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를 걷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119)
베드로는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을 보면서 자신도 물 위를 걷고 싶어 했습니다. 예수님도 승락하셨습니다. 그리고, 물 위를 걸었습니다. 예수님만 바라볼 때는 물 위를 걸을수 있었지만, 풍랑을 쳐다 볼때는 두려움때문에 물에 빠져 버렸습니다. 물과 풍랑이 문제가 아니라...자신 안의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과 풍랑은 실상이지만, 어떻게 보면 보이지 않는 내면의 두려움이 더 강한 Key를 가지고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보이는 것 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큰 영향력을 미칩니다. 비슷한 아픔을 겪더라도 거기서 오는 상처와 두려움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어느 누구나 지나간 아픔은 크게 느껴집니다. 거기에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문제는 두려움과 상처... 그 자체가 아니라 이것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 더 큰 문제입니다. 우리 마음을 다스리지 못할때, 예수님이 앞에 계시더라도 물 밑으로 빠지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풍랑과 파도를 잠잠하게 하기보다는 우리 안의 내면의 그릇과 믿음의 분량을 더 크게 만드시는데에 집중하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풍랑은 인생에서 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겨내는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 오더라도 감당할수 있는 마음의 태도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그 어떠한 어려움이 오더라도 이길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 안에서 깊이 뿌리 내리길 원하십니다. 때때로, 비록 쉽게 넘어지고, 물 밑으로 쉽게 빠진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은 언제나 손을 내밀어 주십니다. 다시 일으켜 주십니다. 넘어질 수 있습니다. 다시 일어나면 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일어나기만 하면 또,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그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베드로처럼 물 위를 걷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영혼들처럼 예수님과 함께 고난 위를 걸어 보았습니다. 고통과 아픔 속에서 빠져서 허우적 거릴때도 많았지만, 예수님이 일으켜 주셨을때는 고난 위를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때는... 원치 않아도 고난 위를 걷게 되었습니다. 오직 한길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넘어질때도 많았지만, 가장 큰 어려움은 고난 그 자체 보다도, 마음 속의 두려움, 불안, 강팍함, 어두움...이었습니다. 같은 고통이라도 믿음과 소망이 있을때는 다시 걸을 수 있었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부어 주시는 은혜가 있을때는 고통속에 있다는 것조차 못 느낄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때에야만 마음을 다스릴수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고난과 고통에 지배를 받는것이 아니라, 다른 영혼들을 위해서 함께 중보 할수 있었습니다.
고난 위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면서 많은 것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첫번째, 연단으로 자신의 모습이 생각만큼 크게 변화되지는 않았습니다. 내면과 성품의 변화를 누구 보다 원했습니다. 주님을 닮고 싶었습니다. 연단과 훈련이 있으면, 엄청난 변화가 있을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수없이 많은 고난의 시간을 지나 보았지만, 내면이 그다지 변화되지 않는것 같았습니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그다지 크게 변화되지 않는것 같습니다. 때로는 실망 스럽기도,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곧 알게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큰 변화는 없었지만, 하나님 앞에 빨리 반응하는 모습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실수도, 죄도 범하지만... 하나님 앞에 빨리 돌이키게 되었습니다. 반응의 속도가 빨라 졌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볼수 있는 눈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연단을 통해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티끌이 아니라 자신의 들보를 볼수 있는 영안입니다. 빨리 돌이키는 태도와 자신의 모습을 먼저 살펴 보는 영적인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훈련에서 오는 열매입니다. 앞으로도 얼마나 많이 변하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성령께서 빠른 시간에 하나님 앞에서 반응하도록 계속 일하고 계십니다. 성령께서 일하실때마다 부끄러워집니다. 후회가 아닌 회개의 영을 부으시기 때문입니다. 얼굴이 뜨거워져서 견딜수가 없을때가 있습니다. 이전에는 몰랐는데...어느 순간부터 "이게 내 모습이구나..." 깨닫게 될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큰 은혜중의 하나가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을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 보는데서 시작하는 것은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두번째, 고난은 종교의 영으로 부터 많은 부분을 보호하게 해 줍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마귀의 영이 종교의 영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인지, 종교의 영이 하는 것인지 구별이 안될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의 영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무기로 사용합니다. 종교의 영이 역사할때, 자신은 철저하게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며, 상대방을 순종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영적인 강박관념에 사로 잡히게 됩니다. 늘 거룩과 성결로 포장하려고 합니다. 자신의 실제 모습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이 아닌 모습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입술에서 넘칩니다. 그러나, 삶이 되지는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려고 하고, 억압하려고 합니다. 두려움을 가져다 줍니다. 자신의 말대로 하지 않으면 벌을 받을수도 있다고 하면서, 자신이 하는 말이 하나님으로 부터 왔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듣는 사람이 제대로 분별하지 못할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밀어붙이니 가까이 있는 사람도 혼동스럽기 마련입니다.
