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Weekly칼럼(101-150)

거절하시는 것처럼 보일때가 많습니다. (122)

Joseph Lee 목사 2013. 11. 1. 16:54

 

 

거절하시는 것처럼 보일때가 많습니다. (122)

"예수께서 일어나서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수 없더라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막7:24-30)

 

<josephlee0212@gmail.com

때로는 하나님께서 거절하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생각보다 더 아름다운 응답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느껴지는 거절감이 결코 작지 않을수 있습니다. 당장 눈에 안 보여도... 믿음으로 기다리면서 견뎌 왔는데...상황이 반대로 갈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 순간, 이해가 안되지만,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뢰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슬퍼질 때가 많습니다."하나님께서 이젠 나의 간구를 거절하시나 보다" 하는 느낌이 올때가 있습니다. 연단 중 끝중의 마지막의 시간에서 느낄수 있는 감정입니다. 버림 받은 느낌. 상실감...오직 하늘만 바라보면서 울부짖지만, 끝내 외면하시는것 같은 그 하나님을... 깊은 기도 가운데 있는 영혼이라면 한 두번은 체험할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할 때마다 응답이 쉽게 온다면 기도가 무척 쉬워 질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의 빠른 응답에 대한 체험이 깊은 믿음으로 인도하는것 같지 않습니다. 확신과 담대함을 줄수 있을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은...하나님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그 시간에. 아무리 하나님 앞에 무릎과 눈물로 나아가지만, 조금도 응답이 없는 그 시간에 갈등하면서 계속 하나님께 나아갈때 믿음이 더 강해 질 것입니다. 아무것도 보이는 것 없는 그 시간이 정말 믿음의 시간입니다. 갈등의 연속이지만...하나님의 보좌를 믿음으로 부르짖으며 두드리고 있습니다. 기도의 수많은 응답을 받는 것도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정말 오랫동안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 동안에 꾸준히 하나님을 끝까지 바라볼수 있다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할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하셔야 합니다.

그 기다림 속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거절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 시간에는 우리 안의 고집. 자아. 자존심. 자랑. 교만들이 무너져 내리는 시간입니다. 아무 것도 할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서 처음에는 "이건 내 모습이 아니야!" 라고 당당하게 외쳤지만...좌절속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모습을 인정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로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Nothing인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사람은 밑바닥으로 내려가본 곳 만큼 영적으로 깊어 질수 있습니다.

 

신앙은 우리 힘으로 하늘을 바라볼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힘으로 위에 계신 하나님께 갈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래로 향하는 내 모습...밑바닥으로 추락하는 자신의 모습. 이곳 저곳에서 밟히고, 또 짖밟히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을 만나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아플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은 주저 하지 않고 던져 버리십니다. 처절한 수렁에서 올라 오면 또, 던져 버리십니다. 하나님은 반복하고 또 반복하십니다. 피부에 겨우 와 닿는 신앙이 아니라...뼈 속깊이...마음 중심에 새겨 질때까지...이러한 연단을 반복하십니다. 마지막 처절한 밑바닥의 시간을 통과한 영혼들의 입술에서 고백하는 간증을 들을때는 달콤합니다. 그동안의 기다림의 응답과 열매를 볼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시간을 통과하는 과정에 있다면 신음하게 될 것입니다. 그 문이 열려지기 까지는 아골골짝과 같은 처절하다 못해...거의 죽음의 시간과 같은 아픔을 지나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그 시간.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그 시간을 살아계신 하나님은 함께 걸어 주십니다. 모든 훈련의 과정을 통과하고 나서 눈에 보이는 육적인 간증은 그림자에 불과할수 있습니다. 진정한 열매와 간증은 내면에서 흘러나옵니다. 고난과 고통에서 흘러 나옵니다. 내면과 영혼의 변화...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크게 드러나는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거절은 때로는 신앙의 Test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래도 하나님을 따를수 있는지...마음 중심에 어떤 생각이 있는지...하나님과 다른 영혼을 향한 마음은 어떤지 하나님이 저울질 하시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 시간이 거절의 시간입니다. 아브라함때도 그랬습니다.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는 아브라함에게는 제물로 바칠 수양은 없었습니다. 이삭을 데리고 올라갔습니다. 이삭을 믿음으로 온전히 드리려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제사 제물로 이삭을 데리고 올라가는 발걸음은 갈등의 시간이었습니다. 이해가 안되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큰 그림을 눈으로 봅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믿음의 Test를 잘 이겨낸 아브라함의 결국이 어떤지 잘 압니다. 믿음의 조상이 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에게서 만들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셨던것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마음 중심이지 이삭의 생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압니다. 그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나중에 또 깨닫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해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 만들어 지고 있었습니다. 모리아산, 믿음의 제단에서... 이삭 대신 수양을 준비하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그 모리아 산에 솔로몬때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 지고, 나중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삭 대신에 진정한 향기로운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피묻은 복음의 원색적인 장소가 되게 됩니다. 사람의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시간과 거절하시는 것처럼 보일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이런 모습이 우리가 익히 들었던 말씀과 많이 다른것같고...여러 상황이 해석이 안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당장은 눈에 안 보일겁니다. 우리 머리로는 해석이 불가능할것입니다. 조금 더 지나봐야 할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을 결코 실망하게 하시지 않습니다.

