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하는 삶이 축복의 길을 열게 될 것입니다. (117)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히 11:20)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레 9:23)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마 26:26)
어려울수록 축복해야 합니다. 힘들수록 축복을 심어야 합니다. 오늘, 영육간에 묶여서 꼼짝 못한다고 할지라도 다른 영혼들이 자유로와 지는것을 즐거워 해야 합니다. 자신 보다 다른 영혼들이 잘되는 것을 축복해야 합니다. 그동안 힘들었던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크게 나타나는것을 축복해야 합니다. 깊은 웅덩이에 빠져서 헤매던 영혼이 해방되어서 춤을 출때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 기분에 따라서 축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축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자신은... 어렵고 힘들다고 할지라도... 다른 영혼에게 하나님께서 영육간에 하신 것을 바라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진심으로 축복하고 축하할때...우리 앞에 놓인 축복의 문은 더 빨리 열리게 될 것입니다.
하늘의 원리는 세상과 정반대입니다. 세상은 다른 사람이 잘될때, 자신보다, 자신의 가족보다 더좋은 길이 열릴때...시기.질투하는것이 정상이라고 합니다. 이겨야만 사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지면 패배자라고 말합니다. 정복하지 않으면, 정복당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누르지 않으면 짖밟히게 될거라고 정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원리는 다 주라고 말합니다. 양보하고 용서하라고 말씀 합니다. 손해 보라고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다른 영혼을 축복하고 또 축복해 주라고 가르치십니다.
"곤조"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본어에서 온 말입니다. 고약한 심성을 말합니다.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보는것을 말합니다. 뒤엎고 싶은 심정을 두고 일컫는 단어입니다. 남이 웃고 즐거워 하는 것을 보면 훼방하고 싶어 하는 것을 곤조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눌려 있다가 조금 길이 열려서 잘되는것을 보면 못 견뎌 합니다. 자신은 아직 막혀 있기에 허용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조금이라도 좋아하면...찬물을 끼얹으려고 합니다. 곤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쓴뿌리입니다.
오랫동안 아주 어려운 형편에 갇혀 있는 사람에게서 종종 볼수 있습니다. 혹은, 예전에 하나님께서 환경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셨다가 현재 묶어둔 사람들에게서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크게 세우시기 위해서 영육간에 강한 훈련을 시키는 영혼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볼수 있습니다. 이 시간 동안에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물질도 많이 막히게 됩니다. 아니...숨막힐 정도로 하나님께서 몰아치실때가 있습니다. 내리막 길입니다. 속도가 가파릅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어디로 향하는지...종착지가 어딘지로 모르는채 떠 밀려갑니다. 외롭습니다. 하나님께서 홀로 내버려 두는 시간이라서 그렇습니다. 너무 힘든 나머지 기도조차 힘들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 읽기가 무척 버거울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간은 호흡이 기도인 시간입니다. 매 순간...호흡하고 숨쉬는 순간이 영으로 기도하는 시간일 것입니다. 길을 걸어도...운전을 해도...어딘가를 가도...사람을 만나도...다른 것은조금도 눈에 들어 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제 마음 아시죠. 하나님, 당신밖에 없는것을 아시죠?" "제 상황 다 아시죠? 하나님, 일해 주실거죠? 약속 지키실거죠?" "언제인가요? 하나님께서 일하실 시간이 언제인가요?" "저를 버리신거 아니죠? 저를 끝까지 붙잡아 주실거죠?" "계속적으로 이해 안되는 일만 일어납니다. 마음 둘곳이 없어요...하나님!" 고난 받는 자의 심정입니다. 통곡하는 영혼의 마음입니다.
