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Weekly칼럼(51-100)

하나님의 은혜가 응답이다. (75)

Joseph Lee 목사 2013. 10. 31. 05:23

 

 

하나님의 은혜가 응답이다. (75)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시 37:4-6)

<josephlee0212@gmail.com>

 

 

하나님을 믿고 말씀을 공부하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하나님에 대해서 더 깊이 알면 알수록 영혼 깊은 곳에서 생명수가 흘러 나온다.  우리 모습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죄인인 것을 깊이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하나님없이 한순간도 살수 없는 죄인인 것을 알고 마음 아파한다. 하나님 앞에서 얼굴을 들지 못한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라고 하면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계획대로 살수 없는 사람이라는것을 깨닫게 된다. 그 깊은 좌절과 낙망속에서 한가지 답을 얻게 되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만으로만 살수 있다는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한 걸음도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한 순간도 숨쉴수 없는 존재가 바로 우리라는것을 알게 된다.

그동안 자신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생각해온 이 세상에서의 나름대로의 성과와 손에 쥐었던 명예와 부조차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고백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모든 만남도, 이룩한 모든것들도, 자신의 명예와 위치, 하는 모든 일들도 하나님의 크신 은헤가 있었기에 가능하다는것을 알게 된다. 그 은혜가 있기에 영적인 눈이 열려서 이 모든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영적인 위치, 영적인 모습, 현재의 영육간의 상태를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것은 참으로 큰 은혜다. 이것을 깨달을때 겸손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속에서 하나님의 관점과 생각으로 미래를 바라보는것을 우리는 비젼이라고 한다. 다가올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꿈과 계획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과거의 모습을 제대로 깨닫고 무릎 꿇게 될때, 현재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함께 보게 된다.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는 미래로 연결된다.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면서 강력하게 흐르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삶 속에서 실제적으로 넘치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은혜를 제대로 깨닫아야 한다.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서 영원하다. 결코 변함이 없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삶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을때는 감정적인 은혜로 느껴질때가 많다. 찬양과 예배 가운데 눈물이 흘러 넘치고, 기쁨이 넘치면, 모든 것이 용서 되는것 같고, 반대로 마음에 조금이라도 Touch가 없으면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게 된다. 믿음으로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지만 감정적으로는 혼돈스럽다. 무엇인가 좀 더 무거운 벌을 받아야만 할것 같고, 아님 좀 더 고통스러워야만 이 모든 죄에서 벗어 날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반대로 감정적으로 마음의 족쇄가 풀려진것만 같은 느낌이 들때는 모든것에서 순간적으로 다 풀린것 같고, 완전한 승리를 얻는것 처럼 방심하게 만들기도 한다.

감정적인 신앙이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용서를 받았다.

 

어떤 사람들은 은혜의 수치를 눈에 보이는 축복으로만 따지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물질주의에서 오는 가벼운 모습이다. 자녀들의 진로와 장래의 문이 활짝 열리면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시는것 같고, 물질의 문이 어느 정도 열리면 하나님께서 이제 축복을 시작하시는구나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다른 사람을 보는 관점이 세상적인 축복을 어느 정도 받았는지로 판단하게 된다. 기도를 저렇게 해도 저 사람은 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이해 하지 못한다. 그 사람이 무릎 속에서 받는 영적인 축복은 철저하게 무시한다. 가치를 모르기때문이다.

모래성 위에 지은 모습이다. 기도를 열심히 쌓아 보지만, 방향이 한참 잘못되어 있다.

하나님의 마음은 없고, 하나님의 똣보다 자신의 출세, 성공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의가 분명해야 한다. 그런 부분에 대한 생각과 가치관이 정립되어 있지 않으면 사탄의 공격속에서 믿음을 지키기가 힘들수 있다. 말씀 때문에 오는 갈등이 아니라 자신의 바램과 현실에서 오는 괴리가 커서 힘든 문제가 생길수 있다.

 

진정한 은혜는 하나님만 바라보는것이다. 영적으로 어떤 환경이든 상관없이 하나님을 사모하는것이 은혜다.

그 어떠한 축복보다 영적인 관계속에서 오는 은혜가 없다면 진정으로 구원을 얻었는지, 영생을 소유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한다. 환경과 어떠한 조건에 상관없이 오직 주만 바라보는것이 은혜다. 하나님께서 손에 쥐어 주시는 무엇을 바라보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마음에 깊이 새기는것이 가장 큰 은혜다. 이 은혜가 매일 넘칠때 지성소로 들어 갈수 있다. 순전하게 주만 바라볼수 있다.