종교의 영이 미치는 영향력은 무섭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에 악영향을 가져다 줍니다. 모두를 영적으로 메마르게 하고, 죽여 버립니다. 아주 서서히...질식하게 만듭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종교의 영의 영향력 아래에 있습니다. 말씀과 진리에 대해서 제대로 배우게 되고, 하나님의 긍휼한 마음을 가지게 될때...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함께 하실때, 종교의 영으로 부터 비교적 자유로울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두려움이 아니라 평안으로 감싸 안습니다. 위로와 격려가 지속적으로 함께 합니다. 온유와 사랑이 있습니다. 진정한 자유가 함께 합니다. 영이 훨훨 날아 다니도록...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도록 도와 줍니다. 감사와 찬양의 눈물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기계적이지 않습니다. 관습적이지 않습니다. 어떠한 테두리에 가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영에 이끌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자신을 모습을 보게 될때...회개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보다 사랑하려고 합니다. 자신은 더 허물이 많은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넘어져도 다시금 일으켜 세워주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에 다른 영혼들이 넘어져도 또 격려하며 하나님께 함께 나아가려고 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있는곳에는 종교의 영의 세력이 약화될수 밖에 없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철저하게 보게 하시는 이유중의 하나입니다.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영혼을 자유하게 해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번째, 막다른 길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보는대로 판단합니다. 눈에 보이는 좋은 것을 붙잡고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게 전부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더 좋은 것이 없을듯 하기 때문입니다. 연단가운데, 하나님은 항상 길이 없는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한치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그러한 길. 가고 싶지 않았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지만...살려달라고 애원하면서 간절하게 매달리는 것만이 할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막다른 길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문이 조금 열려서 또 나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들을 채워 주십니다. 그동안 가졌던 생각들을 조금씩 내려 놓게 됩니다. "안 죽는구나...또 길이 있구나. 도저히 못 갈것 같았었는데, 가 보니깐 또 다른 길이 있구나." 하나님의 비젼과 계획은 막다른 길에서, 전혀 생각지 못했던 시간에 응답될 때가 많습니다. 인생의 최정상이 아니라 가장 어둡고 처절한 시간에서 문이 열립니다. 지금 막다른 길에...길 없는 길에 서 있는것 같다면...육적으로는 한없이 답답할수 있지만, 하나님앞에서는 또 다른 기회가 만들어 지고 있는것입니다. 하나님은 물댄 동산을 처음부터 주시지 않으십니다. 황무지가 물댄 동산이 되도록 하십니다. 황무지에서 예수그리스도의 피와 사랑이 심겨질때... 에덴 동산과 같이 아름다운 예수의 정원이 될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이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최상의 믿음 표현입니다. 감사와 찬양이 없는 곳에서는 응답이 드딥니다. 기적과 이적을 볼수 없을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으로 일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감사와 찬양...