내리막 길에서 평탄한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더 깊고 깊은 웅덩이에 갇혀 버리는 자들의 심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도...찬양 해야 하는 것도 알지만, 성령께서 돕지 않으시면 힘들어집니다. 모든 것이 못마땅해 집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가장 싫어집니다. 가까운 사람들의 오해도 싫지만...자신이 살아있는것, 숨쉬는것 조차 싫어집니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사람들을 만나도...깊고 아름다운 교제를 하는 것보다...자꾸 부딪히게 됩니다. 대화하면 할수록 삐걱거립니다. 마음 속에서 쓴 뿌리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숨겨진 자신의 깊은 자아가 흘러 나옵니다. 남들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은 숨은 내면의 그림자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대표적인 쓴뿌리가 곤조입니다. 남이 잘되는것을 못 보는 것입니다. 남들이 웃는 것이 싫어집니다. 삐딱한 마음이 그 안에 있습니다. 냉소적이며, 비아냥 거리게 됩니다. 찌푸린 인상과 꼬여진 마음이 섞여서 생각을 지배하게 됩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의 자아가 자신을 이끄는것 같습니다. 자신의 쓴뿌리에 사로 잡혀서 헤어나오지 못하는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어느날...주변에서 힘들었던 사람을 하나님께서 풀어 주실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이 되어서 영적으로 훨훨 날아 다니게 하시고, 육적으로도 막혀 있는 길들이 열려 집니다. 정말 그 사람에게 인생에서 처음으로 Home sweet Home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작지만...포근한... 밝고 아름다운 House를 주셨습니다. 기도의 열매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하나님께서 길을 여서서 손에 쥐어 주십니다. 우연히 힘들어 하던 가까운 사람이 그 집을 방문하게 됩니다. 친하게 지내서 방문을 허락했는데...그 집에 들어 서는 순간...그 사람의 마음이 꼬이게 됩니다. "나는...나는 이렇게 힘든데... 이 사람은? 왜 하나님은 이 사람만 길을 여시고...나는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걸까?" 마음이 뒤틀립니다. 자신도 모르게 내면 속의 쓴뿌리가 흘러 나옵니다. 모든 상황이 미워 집니다. 그 사람의 입술에서..."왜 이런 집을 사셨어요? 좀 더 넓은 집을 사시지? 왜 구석진 집을 사셨어요? 에이...방음 장치도 엉망이네. 계단 올라갈때 삐걱 거리는 소리 보세요..." 그 집을 축복하기 보다...꼬여 있는 마음 속의 진.심.이 솔직하게 입술로 올라옵니다. 서로 서먹해 집니다. 지난 10여년 이상 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얼마나 고통스러워 했는지...잘 알면서... 그리고 도저히 이런 집을 살수 있는 형편이 아닌데...하나님이 주신건데...어떻게 이런 말을 할수 있을까...? 초대한 사람의 마음이 섭섭해 집니다.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수 있습니다. 쉽게 축복해주지 못합니다. 다른 영혼보다 자신이 더 잘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형편은 이런데...이 사람은? 섭섭함과 질투. 시기가 올라와서 그렇습니다. 축복해 주는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자아가 훼방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모습을 반드시 다루십니다. 풀무불 속에서 뽑아 내시고 싶은 우리안의 고멜이자, 사울왕의 모습입니다.
비슷한 어려운 상황에 놓여진 사람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조금 풀려서 비상하려는 사람을 볼때 마음이 편치 않다면...심각하게 하나님 앞에서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마음은 훈련의 시간을 연장 시키게 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훈련이 될때까지 연단을 시키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다른 영혼을 자신보다 높게 여기기를 원하십니다. 자신보다 힘든 영혼이나, 모든 것이 풀려서 비상하는 영혼...모두 다 주님 마음으로 축복할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또, 다른 예도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힘들어질때는 다른 사람과 음식을 먹다가...상대방이 맛있게 먹거나, 그 분위기를 누리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상대방이 못마땅하기 보다...모든 상황이 싫어서 그럴수 있습니다. 말 끝마다 말꼬리를 잡습니다. 쉽게 넘어 가지 않습니다. 모두가 웃고 즐거워 하려고 하면...꼭 분위기를 뒤집습니다. 다 좋다는데..."그게 뭐가 좋은가요? 난 잘 모르겠는데요...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난 반대입니다. 난 싫습니다." 다들 좋아하는데 혼자 반대합니다. 혼자 찬물을 껴 얹습니다. 속이 꼬여서 그렇습니다. 아무도 말은 하지 않지만...다들 느낍니다.
