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JM 칼럼 - Prayer Changes All Things. (108)]
하나님을 믿어도 정해진 운명이 있는 것처럼 느껴 질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타고날때 부터 좋은 가정에서 좋은 환경을 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는 것 마다 부모와 주변의 연줄을 통해서 많은 도움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부러울수 밖에 없습니다. 교회에서 기도를 하더라도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물론 육적인 축복만을 누리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러한 사람을 볼때 마다 자신이 작아 보일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은 생명걸고 오랫동안 기도해도 쉽게 응답받지 못한 일들이, 옆에서 타고난 복을 누리는 사람들은 전화 한통화로, 아니면 부모의 도움으로 별로 어렵지 않게 문제가 해결되는것을 봅니다. 전지 전능 하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신이 참 초라 하게 느껴질때가 있습니다. 몇년을 기도해도 응답이 눈에 보이지 않을때 그러한 갈등은 더 심해 질수 있습니다.
하나님...하나님...부르짖지만. 가끔은 우리 눈에 힘있는 사람들의 말 한마디, 그러한 사람에게 잘 보였을때 오는 도움이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어느 정도는 틀린 말은 아닐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부러울수 있을 것입니다. 하는 것마다, 계획 세운 것마다 형통하게 다 잘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다지 기도를 하지 않아도, 하나님을 찾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성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순간에 우리 마음에 드는 생각은 이미 운명은 정해져 있고...아무리 기도 해 본들 그다지 크게 변화 되지 않을것 같은 생각이 들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것 또한 자신의 운명이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니,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라고 말씀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 문제로 기도하는 것은 세속적이며, 인간적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불우한 환경, 쉽지 않은 고난의 환경, 아프고 힘들어서 더 이상 나갈수 없는 길들, 저주 받은 운명처럼 느껴지는 꽉 막혀 있는 인생의 문들에 서 있는 사람은 이런 말들이 참 아플수 있습니다. 어디서 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알면 풀려고 노력이나 하겠지만, 그 출발점 조차 모를때가 있습니다. 알더라도 불가항력처럼 느껴지는 무거운 환경...자신의 손으로 쉽게 바꿀수도, 뱡향을 바꿀수도 없는 것을 알때 깊은 좌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럴지라도 우리에게는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운명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길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인생의 길을 하나님의 은혜로 바꿀수 있습니다. 물론 쉽지 않은 처절한 부르짖음의 시간이 있을것입니다. 생각보다 치열한 영적 전쟁이 있을것입니다. 사탄도 놓아 주지 않으려고 발악할 것입니다. 주변의 환경도 생각처럼 쉽게 변화되지 않을수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여전히 가시 역할을 할수 있을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로 바꿀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운명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열심으로 방향을 바꿀수 있습니다. 이러한 길에서 인생의 파도도 높을수 있고, 죽음의 시간같이 느껴지는 인생의 깊은 굴곡을 느낄수 있겠지만... 마음의 중심을 정하고 하나님께 계속해서 의뢰하며 의지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놓지 않으십니다.
인생 역전은 누구에게든지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좁은 문입니다. 조금 기도한다고, 조금 하나님께 의지한다고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굴곡의 길처럼 느껴질수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저렇게 기도하는데도 인생의 문이 왜 안 열릴까? 하나님을 잘못 믿는것은 아닌가? 조롱도 할수 있고, 기도하며, 무릎 꿇다가 자포자기 하는 심정에 이젠 끝났다고 생각되는 그런 시간도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모릅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고 할지라도...영적인 세계에는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도로, 영적으로 심었던 영적인 뿌리가 어디까지 깊이 내려 졌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오늘,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지만, 여전히 별일 없다고 쉽게 좌절해서는 안될것입니다. 어떠한 영적인 열매가 현실 세게에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가지가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 몇년을 기도하고, 생명 걸고 하나님께 매달렸지만, 고난과 아픔이 오늘도 여전히 찌른다고 할지라도...영적 세계에서는 이미 무딜대로 무뎌 지고, 그 힘을 잃은 종이 호랑이 처럼 변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기도를 시작할때 영적인 세계에서는 큰 풍랑이 일어납니다. 현실의 세계에서는 금방 알수 없습니다. 그러한 영적인 눈을 가진 사람은 현실에서 받는 응답이 없더라도 영적인 세계의 큰 역사를 미리 알고 하나님을 움직이려고 합니다. 우리가 오늘 하는 말들이 영적 세계에서 우리 자신을 어떻게 묶고 푸는지 알기에 말을 조심합니다. 축복과 감사의 말을 합니다. 영적인 세계에서 이러한 말의 능력이 큰 권능으로 나타납니다. 위기가 기회로 되는 영적인 통로의 역할을 할때가 많습니다. 아무도 알아 주지 않더라도 영적으로 심는 여러가지 수고들이 하나님의 시간에 놀랍게 나타납니다. "이럴수가...이럴수가..."