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자신의 문제에 개입하도록 만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절대로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일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문이 열리는것을 보게 될것입니다. 고난 위를 걸으면서 생각지 못했던 귀한 만남이 계속 예비 되어 있었습니다. 길 없는 곳에서 문이 자동으로 하나 둘씩 열리는것을 경험할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걸어 주시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네번째, 고난과 고통은 하나님의 지혜를 가져다 주는 통로였습니다. 전 참는 사람이 아닙니다. 급한 사람입니다. 생각한것이 있으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막기 시작하셨을때 할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곳곳마다 큰 산과 장애물이 가로 막았습니다. 하나님께 옮겨 주시도록 부르짖었습니다. 아무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정면 돌파하면서 계속 지혜를 구하게 하셨습니다. 막막할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말해야 할지...무엇을 행동해야 할지 모를때가 많았습니다. "하나님...절벽에서 떨어집니다. 정말...떨어집니다. 갈곳이 없어요. 붙잡아 주세요. 건져 주세요." 하지만, 하나님은 동문서답을 하십니다. 거의 선문답하시는 느낌이었습니다. "이겨내라. 내가 함께 한다. 내가 너로 이겨 내게 하리라" 피하고 싶었는데, 하나님은 늘 제 생각과 다른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정신이 잠시라도 쉴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머리가 빙빙 도는 느낌...생각의 생각. 나중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의 수많은 연단과 고난이 하나님의 지혜를 얻는 통로가 된다는 사실을요. "하나님...지혜를 주세요. 하나님의 지혜를 허락해 주세요." 그런 기도를 통해서 하늘에서 뚝 하면서 떨어질줄 알았는데...하나님은 인생에서 거칠것을 다 거치게 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인생의 보물 창고에는 하나님의 지혜라는 열매가 채워 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많은 부분이 부족합니다. 계속 엎드려 있을 뿐입니다. "왜 이길을 걸어야만 합니까? 제가 이 길을 안 가고 싶어서 미리 그렇게 애원하고 하나님께 간구했는데...왜 이렇게 힘들게만 하십니까?" 그 길은 하나님의 풍성한 지혜, 통찰력, 분별력과 연결되어 있는 큰 통로였습니다. 그 통로의 이름이 고난이었습니다. 연단이었습니다.
다섯번째, 풀무불의 시간이 상처를 치유하도록 했습니다.그리고, 치유하도록 했습니다. 어린시절부터 아픔이 많았습니다. 슬픔이 많았습니다. 위로 받고 싶었습니다. 포근하게 기대고 싶었습니다. 어른이 되면 달라지겠지...조금만 시간이 흐르면...하나님께서 그런 시간을 주시겠지...기대했던 10대가 있었습니다. 20대. 30대가 지나가면서 훈련의 강도는 더 강해졌습니다. 이제는 좀 풀어 주시겠지...하면서 40대를 맞이 해 버렸습니다. 연단 중의 또 훈련...부족하기 때문에, 연약하기 때문에 받는 그런 시간이었지만..."이제 마지막이겠지" 하면서 나아가 보면 또 다른 어려움이 와 있었습니다. 평범한것이 부러웠습니다. 별난 길을 걸어 왔기 때문입니다. 정상적인 시간이 부러웠습니다. 그러나, 쉽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남들에게 평범한것들이 제게는 간절히 부르짖어야만 하는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하나부터 열가지가 그랬습니다.
이젠 마음을 좀 쉬고 싶은데...마음이 좀 편안했으면 하는데...제 마음의 깊은 소원이었습니다. 풀무불의 시간...그 뜨거움 속에서 제 모습을 보고, 또 보게 하시고...회개는 커녕 알면 알수록 좌절만 겪고 넘어 질 뿐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받아온 상처가 문득 문득 떠오르면서 자기 연민에 빠지던 20대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더 강한 어려움과 연단이 오면서...그런 아픔 조차 떠올리면서 슬퍼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상처까지 되돌아보는것 조차 사치처럼 느껴졌습니다. 불안과 두려움, 정서의 큰 아픔...이러한 것들이...더 큰 어려움을 통과하면서 빠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뜨거워서, 너무 힘들어서 하나님께 이 시간을 통과하게 해 달라고 부르짖다 보니...어릴때부터 받아 왔던 상처와 아픔이 기억속에서 점점 작아 지기 시작했습니다. 희미해져 갔습니다.