모리아 산을 올라가기 전의 아브라함이 밤새 갈등하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삭을 바치러 모리아 산을 뚜벅 뚜벅 걸어가는 모습이...오늘, 하늘 문을 열려고 부르짖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삭을 바치기 전까지는 하나님도 침묵하실 것입니다.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을것입니다. 믿음으로 끝까지 인내하다가 하나님의 시간이 되었을때...하나님은 은밀한 가운데 숨겨두신 수양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그렇게까지 기다리게 하시고...그동안 무엇을 원하셨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런 시간에는 입술을 조심해야 합니다. 절대 감사. 절대 찬양이 중요합니다. 여러가지 생각을 제어해야 합니다. 신뢰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처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 어떠한 행동보다 믿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마음 중심을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보십니다. 아브라함은 이삭때문에 밤새 갈등했지만...하나님은 그의 생각을 주장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가도록 도와 주십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갈등이 올때는 Up and down속에서 정신을 못차릴때가 있습니다. 찬양과 불신, 감사와 불평이 하루에도 수십번 이상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러나, 기도의 자리에 있기만 하면...하나님만 의지하기만 하면...하나님의 뜻대로 나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쪽으로 결정 하게 됩니다. 성령께서 돕고 계셔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거절 하시는 것처럼 보일때 생각해 보아야 할 몇가지 Tip이 있습니다.

 

첫번째, 아이(Ai)성에서 배우는 교훈입니다. 가나안 정복전쟁 때 정탐꾼들이 돌아와서"2-3천명만 올라가서 싸우면 될듯합니다." 라고 했던 성이 여호수아 시대의 아이성입니다. 결과는 반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싸움에서 져서 쫓겨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아이성 또한, 여호수아가 정복해야만 하는 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무너졌습니다. 바로 아이성을 진격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셨던 여리고 성에 대한 승리에 대한 기억이 이스라엘의 영적 무장해제로 연결되었습니다. 교만했습니다. 방심했습니다. 하나님의 거절이 아니라 자신들 스스로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중에서 아간의 범죄 곧, 하나님께 바친 물건을 도둑질했기 때문에 그 결과로 전쟁에서 지게 되었습니다. 원인은 영적인 방심이었습니다. 승리에 대한 도취가 영적인 긴장감을 풀어 버렸습니다. 아이성에서 패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회개하고 일어났을때...하나님께서는 아이성을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거절하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는 우리 안에 있었습니다. 영적인 해이였습니다. 방심이었습니다. 교만이었습니다. 다시 하나님께 마음을 찢고 나아갔을때 승리를 허락하셨습니다.

 

두번째, 느헤미야에게서 배우는 교훈입니다. 바사왕 아닥사스다 왕때, 느헤미야가 하나님으로 부터 감동을 받습니다. 고국으로 돌아가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금식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중에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에게 확실한 감동을 주십니다. 그의 믿음의 행동이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왕의 조서와 건축에 필요한 재목과 원자재를 받아서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셨기에 모든 일이 순조로와 보입니다. 예루살렘까지 어렵지 않게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더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적은 내부에 있었습니다. 성벽을 공사할때...호론 사람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의 큰 방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공사에 장애가 컸습니다. 왕에게 계속해서 상소를 올리면서 느헤미야를 공격했습니다.

