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olumn(5102회)■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마18:1-5)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린 아이를 세우시며 하신 말씀은 세상이 말하는 “겸손해야 한다”는 도덕적 교훈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 나라가 움직이는 깊은 영적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여기서 “자기를 낮춘다”는 헬라어가 타페이노오(ταπεινόω)입니다. 겸손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을 스스로 낮은 곳에 두는 것, 높아진 자아를 내려놓는 것, 그리고 하나님만 높이는 삶의 태도를 의미합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연단을 받은 사람은 언제나 타페이노오(ταπεινόω)의 과정을 통과했다는 사실입니다. 낮아짐의 은혜입니다.
아브라함은 기다림 속에서 낮아졌고,
요셉은 감옥에서 낮아졌으며,
모세는 광야에서 낮아졌고,
다윗은 쫓기는 시간 속에서 낮아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먼저 높이지 않으십니다. 먼저 낮추십니다.
높아진 자아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 공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세계에는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비어진 사람을 채우십니다.
비어짐의 원리이며 채우심의 축복입니다.
타페이노오(ταπεινόω)는 자신만을 작게 여기는 감정이 아닙니다.
내 안의 자기확신, 자기 의, 자기 영광을 비워 하나님께서 다스리실 공간을 내어 드리는 영적인 모습입니다.
낮아짐은 영적 패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믿음의 태도입니다.
어린 아이가 천국의 Model로 세워진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어린 아이는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보여 주려 하지 않습니다.
조건 없이 의지합니다. 스스로 높아지려 하지 않고, 아버지의 품 안에 머무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주님은 그 모습을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스스로 올라가라고 말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내려갈 줄 아는 사람의 것입니다.
은혜는 높은 곳에 머물지 않고 늘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입니다.
타페이노오(ταπεινόω)는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단어가 아닙니다. 실패의 언어가 아닙니다.
자아의 왕좌에서 내려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영적 결단입니다.
진정으로 위험한 것은 연약함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도 괜찮다고 여기는 높아진 마음입니다.
낮아진 사람은 쉽게 상처받지 않습니다. 인정을 더 받기 위해 싸우지 않습니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하나님을 드러냅니다.
그런 사람 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잠잠히 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만이 경험하는 깊은 은혜와 하늘의 권세가 숨겨져 있습니다.
어린 아이는
하늘을 의심하지 않고 바라봅니다.
작은 두 손으로도
아버지의 손 하나면 충분하다 믿습니다.
타페이노오(ταπεινόω)
낮아진 마음 위에 하나님 나라가 내려옵니다.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
[러빙 Zoom 기도] 영성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깊어지는 것입니다 | Joseph Lee 목사 | Loving Wo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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