곤조에서 오는 문제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어지게 될 것입니다. 멀어 지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될 것입니다. 왜 만나서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마음이 편치 않은데 왜 만나서 교제해야 하는지 갈등할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심정은 찬물 한잔을 나눠 마시더라도...마음이 편한 것을 좋아합니다. 자신을 세워주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합니다. 위로해주는 사람...자신을 감싸 안아 주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훈련 과정 중에서 곤조...쓴뿌리는 반드시 드러납니다. 마귀의 무서운 전략이 그 안에 숨어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이겨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이겨내야 합니다. 감당해야 합니다. 어려울수록 더 잘되는 사람들을 축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모든 것이 형통할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와 장소, 상황과 형편에 상관없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축복하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육적으로 감사한 일이 있을때, 눈에 보이는 무엇인가가 있을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사람들도 다 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축복은...자신에게 무엇이 있어서가 아니라...이미 하나님을 소유하고 있기에... 하나님의 구원을 누리기게... 영생의 축복이 함께 있기에...하늘의 비밀이 흘러 넘치기게 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왕과 귀인 앞에서도 비굴하지 않고 축복할수 있습니다. 야곱이 바로 왕 앞에서 축복했습니다.
시기, 질투에서 오는 곤조는 마음을 삐딱하게 합니다. 부정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합니다. 투정부리는 어린 아이의 모습입니다. 하나님도 영적인 아이가 자랄때 까지 기다릴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곤조가 있는 상태에서 길을 열어 주시면, 다른 사람에게 군림하거나 지배하려고 할수 있습니다. 하나...둘... 더 가지더라도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감사하지 않고 욕심을 더 내려고 할것입니다. 그것이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교만에서 오는 문제입니다.
훈련의 목적은 자아 깨뜨리기 입니다. 자신을 비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만 집중하는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영혼의 아픔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자신이 다른 영혼의 기도의 짐을 져 주는 것입니다. 함께 아파하는 것입니다. 함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상황과 환경에 상관없이 함께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진정한 축복은...자신이 상대방의 기도의 짐을 짐 져 주는 것입니다. 다른 영혼들이 하나님으로 영육간에 회복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다른 영혼을 높이는 것입니다. 내면에 자아 대신에 다른 영혼에 대한 진정한 축복으로 채울수 있는 그릇이 될때...그 때부터는 큰 축복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축복을 유통하게 될것입니다. 축복의 물댄 동산이 되기에 하나님도 더 막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형통의 수문을 열어도...다른 영혼들에게 흘러 가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기도의 열매가 다른 영혼에 대한 축복으로 연결될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부어 주셔도 자신을 지킬수 있게 될것입니다. 축복하는 삶이 축복의 길을 열게 될것입니다.