우리가 몰랐을뿐, 그동안 영적인 거목으로 자라 왔으며, 엄청난 영적인 능력의 가지들이 뻗어 있었던 것입니다.
영적인 흐름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대한 지혜도 함께 가지게 됩니다. 현실 세계는 영적인 세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신을 둘러싼 영적인 상태를 파악하려고 합니다. 어떠한 부분이 육적으로 자신이 할수 있는 영역이며, 어떠한 부분이 하나님께서 일하셔야 하는 부분인지 알아가려는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하는 지혜입니다.
기도는 4차원의 영적 세계를 움직이는 능력의 통로입니다. 기도와 금식외에는 하나님을 움직일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으로 쉬지 않고 일하시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부르짖는것외에는 없습니다. 운명처럼 느껴지는 처절한 인생도 기도로 변화시킬수 있습니다. 도저히 움직이지 않을것만 같은 환경도 기도로 새롭게 만들수 있습니다.
기도는 알라딘 램프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이기에 목적과 마음 중심이 함께 따라야 할것입니다.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다면 기적과 기적은 끊이지 않고 일어나게 될것입니다.
운명처럼 느껴지던 사람의 인생이 대역전처럼 바뀐 사람이 있습니다. 야베스입니다. 야베스에 대한 기록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단 몇줄에 기록된 야베스의 인생을 통해서 적용할수 있는 영적인 Tip이 있습니다.
첫번째, 야베스는 고난을 타고난 사람이었습니다.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의 어머니가 난산의 진통을 통해서 야베스를 낳은것 같지만...야베스가 태어났을때 그에게 주어진 환경이 만만치 않았던 사람 같습니다.
도저히 낳아서 제대로 키울수 없는 환경에서 야베스는 태어 났습니다. 무엇 하나 변변하지 않은 사람... 왜 태어 났을까? 왜 나만 이럴까? 다른 사람의 인생은 저렇게 복된데...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힘들까? 그런 고난의 사람이 바로 야베스였습니다. 어쩌면 어머니로부터도 출생의 축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사람... 그의 타고난 환경은 고난과 역경의 환경.
모든 것이 엉망이었던 환경이었던것 같습니다.
두번째, 야베스는 거기서 기도를 배웠습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아무것도 할수 없는 환경...자기의 힘으로 할수 있는것이 별로 없는 환경에서 야베스는 지혜로운 선택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께 기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아무것도 손에 쥔것도 없고, 할수 있는 것이 없었지만...그는 기도를 배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가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기도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려운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아뢰어 가로되..." 자기가 처한 환경과 아픔, 고난과 고통을 아뢰는것이 기도입니다. 힘든것은 힘든대로, 아픈것은 아픈대로...하나님께 솔직히 올려 드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기도 하지 못한다고 하는 사람은 여전히 자기 힘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해야 할 분량은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교만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는 내가 할수 있다. 이 정도는 내가 하는게 낫다 라는 생각이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할수 있는 분량조차도 범사에 하나님께 아뢰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더 많은 역사들이 일어나게 될것입니다. 야베스는 지혜로운 선택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앞에 나아가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셨던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을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일들, 이적과 기적, 하나님의 역사들...야베스는 그러한 일들을 자신의 인생에 launching하기로 결심하고 기도의 통로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세번째, 기도는 마음의 중심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원컨대..."
