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Weekly칼럼(51-100)

나는 무엇 때문에 애통하는가? (77)

Joseph Lee 목사 2013. 10. 31. 05:25

 

 

나는 무엇 때문에 애통하는가? (77)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히 제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시 51:1-7)

 

<josephlee0212@gmail.com>

 

 

하나님께서 어떤 사역자에게는 회개의 은사를 부어 주시기도 한다. 다른 영혼들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게 하는 능력이다. 때로는 말씀가운데, 찬양 인도가운데, 기도 가운데 그러한 역사가 일어난다. 그런 은사를 받은 사람은 늘 주님앞에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보는 은혜를 간절히 구해야 할것이다. 진정한 회개의 은사가 있는 사역자의 말씀을 듣다 보면, 눈물이 흐르면서 깊은 내면의 더러운 모습을 보면서 통곡하는 역사가 일어 나기도 한다. 때로는 부드러운 음성에 마음이 녹기도 한다.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워져서 견딜수 없다. 이렇게 악한 죄인의 모습을 가진 나를 하나님은 이렇게나 따뜻하게 품어 주실까?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이 회개의 능력으로 와 닿기도 한다. 반면, 회개의 은사를 가진 사역자로 부터 따가운 책망과 질책을 받는 경우도 있다. 좀 심하다 싶을 정도까지 야단과 책망을 받을때가 있다. 그러나, 성령께서 하시는 책망은 그 말의 강도와 상관없이 기쁨이 넘치면서...아멘. 아멘하고 화답하게 되어 있다. 마음에 깊은 평안과 함께.

사역자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더 거룩하고 아름답게 살려고 소원하면서 마음을 정했을때 주시는 하나님의 은사와 능력이기도 하다. 기도의 능력이기도 하다. 이런 사역자들과 조금만 대화를 나눠도 주님을 닮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또한, 주님을 닮지 못한 내 자신의 내면의 추악한 모습에 애통하도록 만드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러나, 그 애통은 하나님의 평안과 기쁨이 성령의 온유한 만져 주심가운데 함께 온다. 기분이 상하지 않는다. 마음이 다치지 않는다. 들으면 들을수록 인정하도록 하는 말씀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자존심이 상할수 있고, 내가 왜 이런 분에게 이런 책망과 야단을 맞아야 하나 생각할수 있지만, 마음은 이미 성령의 따뜻한 손길에 녹아 있다. 성령께서 하시기 때문이다.

그 책망 또한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기에 그렇다. 사모하고 싶은 은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 안에 먼저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할것이다. 그러한 성령의 인격적인 열매가 있을때 그러한 능력도 함께 임할수 있는것이다.

우리 삶이 주님의 은혜 가운데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즐겁게 해 드릴때에는 가는 곳마다 영혼의 회개가 일어난다. 별말 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사모하는 예수 운동이 강력하게 일어난다. 성령께서 앞서 나가셔서 일하시기 때문이다.

 

회개의 역사가 강한 곳에는 기적과 이적이 상식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무엇을 달라고, 무엇을 필요로 해서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얼굴만을 구하기에 하나님께서 그 영광과 함께 구하지 아니한 모든 것들을 부어 버리시는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뜨거운 교회는 성도 숫자가 늘어 나는 교회가 아니다. 회개 운동이 일어나는 교회이다. 서로가 뒤에서 미워하고 시기.질투하는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십자가에 못박는 회개의 능력이 나타나는 교회다. 예수 이름으로 모이는 진정한 성령의 모임은 능력을 구하고 이적을 구하는것이 아니라 통회하는 심령, 마음을 찢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러한 곳에 하늘의 위로가 있다. 하나님의 위로하시는 손길이 함께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싶다. 여호와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싶다. 경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이름을 즐거워하며 기뻐하는것이다. 주님과 첫사랑일때는 하나님에 대한 섬세한 감정이 살아 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무디어진다. 처음에는 조그마한 말과 행동을 할때도 조심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한두번 실수하고 또 반복하게 될때 처음에는 괴로와하고 고통하다가 하나님께서 기도가운데 평안을 주시고, 아무일도 없었던것처럼 넘어가게 되면 점점 익숙해 진다. 점점 합리화하기 시작한다. 어차피 죄인인데...아무리 해도 안되는것을. 이 정도쯤이야. 남들 다하는것인데...하나님께서도 그냥 넘어가시는것 같던데...

그리고, 처음 괴로와 하던 죄책감도 희미해 지기 시작하고, 내 신앙의 색깔이 점점 옅어져 가기 시작한다.

믿음 생활이라는것이 기도하고, 말씀 보고, 교회 열심히 다니고...또 시간이 허락된다면 다른 거룩한 모임에 참석하면 되는것이지...뭐 특별히 다른것이 있을까? 그런씩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이중적인 생활이 되어버린다.