 

진정한 은혜는 나 자신의 모습을 깨닫는것이다. 항상 말씀의 적용 대상이 자신이 먼저 되어야 한다. 남편도, 아내도, 자녀들도, 주변 그 어떤 사람도 아니다. 때로는 주변 사람들로 고통받고, 핍박받는 부분에 대해서 하나님은 모두 다 알고 계신다. 그럼에도 그 어떠한 경우에서도,  매일의 말씀을 적용할때는 나부터다. 다른 사람이 아니다. 아무리 탁월한 말씀의 은사가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할지라도 상관없다. 하나님 앞에서는 나부터 깨어져야 한다. 이러한 깨어짐의 은혜가 자신에게 없으면 주변 사람이 힘들다. 다른 사람을 강요하고, 억압하고, 가르치려고 들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깨어짐의 은혜가 있을때, 아프게 하는 주변 관계를 하나님께서 정리하실것이다. 나를 위해서 붙여주신 하나님의 도구인데 내 모습을 제대로 들여다 보지 못하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놓치게 된다.

밖에서 아무리 높은 지위와 명예를 누린다고 할지라도 골방에서는 하나님과 나밖에 없다. 아무리 탁월한 은사가 주어 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지성소에서는 하나님과 나 자신밖에 없다. 성령의 날개를 달고 비상하기 전에 반드시 깨어짐과 부서짐의 은혜가 함께 있어야 한다. 나 자신이 가장 갈망해야 하는 은혜다.

 

진정한 은혜는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은헤다. 우리는 본성상 다른 사람을 일으켜 주기 힘들다. 힘든 환경에서 나자신부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본성이다. 내가 힘든데 다른 사람에게 관심 가져 주는것을 위선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아니다. 힘들수록 다른 영혼을 품는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다. 힘들고 어려울때 심는것을 하나님께서 더 기쁘게 받으신다. 이러한 희생과 사랑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가능한것이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빨리 나가고, 더 빨리 일어나면 내면의 깊은 곳에서 시기,질투가 일어나서 견딜수가 없다. 때로는 그 사람이 미워지기도 하고, 어떻게하면  그 사람을 짖밟을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순간적으로 그렇게 생각할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머무는 곳에서는 한 영혼이 귀하다. 나보다 못한 사람들만 품는것이 아니라 나를 힘든게 하는 사람,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을 품는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신다. 무엇보다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신다. 많이 찔린다. 많이 아프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품으라니...

우리에게 답이 없기에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하시는것이다. 하나님께서 일하고 싶으시기에...이런 사람은 나중에 많은 영혼을 품을수 밖에 없게 된다. 영혼을 살리는 그 생명의 능력이 어떤것인지 잘 알기에 영혼들을 일으키는데 모든것을 드리게 된다. 이러한 생명의 능력은 그 영혼들을 실제적으로 세워주게 된다. 그 영혼의 묶여 있는 많은 부분들을 풀어 주게 되고, 자유하게 만든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실것이다.

그 마음 중심을...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람을 귀한 사역자로 보시며, 앞으로 더 많은 영혼을 붙이시게 될것이다.

 

진정한 은혜는 하나님을 움직이게 한다. 하나님의 감동대로 하는것이 기도다. 처음에는 인간적인 욕심과 정욕으로 기도할수 있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하나님 나라를 품고 기도하기는 힘들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기도는 어느 순간 부터 기도 제목들을 바꿔놓으신다. 하고 싶은 기도가 나중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가 될때가 많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다. 기도조차 내 마음대로 하는것이 아니라는것을...

그러한 기도에는 뜨거운 감동이 있다. 많은 방해가 있을수 있고, 제대로 보이는 환경과 응답은 당장 없을수 있지만 계속해서 기도하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깨닫게 된다. 그동안 기도를 심게하신 분이 하나님이셨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하실 새로운 일을 위해서 우리로 기도심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모든것에 대해서 주권을 가지고 일하시는것이 분명하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권을 양도하는것 처럼 보이는 것이 바로 기도다.

기도는 특권이다. 하나님만이 가지신 주권을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길 원하신다는것은 놀라운 은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영감과 감동이 중요한 이유는 그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살아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 나라를 향한 뜨거운 열정이다. 그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 영과 혼과 육...모든 방면에서 이루어 지기를 원하신다. 그 가운데 우리로 기도를 심게 하신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성령께서 그 기도를 인도하시고, 응답하고 싶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기도는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사람의 생각으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계속적으로 심게 된다. 하고 싶지 않아도, 그만 중지하고 싶어도 계속 기도하게 된다.

 

"내가 천국의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 16:19)

이스라엘 백성의 앞에서 운행하시던 하나님의 불기둥과 구름 기둥이 갑자기 뒤로 가신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 막고 있고, 뒤로는 애굽의 바로와 군대 병거가 따라 오는 바로 그 순간이다. 모든 백성이 아우성치며 어찌 할 바를 모르는 그 순간에 한 사람,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무릎을 꿇고 있다. 그 다급한 상황에 어떠한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홍해를 바라보면서 무릎을 꿇고 있다. 기도하고 또 부르짖고 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시는 말씀이 참으로 경이롭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출 14:15-16)

모든 것을 다 하실수 있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홍해를 갈라서 육지가 되게 하고 이스라엘 백성으로 그 사이를 지나가게 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주권과 능력을 가지시고 다 하실수 있는 분이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부탁을 하시는것이다. 기도의 사람, 무릎 꿇는 사람 모세가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하락하시고, 은혜와 은총으로 주셨기 때문이다. 기도를 통한 주권 양도가 하나님의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것이 아니라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으로 살아 역사하기 때문이다.

