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그 하나님의 방법 (65)
"여러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우리에게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행21:10-13)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행23:11)
인생의 어느 시기에, 예상치 못하던 일로 완전히 막히게 되는 순간이 있다. 기도를 해도 혼란 스럽기만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님께 여쭈어 보지만 뚜렷한 답을 못찾는 순간이 올수 있다. 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러 어려운 발걸음을 해 보지만, 듣는 이야기가 대부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것이 분명히 있을거예요", "하나님의 종이네요. 그런데, 세상적인 일을 해서 되겠어요? 하나님께 온전하게 순복하세요. 그것만이 살 길입니다.", "신학을 해 보세요. 그리고, 다른 생각하지 말고 주님의 길로만 철저하게 걸어 가세요."
만나고 나서 오히려 더 혼란 스러워지는것 같다. 인생의 진로에 깊은 조언을 받고 싶어서 영적인 사람들을 찾아 갔는데 들려 오는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걷지 않아서 그러니 지금이라도 진로를 바꾸는게 좋겠다는 고언이다.
맞는 이야기 일수도, 틀린 이야기 일수도 있다.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발걸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천편일률적으로 결코 한가지만으로 이야기할수 없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사람마다 다들 다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깊은 기도를 통해서 마음의 중심에 대한 인도와 생각의 흐름에 대한 강권적인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 시기에는 기도보다 갈등이 깊은 시간이기에 무릎 꿇기가 어려울수 있다. 하지만,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주님 인도 해주세요. 라고 한가지 기도 제목이라도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인도를 요청할수 있을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단순한 기도의 능력 또한 강력하다.
환경을 통한 하나님의 인도도 함께 열려야 한다. 때로는 환경이 제대로 만들어 지지 않더라도 믿음으로 앞으로 나아갈때 문들이 열리는것을 경험하기도 한다. 여호수아때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지나갈때가 그러했다.
믿음으로 요단강에 발을 내딛었을때, 강의 물이 마르는것을 경험했다. 믿음의 기도를 사탄이 두려워한다.
믿음의 노래에 어두움의 요새가 벌벌 떨게 될것이다. 믿음의 행동에 사탄은 무너지게 될것이다.
지금 닫히고 있는 문이 어떤 문인지 깊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완전히 닫히는지, 잠시 막히는지에 대한 통찰도 필요하다. 완전히 닫히게 된다면 또 다른 새로운 문이 열리게 될것이다. 문제는 그 새로운 문이 어떻게 하면 열리느냐가 관건이다. 하나님의 시간에 분명히 일을 하실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새로운 문을 열어 달라고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요청해야 한다.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시간에 하나님께서 응답을 하실수도 있다.
때로는 새로운 문들을 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저울질 하실때가 있다. 원하시는 부분에 대한 훈련이 얼마만큼 되었으며, 순종하려고 하는 마음 중심이 어느 정도 인지 하나님께서 살펴보고 싶어 하실때가 있다.
새로운 문을 여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분량이 다들 다르다. 결코 간단하게 생각할 부분이 아니다.
하나님의 시간이 안되서 그럴수도 있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하지 못해서거나 하나님께서 원하는 부분에 온전한 순종을 하지 못해서 시간이 지연 되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응답의 시간이 되었을때, 하나님께서 한순간에 응답하실때도 있을것이며, 때로는 아주 조금씩 문이 열릴듯 말듯 하면서 열리는 경우도 있다.
하나님께서 응답에 대한 수많은 Sign을 우리에게 주실것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지혜의 눈으로 특별하게 허락하시는 Sign을 놓치지 않는 영안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Sign중 하나는 분명히 생각의 흐름이다.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생각의 흐름이 바뀌게 된다는것이다. 마음에 품었던 계획이 변화된다는것이다.
생각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하나님께서는 세심하게 인도하실때가 많다. 그 변화된 생각이 새로운 일을 이끌고 가기 때문이다.