마음이 단단해진다. 말씀을 들어도 나의 것이 되지 않는다.  책망하는 설교를 들으면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서 속이 시원해진다. 이런 말씀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들어야 하는데...자신에게 적용하는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려고 한다.

 

은혜를 사모한다. 예배 가운데 감사와 찬양으로 눈물을 흘리고 싶다. 성령의 뜨거운 불을 경험하고 싶다. 여러가지 이적과 기적을 체험하고 싶다. 그러나, 가장 큰 은혜는 내 자신의 마음을 찢는것이다. 마음을 통회하는 심령이 은혜중의 가장 큰 은혜다. 그런 마음이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심령이다. 다른 사람에게 잘못된것을 지적하고 싶더라도 쉽게 할수가 없다. 나도 안되기 때문이다. 인간적으로 노력해도 쉽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갑게 말해주고,충고 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다가도 조용하게 된다. 기도가 더 중요함을 알기때문이다.

그럴때 하나님으로 부터 위로가 온다. 하늘 문을 여는 사람이다. 인간적인 방법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방법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기도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이다.

 

회개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만이 여호와를 경외할수 있다. 회개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은사는 잘못하면 사람들의 비유를 맞추려고 할수 있다. 사람들의 기분만 좋게 하고, 사람들 중심의 사역을 할수 있다.

자신의 마음을 찢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구원을 진정으로 기뻐할수 있다. 초점과 마음 중심이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역자들은 만나는 영혼들에게 "당신은 기도를 잘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안 받아주시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앞에서 받는 응답은 사탄으로부터 오는것이지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안 받으실테니...그런 기도를 하지 마세요..." 너무 쉽게 이야기한다. 너무 아프게 한다.

마치 하나님의 모든 뜻을 완전하게 분별하는것처럼 그런 태도로 영혼들을 대한다. 한 사람 한사람...어떤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마음을 찢는지도 모른채, 얼마나 고통가운데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려고 몸부림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생각하는대로 쉽게 이야기 해 버린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영혼들은 마음만 상처를 받는것이 아니라 영이 상처를 받아서 다시 일어나기 힘들정도로 쓰러져 버리기도 한다. 설령 부분적으로 맞는 이야기일수 있지만, 두려워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지혜를 구해야 할것이다.

누가 책임질것인가? 어느 곳에 기댈곳조차 없는 영혼들에게 마치 하나님의 살아 있는 음성인 것처럼 선포해 버리는 바람에 그 영혼은 넘어져서 고통의 늪에 빠지게 된다.

 

기억해야 할것은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책망은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 하나님께로 더 가고 싶은 소망을 준다. 그 책망을 놓고 기도하면 할수록 평안이 온다. 두려움이 아니다. 공포가 아니다. 평안하다. 성령께서 만져 주시기에 마음이 즐거워진다.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보는것에 큰 기쁨이 따른다. 하나님께서 만져 주시기에 그렇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한다면 다른 사람의 영과 혼을 찢는 말과 사역을 쉽게 할수 없을것이다. 기도 중에 깨달은 다른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이 심각한 하나님의 책망을 포함한다고 할지라도 말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조용히 기도해야 할것이다.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영적인 음성과 환상을 어떻게 전해주는것이 좋을지 하나님께 여쭤보며, 그 영혼의 마음을 만져 달라고 먼저 기도한다. 진정한 사역자의 태도다. 우리 또한 다른 영혼들을 대해야 하는 태도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다. 하나님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경외하는 사람은 다른 영혼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지극히 큰 관심이 가 있는 곳이 교회와 영혼이기 때문이다. 말하고 싶어도 참고 기도한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은 정말 조심하게 되어 있다. 나 때문에 다른 영혼이 실족할까봐, 넘어 질까봐...쓰러져서 못 일어날까봐...조심스럽고 떨린다. 

 

회개의 능력이 있는 사람은 책임감이 강하다. 다른 사람에게 짐을 떠 맡기지 않는다. 자신의 일처럼 생각한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짐을 져 주려고 한다. 영적으로 묶여 있는것을 풀어 보려고 몸부림침다.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려고 하기에 그렇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음을 찢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능력을 공급한다.

자신의 모습을 돌아 보는 사람에게 주시는 은혜다. 이런 사람은 어디를 가더라도 Leader가 될수 있다.

군림하는 Leader가 아니라 섬기는 사람이 될수 있는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찢으면서 애통하는 시간을 가져 보았기에 다른 영혼을 불쌍히 여기면서 중보 기도를 할수 있다.

