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Column

때로는 환경과 상황을 통해서 우리 모습을 보여 주실 때가 많습니다.

Joseph Lee 목사 2015. 10. 22. 16: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출15:22-23) 홍해의 기적을 경험한 후, 백성들은 수르 광야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삼일 길을 걸어 가서 발견한 물은 써서 마실 수 없었습니다. 마라의 쓴물로 기억되는 곳입니다. 백성들은 참지 못하고, 불만, 불평부터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길로 인도하실 때는 이들을 먹이실 방법이 있으셨습니다. 백성들은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려고 했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에 대해서는 조금의 관심도 없었습니다. 당장 마실 물과 먹을 양식이 보이지 않자, 강퍅해졌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이런 모습을 깨닫게 하시려고, <마라의 쓴물>로 투영하셨습니다. 백성들이 써서 마시지 못하듯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백성들의 영혼의 상태가 마라의 쓴물과 같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영안이 어두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진정한 영안은 하늘에서 보여 주시는 환상과 능력을 보는 것보다, 자신의 깊은 모습을 깨닫는 것입니다. 백성들에게 말씀으로 가르치시려고 했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환경과 상황을 통해서 그들의 영적 상태를 그대로 보여 주셨습니다. 광야는 백성들의 연단의 장소이면서, 그들의 영적인 모습의 거울이었습니다. 여호와 라파, 치유하시는 하나님으로써 백성들의 영혼을 치유하고 싶어하셨습니다.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속히 들어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차지 할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으로 만들어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원망, 불평이 아니라 진정 감사와 찬양이 흘러 넘칠 때, 가나안 땅을 차지 할 수 있다는 것을 광야에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감사, 찬양은 치유 받은 영혼에서 흘러 나오는 생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