하나님은 따뜻하고 온유한...섬세한 손으로 마음을 만져 주실때도 있지만... 마음 속의 깊은 상처를 다루실때 더 큰 어려움과 고난을 통해서 쓴뿌리를 뽑아 내시는 방법도 있습니다.
마귀가 환난속에 집어 넣으려고 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날개 그늘은 더 크게 느껴집니다. 하나님께서 붙잡으시는 강도가 더 강해집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결코, 작지 않은 기적입니다.
상처와 아픔이 많아서 삐뚤어지고, 강팍해 질수 있는 기질의 사람이 어느 순간, 하나님의 은혜로 아픔을 치유하는 사역을 하게 하신것입니다. 연약함을 겪어 본 사람이 그 아픔을 알 것입니다. 인생의 큰 좌절을 느껴본 사람이 위로 할수 있을 것입니다. 단돈 1불 때문에 고민해 본 사람이 가난의 아픔을 이해할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낮아 지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있습니다. 영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던 그 한가지 이유. 영혼 때문입니다.
여섯번째, 바랄수 없는 곳에서 기대하게 하십니다. 연단의 시간에는 마귀가 춤을 춥니다. 정말 이상하리 만큼 되는 일도 안됩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별 어려운 일들이 다 생깁니다. 넋이 나갈 정도입니다. 정신을 놓을 정도입니다. 어느 순간까지는 기도하면서 할수 있는대로 손을 써 봅니다. 사람에게 허락하셨던 모든 방법과 수단을 다 사용해 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어려움이 올때는...그냥 하늘만 쳐다 볼 뿐입니다. 그런데...이 시간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때는 이미 끝 난것입니다. 길이 없습니다. 이미 포기했지만...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모르는 시간입니다. 그런데...기도하면 할수록 마음이 평안해 집니다. 하나님의 평안이 감싸 안습니다. 내가 이렇게 있어도 될까 싶을 정도로...마음이 평안해 집니다. 하나님을 바라 보는 사람들이 고난의 끝에서...더 이상 인간적으로 나아갈수 없는 시간에 느껴지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금까지와 달리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일하실거야. 길을 여실거야. 문을 여실거야. 하나님께서 준비 하셨던것을 손에 쥐어 주실거야. 하나님의 놀라운 방법이 있을거야." 혼자만의 넋두리가 아니라...하늘에서 넣어 주시는 생각과 마음입니다. 깊은 믿음이 생깁니다. 마음 속의 생각이 정리가 됩니다. "이제는 완전하게 내 손을 떠난 문제야. 하나님이 하셔야 해. 이젠 내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이야..." 하나님의 기대감이 채워지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막연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실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기대감이 비젼이 되어서 열리게 될것입니다. 그냥 헛되게 고난을 주시지 않습니다. 이유없이 고통을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기대감은...현실속에서 이루어질 일을 믿음의 눈으로 먼저 보는것입니다.
반대로... 고난과 아픔, 연단은 영혼 속에 쓴뿌리도 많이 생기게 합니다. 피해의식, 열등감, 좌절, 실패에서 부터 오는 슬픔, 낙심...삐뚤어진 생각, 부정적인 Mind, 온전치 못한 인간 관계,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 단절, 물질에 대한 집착, 애정 결핍, 정서적인 불안감, 우울증, 정신적인 타격과 상처...등등 쉽지 않는 문제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적과 뜻을 가지시고 연단을 하시지만, 이러한 쓴뿌리와 쓴열매들은 우리의 영,육,혼에 반드시 자리합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돌이키시는 그 시간에 많은 부분이 회복되겠지만, 쓴뿌리로 인한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지...하나님의 눈으로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정해야 합니다. 누구나 상처가 있습니다. 상처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인정하고 하나님께 나아갈때 만져 주실것입니다. 연단의 크고 좋은 열매들도 많지만, 영적인, 정신적인 Side Effects또한 반드시 있습니다. 문제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입니다.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고 부정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큰 허물이 아닙니다. 알아야 치유가 됩니다. 인정해야 빨리 회복이 될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자신을 깨닫고 인정하는데서 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제 모습부터 보고 싶습니다. 깨달아야 저 역시 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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