그 영혼의 실수와 죄까지도 덮어달라고 울면서 기도할수 있다. 자신이 그런 은혜를 하나님께 입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미 그런 사랑을 체험해 보았기에...그렇게 할수 있는것이다. 마음이 애통해하는자는 다른 사람의 아픔에 절대적으로 민감하다. 무심코 지나치지 않는다. 흘려 버리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어디를 가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조용히 있는듯 하지만, 어디를 가도 중심 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질서정연하다. 말실수가 크게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다. 어떤 혼란스러운 일에 잘 관여되지 않는다. Peace Maker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10대 때의 주님과의 강렬한 첫사랑을 기억한다. 그 추운 겨울, 하나님을 혼자 찬양하며, 기도하면서 길을 걸을때는 내가 어디를 걷고 있는지, 주변에 어떤 사람이 지나가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걷고 또 걸었다.

버스 정거장을 찾아서 가다가 그 시간이 너무 좋아서 기도하며 눈물 흘리면서 걷다보니 거의 두시간을 걸을때도 있었다. 교회에 있는것이 좋았다. 그 낡은 교회 건물에 들어가서 구식 책상에 앉아 찢어진 방석 위에서 눈물로 기도할때는 한없이 행복했다. 여름에는 선풍기조차 돌리기 어려울 정도의 교회 환경이었지만, 상관없었다. 행복했다.

어린 시절, 하나님을 모르는 육신의 아버지의 눈을 피해서 주말과 주일 새벽기도를 나가는것이 쉽지 않았다. 너무 이른 새벽이라서 차도 없었다. 가깝지 않은 거리였지만 상관없었다. 캄캄한 이른 새벽하늘을 쳐다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달라고 그렇게 울었었다. 시간이 허락되면 홀로 교회를 자주 찾았다. 십자가를 쳐다보면서 앉아 있는것이 그렇게 좋았다.

혼자라는 것이 외롭지 않았다. 말씀의 단어 하나 하나가 마음에 살아서 움직이는것 같았다. 읽고 외우고...

지하철을 타도 한 손에는 항상 성경책이었다. 서 있던지, 자리에 앉던지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사람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어디를 가건 틈 나는대로 옆사람에게 말을 걸면서 전도를 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받아 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파서 견디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었다.

형제들과 연합하면서 교제하는것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내 손에 아무것도 없던 시절, 형제들과 모여 틈만 나면 찬양하고 기도하고, 서로를 위로하고...대부분의 선배들과 동역자들은 선교사로, 목회자로 세움을 받았다.

 

그랬던 아름다운 청소년과 청년의 시기가 있었다. 특별한 인간적인 화려함은 없을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열정때문에 밤잠 못이루며 밤을 지새울때도 많았다. 영혼들을 일으키는데 온 인생을 불태우고 싶었다.

10대때의 꿈이 점점 자라서...20대때의 하나님의 비젼이 되었고, 한 영혼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하는 마음이 너무 옅어졌다. 난 무엇때문에 힘들어할까? 난 무엇때문에 고통하는가? 애통하는가? 지난 지난 10여년의 시간은 어느 누가 쉽게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개인적으로 고통과 처절한 어려움의 시간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쉬운 시간은 없었지만, 지난 10여년의 시간은 정말 어렵고 힘들었다.

죽고 싶었지만, 죽을수도 없었다.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시고, 힘주셨기에 기도의 자리로 어렵게 나가기도 했었다. 그런데...지금은 하나님의 뜻때문에 고민하고 기도하는것 보다 내 자신의 문제가 답답해서 견디지 못한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도 하지만, 내 기도 제목이 드디게 응답되는것을 힘들어 한다.

인간적으로는 맞는 말일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다 허락되는 것이 내게는 허용이 안되고 묶여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도 가능하다. 그러나 난 알고 있다. 어린 시절 가졌던 첫사랑의 기억이 점점 흐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마음이 아프다. 다시 그런 뜨거운 마음을 갖고 싶다. 하나님을 생각하면 견딜수 없는 마음이 새로와 지고 싶다.

내 자신의 문제가 조금 어렵고 힘들다고 할지라도 피묻은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온전하게 인내하고 싶은데 참기가 힘들다. 아프다. 어렵다. 내 진정...하나님의 나라만으로 애통할 수 없단 말인가? 내 문제보다도 다른 영혼들을 위해서 더 아파 할수는 없을까?

 

회개하고 싶다. 내 마음대로 회개가 흘러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셔야 한다. 무엇 보다도 하나님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 피 묻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절을 꿈꾸고 싶다. 나부터 회개의 열매를 맺고 싶다. 호흡을 해도 예수, 무엇을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넘쳤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보다 하나님에 대해서, 여러 영적 원리를 더 많이 깨닫게 되고, 알게 되었지만...내 마음의 많은 부분에서 주님의 향기가 퇴색되어지는것 같다. 마음이 아프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