인생의 시간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이 거칠게 느껴질때가 있다. 원치 않은 일들로 진로에 갑작스런 개입으로 방향을 전환 시키시는 경우도 많다. 이런 저런 계획을 세워 놓고 열심히 추진하는데 어느날 갑작스런 일을 일으키셔서 하나님께서 막으시는 경우도 있다. 결론적으로는 모든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겠지만, 당장은 힘들게 느껴지는것이 사실이다. 하나님의 갑작스런 개입에는 하나님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특별한 부르심때문에 필요하거나, 하나님의 시간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도 바울의 경우가 그렇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자신의 모든것을 걸다시피 하며 핍박하곤 했는데 다메섹에서 이루어진 하나님과의 강권적인 만남으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앞에 완전하게 무너 지게 되었다. 초자연적인 인생의 변화 였다.
그만큼 하나님의 시간이 급했고, 새로운 사역의 문을 열고 싶은 하나님의 의지가 강했기에 사도 바울의 인생에 갑작스런 강권적인 개입을 하셨던것이다. 그러한 주권적인 개입에는 그 사람의 기질이 강해서 일반적인 인격적인 하나님의 방법으로는 꺽을수가 없기에... 또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너무 급하시기에 그런 방법을 택하시기도 한다. 주변의 수 많은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이고 싶으시기에 그런 일을 하시기도 하는데, 그 당사자는 인생의 큰 획을 나누게 되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꼭 그렇게 강한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은 인격적인 방법을 통해서 생각의 흐름을 주장하기도 하신다. 우리의 영적 생활에서 일반적으로 많이 이루어 지는 상황이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거절하지만, 하나님의 섬세하신 Touch에 점점 마음이 녹게 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계획과 생각에 스며 들게 되는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을 지으셨기에 그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의 원대로 움직이시는것은 하나님만이 하실수 있는 능력이다. 아주 인격적으로, 하나님께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굴복할수 밖에 없는 그 무한한 은혜에 빠지게 되는것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할수 없는 하나님만의 방법이다.
그 방법이 바로 감동이다. 감동...그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억지로 하는것을 기뻐하시지 않는다.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사모하며, 무슨 일을 해도 자원하는 심령으로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원하신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머리로는 잘 알지만, 가슴에 잘 느껴지지 않아서 많은 고심을 한다. 물론 그렇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하나님께 결코 나아 갈수가 없다.
자신의 마음대로 잘 안되서 냉냉한 시간을 어느 정도 가져 보고, 넘어졌다가 일어서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일어나려고 하는 그 마음의 중심을 무척 이쁘게 보실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그 인격적인 마음을 악용하려고 하고, 업신여긴다면, 끝까지 기다려 주시지는 않으실것이다.
사랑하는 영혼이기에, 하나님의 마음은 더 불타게 될것이다. 우리의 영혼의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으면 질투하시고, 투기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인격적인 방법을 결코 우습게 알면 알될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격적으로 대하실때 굴복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인생의 원리일것이다.
재앙을 받게된다는 개념이 아니라 그 영혼과의 인격적인 관계와 사랑에 목말라 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강한 의지가 어느 순간에는 그 사람의 인생에 크게 개입하실수 있을것이다. 결국은 하나님의 방법에 굴복하게 하실것이다. 그 사람의 마음 중심을 차지하고 싶으셔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그리고, 그 마음 중심의 자원하는 심령과 의지를 받고 싶어 하실것이다.
성경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배우는 영적인 원리가 있다. 믿음의 사람들의 마음 중심에서 흘러 나오는 깊은 감동때문에 하나님이 견디지 못하신다는것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드리겠다고 할때, 하나님께서 오히려 말리고 싶어하시는 인격적인 아버지라는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
사도 바울이 그런 사람이다. 다메섹에서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가지게 되고, 모든 초점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게 되었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사는 하나님께 미친자가 되었다. 사도 바울 한 사람의 사역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흘러 들어 가게 되고, 수많은 교회들이 세워지게 되었다.
세번에 걸친 전도 여행을 마무리 하게 되었을때 조차도 사도 바울은 쉬지 아니했다. 오히려 세상의 가장 중심부인 로마를 피묻음 복음으로 변화 시키고 싶은 생각과 열망이 가득했다. 많은 중보자들이 있었지만, 자신의 생명을 걸고 순교까지 각오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모두가 불안했다. 그토록 사랑했던 영적인 아버지, 사도 바울을 죽음의 사지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모두가 기도했다. 성령의 강권적인 인도를 구했다.
