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JM 칼럼] 하나님의 안전 장치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평안한 사람들이라기 보다 어려운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훨씬 더 많이 만나는것 같다. 대부분은 물질, 건강, 자녀 문제, 신분 문제, 인간 관계의 실패, 가족 문제 등등. 심각한 문제를 오랜 시간 안고 계신 분들이 많다. 생명을 걸고 기도를 하지만, 아직 한나처럼 사무엘이 잉태되는 그런 응답은 지체되는것 같다.
꼭 죽을것만 같다. 아니, 눈을 꼭 감고 하나님께로 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길이 도저히 없다고 생각이 되다가, 이제 죽었습니다 라고 할때는 전혀 뜻밖의 방법으로 조금씩 길이 열려 지는것 같다. 그것도 잠깐.
그런데 아직도 내 심장 깊은 곳을 건드리는 쇠창살은 무뎌지는것 같지 않고 여전히 나를 건드린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하나님은 이 아픔을 건드리는것 외에 다른 훈련을 시킬 도구가 그렇게 없습니까?
이 방법외에도 저를 연단시킬 레퍼토리가 많으시잖아요? 언제까지 계속 이 아픈 부분을 찌르시면서, 나 몰라라 하시겠습니까? 항변도 해 보고, 비명도 질러 보지만, 다른 어떤 부분은 조금씩 풀려 지는것 같지만, 내가 가장 아파하고 힘들어 하는 부분은 아직도 그대로 남겨 두신다. 내게 가장 민감한 부분이라서 찌를때 오는 아픔은 늘 상상을 초월한다. 이제 제발 그만 좀 해주세요. 이 아픈 부분만 풀어 주시면, 제 생명 다 드릴께요. 주님이 원하시는건 다 드리겠습니다. 그런 고백이 저절로 흘러 나온다. 하지만, 훈련의 시간은 계속 된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을 더 묶어 두신다.
아무나 그런 훈련을 시키지는 않는것 같다. 하나님의 사랑의 강도가 강해 질수록 훈련의 강도는 강해진다. 하나님의 기대치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연단의 시간과 눈물의 양은 더 많아진다. 아무리 비명을 질러도, 하나님의 시간까지다. 하나님의 꿈과 희망이 그 가운데 있기때문에 하나님도 포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도 내가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여기까지 훈련시켰는데, 내 목적과 계획을 이루기까지는, 내 사랑의 섭리를 온전하게 이루기까지는 절대로 이 사람을 포기 할수없다는 비장한 각오로 하나님의 사랑하는 사람을 훈련시키고 계실것이다.
그 연단의 시간은 절대로 헛되게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비록 말씀 묵상도, 기도도 제대로 되지 않는 시간이라고 할지라도 영혼 속 깊은 곳에 하나님의 Heart가 깊이 새겨 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단의 시간가운데 나만 힘든것이 아닐것이다. 하나님 또한 마음이 무척 힘드실것이다. 아들이, 딸이 아파하는것을 좋아할 부모는 아무도 없다. 하나님께서 연단의 도구를 하나씩 사용하실때마다, 주님도 무척이나 고민하실것 같다. 내 자녀가 얼마나 아플까. 과연 이것을 견딜수 있을까. 이 어려움 속에서 믿음을 잃지 않을까. 무척 고통스러워 할텐데. 하나님의 고민 또한 만만치 않을것이다. 그 분이 나의 하나님이며, 우리의 주님이시다.
나의 고통 가운데 계신 주님. 연단중에 하나님은 무엇보다 마음을 붙잡아 주신다. 미칠것만 같아도, 마음대로 미치지 못하며,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이유다. 주님이 이 길을 함께 걷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울증에 걸릴것만 같은데도, 다시 주님을 찬양하게 된다. 어느 순간 내 마음이 더 깊은 낭떨어지로 떨어지지 못하도록 꼭 붙잡아 주신다. 놀라운 은혜의 법칙이다. 고난의 신비이며, 하나님께서 숨겨두신 기묘와 모사이다.
누구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단이 끝나는 시간을 기다리고 계신다. 하루 빨리 가파른 훈련의 종착점에 도달하기를 하나님께서도 간절히 원하신다. 고난의 시간에 부어 주셨던 영적인 축복 뿐만 아니라, 인생의 므나셋과 에브라임을 쥐어 주시고 싶어서 하나님도 못 견디실것이다. 하나님만 순전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간절하게 사모하는 이들에게 주시는 응답일것이다. 그 뿐이 아닐것이다. 성령의 날개를 달아 주셔서 함께 비상하며, 하나님 나라의 꿈을 주님께서 이루어 나가시며, 춤을 추실것이다.
지금은 모른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것도, 준비하신것도, 하실 일도 사람은 알수 없다. 다만 보이는 어려움으로 좌절하고 판단할 뿐이다. 가시가 아프게 찌르고, 고난의 짐이 무척이나 무거워서 코앞만 보일뿐.
그 길을 넘어선 지경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하나님은 목적지를 향해서 한치 오차 없이 나아가신다. 그 분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무척이나 아끼시기에, 땅에 놓기도 아까운 자녀이기에, 우리의 영혼을 주님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 하고 싶으셔서 사용하는 가시와 고통이 바로 하나님의 안전 장치다.
그 보호 장치가 작동할때는 하나님의 보좌앞에 자동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몇날 며칠의 금식 기도가 뜨겁기만 하다. 지치지도 않는다. 내 영혼이 살아서 움직인다. 영혼의 생동감이 있다. 내 영이 가장 맑은 시간이다. 조금만 기도해도 깊은 임재속에서 견디지 못하며, 하나님의 은혜로운 평안을 맛보는 시간이다.
연단가운데 풀어 주시는 몇가지 문제는 우리의 인생에 너무 큰 짐이 되어서 감당치 못하기에 하나님께서 풀어 주시는것이다. 그 외에 여전히 남아 있고, 지속적인 기도 제목으로 우리를 힘들게 하는 아픔은 영혼의 안전장치로 아직 풀어 주지 않으신다. 그것을 풀어 줄때도 있을것이다.
나중에 돌이켜 보건대, 이 훈련의 시간이 가장 주님과 황홀했으며, 친밀함의 가장 깊은 시간이라고 고백할것이다. 내 영혼과 마음을 힘들게 했던 가시가 주님앞에서 내 마음을 얼마나 아름답게 지키게 했는지, 순전한 마음을 유지 할수 있도록 돕는 가장 귀한 도구였음을 함께 찬양하게 될것이다.
영혼의 안전장치 때문에 인생을 무릎으로 성공하게 될것이다. 뜨거운 마음으로 영혼을 사랑하게 될것이다.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놀라운 섭리가 그 가운데 스며 들어 있다.
오히려 두려워 해야 한다. 언젠가 그 가시가 풀어 질 시간이 올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절대로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이 마음 변치 않을것 같지만, 말씀을 통해서 보건데, 다윗도, 솔로몬도, 삼손도...한 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오늘도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영혼의 보호 장치가 지속적으로 찔러댄다.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할정도로,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힘들고, 사람들을 피하고 숨고 싶을 정도로 어렵지만, 그 때문에 무릎 꿇고, 기도하게 된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찾게 된다. 그 아픔 때문에 겸손하게 된다. 그 고통 때문에 홀로의 외로움속에 하나님을 대면하게 된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같겠고 햇빛 은 칠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사 3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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