욥의 고난의 가장 마지막 시간에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한가지가 있었습니다. 욥의 세 친구들에 대한 축복 기도였습니다. 용서였습니다. 수소와 수양의 제물로 여호와께 나아갑니다. 욥은 이 세 친구들이 고난 가운데 얼마나 거친 말로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 깊이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고통 가운데 있는 욥을 위로하고 세워주기 보다 정죄하는 말과 입바른 말로 마음을 찢었습니다. 말은 맞지만...고통가운데 우매한 말로 욥의 영혼을 힘들게 했기에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중보를 요구하셨습니다. 욥은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축복의 기도였습니다. 그 축복의 기도가 하늘 문을 열었고, 욥의 고난을 돌이키기 위해서 욥이 할수 있었던 순종의 제사였습니다. 욥이 고난을 돌이키기 위해서 하늘을 향해서 부르짖으면서 하나님의 시간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축복의 문이 열리기 바로 직전에...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들을 용서하고...축복했습니다. 축복의 중보는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의 문을 여는 천국의 열쇠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그 천국의 열쇠를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첫번째, 할수 있는 대로 축복의 말을 심어야 합니다. 기뻐해도, 슬퍼해도... 이 시간은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입술로 하는 말을 우리는 기억하지 못할수 있어도,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축복은 축복으로, 불평은 불평으로 각자의 머리위에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입술의 불평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기다려야 했습니다.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그 시간이 무려 40년이었습니다. 그후,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여호수아의 이스라엘 백성은 온전한 순종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무엇보다 입술을 지켰습니다. 평안을 심을때, 그 평안을 빌어준 사람의 머리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축복도 마찬가지 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 하늘 문을 여는 가장 빠른 지름길입니다. 축복할수 있는대로 다른 사람을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영혼 사랑의 첫걸음입니다. 마음의 강팍함이 사라질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에도 흡족함이 있을 것입니다. 욥은 세친구들에게 축복을 빌었습니다. 원수를 원수로, 상처를 상처로 갚지 않았습니다. 그 빌었던 축복이 세 친구들에게도 임했고, 욥 자신에게는 더 크게 임했습니다. 하나님은 마르지 않는 축복의 근원입니다. 크고 넘칩니다. 부족하지 않습니다. 내가 아닌 우리 모두에게....나보다...다른 영혼을 축복할수 있을때...하나님은 우리를 더 크게 축복하실 것입니다. 축복 받을 마음이 이미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축복의 통로로...
두번째. 축복의 습관은 존귀의 자리에 앉게 합니다. 축복하는 것을 무엇보다 사모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이기적이었으며, 탐욕적이었던 야곱은 어릴때부터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합니다. 에서에게서 장자의 축복을 훔칩니다. 기도를 해도 자기 중심입니다. 자기 고향으로 안전하게 돌아오게 하시고, 그 시간 동안 먹여 주시고, 안전하게 하시면...하나님으로 인정하겠다고 여호와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가 미숙하고 어리지만 기쁨으로 받아 주십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야곱의 중심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야곱을 열심히 연단하시고, 훈련하십니다. 나중에는 아내들을 축복하는 야곱이 됩니다. 더 많은 자녀를 주십니다. 열두 아들을 축복합니다. 더 큰 대가족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애굽으로 내려 갈때 70여명의 대가족을 이끌고 나아갑니다. 거부가 됩니다. 야곱의 축복의 습관은 바로왕 앞으로 인도합니다. 바로왕 앞에서 섰을때, 여호와의 이름으로 바로를 축복합니다. 대단한 영권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축복의 근원이 될것입니다. 어디를 가도 축복을 빌어 주는 사람이 되게 됩니다. 하나님이 높이십니다. 자신을 이기적으로 축복하길 원했던 야곱이 하나님의 열심으로 바로왕을 축복하는 자리에 까지 올라갑니다. 축복하길 기뻐하는 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축복이 존귀입니다. 존귀의 자리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에게 축복을 빌어주는 사람과 가까이 하고 싶습니다. 그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말씀을 아멘으로 화답하고 싶어합니다. 축복은 사람의 비유를 맞추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며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어느 곳에 가던지 환영받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입술로 선포하는 모든 축복이 그대로 이루어 질것입니다.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이 함께 하기에 성령께서...강력하게 일해주십니다.