가이사랴에 이르렀을떄 전도자 빌립의 딸과 선지자 아가보가 예언하여 말하기를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의 손에 의해서 바울이 결박되며, 이방인의 손에 넘겨져서 해를 많이 받게 된다고 주의 음성을 전하면서 기도했다.
모두가 울었다. 모두가 말렸다. 그러한 예언을 통해서 미리 말씀 하셨던 성령께서도 오히려 사도 바울을 말리고 싶어하시는것 같았다. 사역자로서의 바울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들 바울이기에 지금까지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렇게 많은 핍박과 고통을 받아 왔는데 이제는 조금 쉬게 하고 싶은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이었으리라...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땅에 전파되기를 원하는것은 하나님의 강한 열망이다.
그 일을 사람에게 맡기셨고, 복음의 평안의 신발을 신고 마을 곳곳마다 들어가서 전도하며 가르칠때 하나님께서도 무척 기뻐하시고, 감동하셨다. 그러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사도 바울이 생명걸고 했기에 하나님도 늘 깊은 김동 속에서 사도 바울을 보고 계셨다. 하지만, 바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세상의 중심부를 복음으로 정복하기를 원했다. 목숨을 내 놓은채로...하나님만을 위해서...
하나님도 함께 우셨다. 그 마음만으로도 무척 감동하셨을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 내 이름을 위해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던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복음을 위해서 몸을 내 던지는 아들을 보호하고 싶으셨을것이다. 한편으로는 막고 싶으셨을것이다. 아버지의 마음이다. 하나님의 감동이다.
아들로서도, 사람으로서도...영적으로 뿐만 아니라 육적으로 행복하기를 윈했던 아버지의 마음이었을것이다.
바울도 함께 울었다. "내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이미 모든것을 버렸습니다. 십자가에서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아버지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아요.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것으로 생각하지 아니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다.
하나님도 막지 못했다. 하나님도 막을수 없었다. 사도 바울에게는 하나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핍박과 결박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오히려 자신이 더 원하던 바였다.
천부장과 총독에게 은혜를 받게 하셨지만, 바울의 걸음은 핍박과 고난의 시간이었다.
하나님도 바울의 마음을 받아 들이셨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할것이다." 영문에 갇혀 있었던 사도 바울에게 그 밤에 나타나셔서 바울 곁에 서 계시며 하신 말씀이었다. 그리고, 꼭 안아 주셨을것이다.
진정한 하나님의 감동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겁을 내는 사람일것이다. 하나님밖에 모르기에, 하나님이라고 하면 물불 안 가리고 달라들기에 하나님께서 그 길을 막아서 안식과 휴식을 취하게 하고 싶은 사람일것이다.
하나님의 감동이 있는 사람은 세상도 감당할수 없지만, 하나님도 결코 이기지 못하는 진정한 이스라엘이다.
이러한 감동이 있는 사람의 영육간의 지경은 세상 끝일것이다. 더 이상의 훈련과 연단이 필요치 않은 단계일것이다. 하나님과 온전히 하나가 되는 시간일것이다. 세상으로 나가려고 하기 때문에 막으시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조금 쉬라고 말리시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감동이 충만한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 일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도 돌아보라고 권면하시는 사람일것이다.
내 자신의 문제를 이겨 내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으로 채우는것이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채워서 하나님께 미쳐버리는것이다. 이런 사람은 어느 순간에 인생의 진로와 장래가 활짝 열려지는것을 보게 될것이다. 하나님께서 막으실 이유가 없다. 무슨 일을 해도 하나님의 발걸음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서 그렇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 길을 더 열어 주실것이다. 하나님의 감동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으로 채우게 된다. 하나님의 마음도 감당하지 못하게 만드신다. 하나님으로 무엇을 줄꼬 고민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감동의 사람. 무슨 일을 하든지 이러한 감동이 넘친다면 하나님의 무한한 방법이 그 안에서 이미 역사하고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람의 일과 사역, 가정에 어떠한 성령의 바람이 불지...우리보다도 하나님의 기대가 훨씬 더 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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