 부르셨다. 그들에게 없는 부분을 사무엘을 가지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가정.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무엘이였기에, 하나님은 그런 어린 아이라도 즐거우셨다.

하나님의 음성에 즉시 순종하는 사무엘이기에 그렇다.

 

"사무엘아...사무엘아..."

밤 늦은 시간, 사무엘은 자신의 이름을 누군가가 부를때 즉시 일어났다. 아주 즉시...엘리 제사장이 부르는줄 착각했다. 그 잠 많던 어린 나이의 사무엘은 자신의 영적 아버지의 부름에 민감했다. 깨어 있었다. 언제든지 말씀만 하면 즉시 달려 가는 어린 아이였다. 나이는 어린 아이라고 할지라도, 그 태도는 어느 누구보다도 성숙한 하나님의 아이였다. 영적인 아버지 엘리가 부르는 음성인줄 알고 급하게, 아주 속히 달려 나갔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음성을 듣고 잠에서 깨자마다 말씀하소서. 즉시 순종하겠습니다.

사무엘은 그랬다. 비록 아이였지만, 한나의 오랜 기도로 모태속부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태어났을때도 하나님의 사람이었고, 자랄때도 하나님의 성전에 머무는 사람이었다.

아직까지 사무엘은 여호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나타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영적인 본능은 하나님을 이미 갈구 하고 있었다.

비록 부족했던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지만, 제사장 엘리를 사랑했다. 하나님을 대하듯이 엘리를 대했다. 하나님의 사람이었기에 존경과 사랑으로 대했다. 엘리의 작은 부름이라도, 작은 일이라도 감당하길 기뻐했던 사무엘이었다.

하나님은 그러한 모습과 태도를 즐거워하셨다. 하나님에 대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감동 받으신 하나님도 어린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하셨다. 사무엘아..사무엘아...부르고 또 부르시고.

누구의 음성인지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사무엘을 기다려 주셨다. 인격적으로 온유하게 세번을 불러 주셨다.

하나님의 음성을 깨닫게 된 사무엘이 드디어 하나님의 음성인줄 알고 엎드렸을때 하나님은 참으로 듣기 힘든 말씀을 해 주셨다. 엘리의 집안에 대한 심판에 대한 내용이었다. 엘리에게 아들의 범죄로 인해 많은 기회를 주셨지만,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기에 엘리가 가장 신뢰하고 사랑하는 영적인 아들 사무엘을 통해서 선포해 버리시는 말씀이었다.

어린 아이였지만, 엘리에게는 안 좋은 말씀이라서 혼자만 간직하려고 했다. 고통스러워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기에. 영적으로 성숙했다.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하게 들었던 사무엘은 평상시와 같이 행동했다. 늦은 시간까지 하나님의 음성으로 엘리 집안에 대한 심판 내용을 분명히 들었지만, 사무엘은 일상하듯이 일찍 일어나서 여호와의 전의 문을 열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무엘. 쉽게 들떠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잡았던 그는...다듬어 지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작은 일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더 큰 감동이 있는 사람이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사는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항상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통해서 예배하고 싶기 때문이다. 늘 조심한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늘 감찰한다.

어린 아이 사무엘의 강점이다. 영적인 감각도 예민했지만, 정신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 작은 일에 대한 모습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 마음 중심에 하나님이 살아 있기에 그렇다.

 

한번 하나님의 뜨거운 음성을 들은 후,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생명을 걸었다.

하나님의 음성이 그 인생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하나님을 듣는것이 그 인생의 모든것이었다. 사랑했기에 듣고 싶었다.

그런 모습은 항상 순종의 태도로 이어졌다. 말씀 하시는것 마다 사무엘은 완벽하게 순종하고 행동했다.

사무엘은 하나님을 들을 줄 알았고, 다른 영혼의 필요에도 민감했다.

그런 사무엘에게 하나님은 분명하게 응답하셨다. 사랑하면 듣게 된다. 듣게 되면 순종하게 된다. 순종하면 상황이 변하게 된다. 막힌 문이 열리게 된다. 새로운 일이 시작된다. 놀라운 응답이 삶 가운데 가득차게 된다.

사랑은 하나님을 듣는데서 시작한다.

 

"사무엘에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삼상3:19-20)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삼상 7: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