기도는 특권이다. 하나님께서 모든것을 미리 다 보여 주시지 않는다. 미래와 다가오는 시간에 대해서 보여 주신다고 해도 부분적으로 국한 될뿐이다. 그 예언과 약속의 말씀이 우리를 위로하시고, 일으켜 주시겠지만, 그 방법과 시간,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말씀 안하실때도 많다. 말씀 하지 않으신다고 하나님께서 계획이 없으시고, 일을 안하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일이 있을때 마다 하나님의 뜻을 여쭤 보는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한 기도와 간구에 이런 저런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도 놀라운 계획과 뜻을 부분적으로 펼쳐 보여 주실때도 많다. 때로는 일부러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시는 경우도 있다. 더 많은 기도를 쌓게 하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

사람에게 몇마디의 약속을 하실때 하나님의 방법과 계획을 자신의 생각대로만 끌고 가려고 하는 경우가 있기에 하나님도 우리를 위해서 일부러 전체를 다 말씀하지 않으시는 경우도 많다. 또한, 말씀 해 주신다고 사람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기이한 일들을 어떻게 머리속에서 다 헤아릴수 있을까?

분명한것은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사람을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소중하게 보신다는것이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특권을 허락하시고, 그 순간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우리 뒤로 돌리셔서 우리가 명하고, 선포하는 시간까지 기다리시는 경우가 많다는것이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을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출14:21)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명령하고 선포했을때 하나님께서도 따라서 움직이신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고, 사람이 순종해야 하겠지만 전혀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이 기도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땅에서 묶을수 있다. 그때 하늘에서도 함께 묶으신다. 악한 영들을 결박시킬수 있고, 하나님의 뜻에 대항해서 움직이는 어두움을 기도로 묶을수 있다. 엄청난 특권인데 우리는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때가 많다. 강력한 능력의 무기를 가지고도 조그마한 것을 구하다가 끝나버리고, 우리의 손에 쥐어 주신것을 하찮게 생각할때가 많다.

모세를 통해서 보여주신 그 일을 지금도 우리의 삶속에서 일으키고 싶어 하신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고 만나는 사람마다 각자 생애의 BC와 AD를 나누는 놀라운 일들을 우리를 통해서 하고 싶으신것이다.

 

진정한 은혜는 하나님의 얼굴과 손길을 실제적으로 체험하는 시간이다. 책속에 화석화된 하나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실제적으로 많은 사람의 삶속에서 나타나고 있다. 다이내믹하게 움직이고 계신다. 그 하나님의 숨결을 수시로, 날마다 느낄수 있다는것은 큰 축복이다. 지.정.의. 모든 부분에서 전인격적으로 느껴야 한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허락하셔야 하겠지만, 하나님을 깊이 느끼고 체험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특권은 담대함과 믿음이다. 이러한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는 문제가 올때마다,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 할때마다...더욱 빛을 발하게 되어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나타나심이 무척 실제적이다. 마치 사람과 사람으로서 대면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생생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넘치는 사랑이 삶속에서 역동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생활은 삶속에서 생명력이 흘러 넘친다. 지금 당장 죽을것만 같다가도 그 생명력이 역사하면 벌떡 일어나서 주님의 길을 걷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은 계속 넘어져 있을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그대로 두지 않기 때문이다.

 

일상 생활에서 말씀 훈련과 기도 훈련은 중요하다.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정도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정해서 꾸준하게 교제하는 시간은 이 세상이 절대로 줄수 없는 기쁨이다. 생활예배다. 생명력을 공급받는 시간이다. 그러나, 화석화되고 싶지 않다. 세상 공부하듯이 매달려서 지식 습득에만 쫓겨 다니고 싶지 않다.

말씀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기쁨과 즐거움, 생명력을 공급받는 시간이고 싶다. 아무도 몰라 주더라도 하나님과 함께 보내는 지성소의 은밀한 시간을 통해서 다시 일어서고 싶다. 남들이 하기 때문에 그냥 아무 생각없이 따라서 하는 그런 모습은 버리고 싶다. 말씀을 듣지 않으면,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괴롭기 때문에 죄책감 때문에 억지로 하는 믿음 생활은 하고 싶지 않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싶다. 너무나 많은 죄로 물든 내 모습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죽을수 밖에 없는 죄인의 모습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과 사랑으로 채워 넣고 싶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잠시 근처에 맴도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에 깊이 빠지고 싶다. 모든것을 양보해도 단 한가지 버릴수 없는 부분이 하나님의 은혜다. 내 생활의 가장 큰 부분이기 때문이다. 내가 누릴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맞본 사람은 하나님을 갈망한다. 이 세상을 구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하게 되어 있다. 내가 살고 우리가 사는길은 하나님의 은혜밖에 없다. 하나님의 가장 큰 응답이다.

이보다 더 큰 응답은 없을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모습을 보고 쓰러져 있는 많은 영혼들이 하나님과 다시 Plug in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