많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 순조로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렵지 않게 순탄한...평탄한 길을 가게 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실상 그렇지 않습니다. 무척 어려운 방해와 공격이 많습니다. 간절한 무릎과 기도없이는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갈수가 없습니다. 백성들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파수꾼 역할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해 나갑니다. 결과는 수많은 방해를 무너뜨려 버립니다. 이기게 됩니다. 또 맡기신 일을 더 잘해 나갑니다. 오히려 더 빠른 시간에 하게 됩니다. 어려움 속에서 백성들이 한마음이 되었습니다. 가난한 백성을 되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서로 뜨거운 기도로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었습니다. 힘들었지만...결국 이 모든 어려움이 합력하여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나아가는 많은 일들이 느헤미야가 걸어 왔던 길과 비슷할 것입니다. 수많은 공격이 간절한 무릎 속에서 합력하여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세번째, 수로보니게 여인에게서 배우는 교훈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 믿음이 크다고 칭찬하셨던 사람은 모두 이방인이었습니다. 로마 군인 백부장과 두로 여인인 수로보니게 여인이었습니다. 어린 딸이 귀신 들려서 예수님께 도움을 받고 싶어서 주님 발아래 엎드립니다. 그 여인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님과 딸...머리 속에서 오직 예수님이 고쳐 주셔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간절했습니다. 예수님이 거절하십니다. 자녀에게 줄 떡을 개들에게 주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하십니다. "세상에..." 사랑의 주님이라는 예수께서 자신을 개의 수준에 맞추어서 비유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거절하시는 수준이 아니라 자존심을 처절하게 짖밟았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기가 막히고 속이 상하는것보다...예수님께 살려 달라고 매달립니다. 자신은 어떠한 말을 듣던지 딸만 주님께서 치유해 주신다면 밑바닥으로 내려 가고, 짖밟혀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이런 상황을 만드실때가 많습니다. 응답은 커녕 마음과 자존심을 짖밟는 상황까지 이끄실때가 많습니다. 지근지근 밟습니다. 수치와 조롱이 오게 합니다. 아픔과 고통이 따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예수님 닮아 가도록 만드시는 과정입니다. 또, 우리의 마음 중심이 어떠한지 확인해 보고 싶으신 하나님의 test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너 지렁이 같은 야곱아. 개와 같은 수로보니게 여인아"...부르실때. "주님, 전 그보다 더 미천한 사람입니다. 그렇게라도 저를 기억해 주시고,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를 어떻게 부르시든... 어떻게 대하시든 상관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주님이십니다..."그러한 고백이 쉴새 없이 흘러 나온다면...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높이시는 시간이 곧 있을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데...자존심이 걸림돌이 될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체면과 품위가 하나님의 응답을 가로 막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짖밟히는 것이 은혜일때가 있습니다. 오히려 하늘문이 열리는 귀한 통로가 될 것입니다. 이런 순간에 자신의 자아보다...하나님의 은혜를 더 갈구한다면 하나님의 응답의 문은 더 크게 열리게 될 것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딸의 아픔을 통해서 자신의 자아가 무너져 버린 사람이었습니다. 어떠한 이유로 고통받든지...그 아픔을 통해서 자아와 자존심. 체면이 무너져 버린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칭찬하는 믿음을 가질수 있는 마음밭이 더 빨리 만들어 질수 있을 것입니다.

 

네번째, 모압의 이방 선지자 발람에게서 배우는 교훈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평지에 진쳤을때, 모압왕 발락은 발람을 찾아 갑니다. 발람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날 밤에 여호와께서는 발람에게 모압왕 발락에게 가지고 말고,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분명하게 거절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축복한 백성이라고 말씀하셨고, 그 뜻을 돌이키실 생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발람도 처음에는 알아 들었습니다. 그러나, 모압왕 발락이 더 많은 재물과 권세로 유혹했을때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따라가지 말라고 했는데 따라갑니다. 발람이 타고 가는 나귀의 입을 열어서 발람과 대화까지 했지만...발람의 눈이 재물과 권세에 이미 눈이 어두워져 버렸습니다. 우리의 모습일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선을 그어 주실때가 있습니다. 하지 말라고 명확하게 말씀 하실때가 있습니다. 그러나...우리는 수많은 타협안을 들고 나옵니다. "그런데요...하나님" "이번 경우가 좀 다르지 않나요?""이번 만큼만...""상대가 이렇게 나오는데..."등등...하나님의 뜻에 반해서 타협을 하려고 할때가 있습니다. 영안이 열려 있으면 분명히 보이겠지만, 자신의 욕심과 탐욕이 있을때는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각에 사로 잡혀서 듣고 싶은것만 들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각에 동조 해 줄 사람을 찾으려고 합니다. 바른 말 하는 사람이 부담스럽습니다. 특수한 상황이라고 자꾸 변명하려고 합니다. 위로 받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거절하셨는데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 있을때 몇번 더 confirm해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실것입니다. 그런데도 듣지 않으면 심각한 결과가 올수 있습니다. 발람은 재물과 권세에 눈이 멀어서 하나님보다 모압왕 발락의 비유를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연약한 사람을 따라가면서 온갖 술수를 부립니다. 나중에 결국 여호수아의 칼에 죽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심각한 결과가 오기전에 몇번 기회를 주시겠지만...듣지 않는다면...그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올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이유없이 거절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를 보호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거절하실 때가 많으실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대로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면 한치 앞도 못보는 우리이기에...치명적인 웅덩이에 빠질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다른 길로 인도하실때...그 길이 보호하시는 수단이 될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길이 열리는 통로가 될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유없이 거절하시지 않습니다. 거절에는 뜻이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분별입니다. 하나님의 뜻인데도 어두움의 영이 가로 막기에 기도로 꿇고 나가야 하는것인지...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기 위해서 철저하게 차단하시는 것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뜻이라도 우리가 더 정결하게 되고, 준비될때까지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이 덜 되어서 하나님께서 기다리시기 때문에 당장은 거절하시는 것처럼 보일수 있습니다. 또한,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우리의 믿음과 마음 중심을 저울질하고 싶으셔서 위장된 거절을 하실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할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분명하게 알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