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말1:2-3) 말라기 선지자는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총독으로 와서 성벽을 쌓았을 때, 살았던 동시대의 인물로 추정합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있으면서, 성벽을 축조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선포하면서 회개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바사로 돌아가서 왕의 시중을 들기 시작하면서, 예루살렘의 영성은 다시 황폐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제사장들과 성직자부터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성들이 바치는 제물들을 자신들이 취했습니다. 그걸로도 부족해서, 성전에서 제물로 바칠 짐승을 비싸게 팔아서 이익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이에, 백성들도 함께 영적으로 혼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 헌물을 바치는 것을 꺼려 했습니다. 레위기의 제사 정신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예배가 사라지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들이 엷어져 갔습니다. 바사로 돌아와서 성전과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했지만, 그들의 삶은 조금도 나아진 것 같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붙잡고 매달리기 보다는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고 있었습니다. 불과 얼마 전에, 느헤미야와 에스라를 통해서 보았던 하나님의 영광은 그들에게서 잊혀지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백성들은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라고 반문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불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요3:16에서 분명히 하고 계십니다. <어떻게?>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독생자 아들이었습니다.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 아들을 피 흘려 죽게 하셨습니다. 또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8:32) 아들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기를 원하시는 아바 아버지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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