세번째,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축복해야 합니다. 항상 부드러운 마음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지만, 어렵습니다. 마음에 갈등, 불평, 불만이 올라올때는 강팍해지기 쉽습니다. 감사와 찬양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영적 상태를 하나님 앞에서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보호 장치입니다. 여러가지 상황에서 영적인 상태와 수준을 지키기 위해서는 감사 뿐만 아니라 다른 영혼을 축복해 주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자기 안의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부분, 다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 자기의 의, 교만...이러한 부분을 깨뜨리는데는 다른 영혼을 축복하는말과 마음이 자신의 내면을 지키는 유용한 수단이 될 것입니다. 진심어린 마음이 들지 않더라도 입술로 계속 축복하다 보면 축복의 마음이 들게 될 것입니다. 축복의 말이 마음을 채워 넣을 것입니다. 다른 영혼의 아픔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함께 매달리게 됩니다. 어느 순간, 다른 영혼이 잘되는것이 자신의 일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삶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마귀가 미워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네번째, 축복하는 태도가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을 더 넘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름부으심이 필요합니다. 기도와 사모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목적이 바로 정립 된다면 하나님께서 더 부어 주실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름 부으심을 사모합니다. 그러나, 그 기름부으심이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 쓰여 질때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기에...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기름 부으심이 끊어지기도 합니다. 반대로 더 상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혼을 향한 불타는 마음이 있을때 그렇습니다. 다른 영혼들의 형통함을 진심으로 구할때 하나님은 더 부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다른 영혼을 주님 마음으로 축복할수 있다면 하나님은 아낌없이 더 부어 주실것입니다. 그 기름 부으심은 영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 해당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은 제 2의 사도행전의 역사를 가져 올 것입니다. 오순절 다락방의 뜨거운 기도가 필요합니다. 또한, 다른 영혼을 위한 간절한 축복의 태도는 제 2의 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영육간에 일어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데는 기름 부으심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다른 영혼을 자신보다 더 축복하는 마음을 가질때 하나님은 많은 영역에서 더 부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Win-Win 전략입니다.
다섯번째, 현재의 시간에 축복하는 것은 미래의 시간에 대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오늘의 축복의 말과 태도는 내일을 위한 것입니다. 미래 지향적입니다. 입술과 마음 중심에서 흘러 나오는 축복은 하나님을 기대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말과 행동을 싫어하십니다. 오늘 갇혀 있더라도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하나님 하실 일을 기대하길 원하십니다. 믿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그 기대의 표현이 영혼들 사이에서 축복의 말로 나타납니다.
오늘날의 축복의 말이 조그마한 씨앗이 되어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이삭때에도, 야곱때에도 그랬습니다. 훗날...그 축복의 씨앗이 모세의 때에 가서 2-3백만의 거대한 이스라엘 민족이 되었습니다. 여호수아의 시대에 그 축복이 이스라엘 영토로 나타납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에는 열방중의 강국이라는 축복의 열매로 만들어 주십니다. 오늘... 하나님앞에서 선포하는 그 축복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다양한 영역에서 미래의 시간에 열매 맺습니다.
천국의 열쇠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서로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미워할수록, 분노가 올라 올수록 서로를 더 축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축복의 기도를 더 아름답게 만드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합력하여서 선을 이루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원수 갚는 것 이상의 놀라운 보상이 있을것입니다.
미래의 시간은 곧 옵니다. 오늘날, 믿음으로 미래의 시간을 볼수 있기를 원합니다. 축복하는 말과 기도로 미래의 시간을 먼저 만들기를 원합니다. 거대한 영적 항공모함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준비되고 있습니다. 하나님만을 기대합니다. 서로를 축복할때 하나님의 영광이 크게 나타날 것입니다. 모세때에 하나님이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축복하셨습니다. 훗날, 그 제자들이 초대 교회를 세워 나갔습니다. 예수님의 축복이 사도들의 사역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미래를 보고 예수님께서 축복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선포한 축복대로...사도행전에서 성령께서 일하셨습니다.
오늘... 이러한 아름다운 축복의 열매가 우리 모두에게 맺혀 지기를 함께 축복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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