기도는 마음속 깊은 소원들이 흘러 나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세상적인 축복을 받고 싶은 세속적인 소원에서 부터 시작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체험과 영적인 원리를 알아가면 알아 갈수록 성령께서는 기도의 제목을 바꾸십니다. 세속적인 부분에서 거룩한 기도 제목으로 바꾸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함께 기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야베스는 마음의 소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올려 드렸습니다. 그 소원이 세속적인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지는 하나님만이 아실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안에서 우리 자신이 알것입니다. 같은 것을 구해도 마음 중심이 제대로 하나님께 정립되는것이 중요합니다. 그 또한 하나님이 하실것입니다. 고난가운데 있었던 야베스는 하나님이 꼭 붙잡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품으로 이끄셨습니다. 야베스안에서 기도를 시킨 분도 성령이셨습니다. 아뢰고, 또 아뢰게 하셨습니다. 조그마한 기도의 물방울이 야베스를 둘러싼 악한 환경을 무너뜨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음 중심을 올려 드리는 기도였지만, 그 또한 하나님께서 야베스와 함께 기도를 심으셨습니다. 응답하시기 위함입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이 있습니다.
네번째, 성령께서 이끄시는 기도는 반드시 축복이 있습니다.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축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문을 여셔야만 축복이 따를것입니다. 지금 주어진 그 어떤것도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부터 온것입니다. 야베스에게 기도를 가르치신 하나님께서는 복에 복을 더 하사...라고 계속 아뢰게 하십니다. 시편 1편도 여호와 앞에서 복있는 자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난 받는 자는 역경의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기도를 배우게 됩니다. 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만을 추구하고 갈망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야베스는 하나님을 만나는 복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야베스 안에서 기도를 시키셨습니다. 복에 복을 더하사...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구하고 또 찾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비젼을 허락하십니다. 지금 도저히 꿈꿀수도 없고, 상상할수도 없는 비젼을 허락하십니다. 지경을 넓히시는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사람의 힘으로 할수 있는것을 기도하지 않을것입니다. 생각과 상상을 넘어서는 지경을 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야베스에게 지경을 넓혀 주기를 원하셨기에 그 기도를 심게 하셨습니다. 먼저는 영적인 지경이 넓어 지게 될것입니다. 수많은 영적인 깨달음이 있을것입니다. 영적인 능력과 권세가 있을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밖에 없는 사람이 되게 될것입니다. 진정한 영적인 지경은 그 어떠한 시간에도 하나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육적인 지경도 함께 넓어 지게 될것입니다. 야베스는 이러한 기도를 심고 또 심었습니다.
다섯번째,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만이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야베스는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셔야 한다는 것을...그 어떠한 노력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할수 없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새겼습니다. 기도의 초점도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절박했던 시간에 하나님의 강한 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 야베스였습니다. 처절하고, 고독하고, 비참한 운명의 시간을 바꿀수 있는 이는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음을 야베스는 알았습니다. 그 분을 주님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먼곳에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과 가장 가까이에 계신 하나님, 자신의 인생의 주님으로 야베스는 하나님을 인정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도저히 변화되지 않을 것 같은 환경과 운명같은 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완전히 변화되는 것입니다. 야베스는 하나님의 도우심의 축복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도로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여섯번째, 하나님은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이 고통받길 원치 않으십니다.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야베스는 환난이 싫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가 포기하고 인생은 그런것이라고 받아들이는 시점에 야베스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난과 역경에 끊임없이 기도로 저항했습니다. 벗어 나고 싶은 의지가 있었습니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되겠다 라는 생각이 마음 중심에서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 기도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새롭게 만들고 있는 야베스였습니다. 하나님 역시 하나님의 사람이 고난가운데 있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연단일때는 어쩔수 없이 그럴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인생의 중심입니다. 또한, 십자가의 인생의 원리는 부활의 시간이 반드시 있습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 부활없는 십자가는 없습니다. 시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하나님의 사람은 때가 되면 무거운 인생의 십자가를 내려 놓는 시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십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부르짖어야 합니다. 환난 때문에 근심했던 야베스는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시시각각 근심에 눌리고 인생의 무게에 넘어져야 했지만, 끊임없이...쉬지 않고 하나님께 이 무거운 짐들을 내려 놓게 해 달라고 아뢰었습니다. 이러한 기도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일곱번째, 기도하는 인생에는 반드시 반전이 있습니다. 어느 시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간에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인생의 반전과 역전을 허락하십니다. 무거운 짐들을 한순간에 내려 놓게 하시는 시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하나님이 우리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시는 시간이 반드시 있습니다. 야베스를 통해서 보여 주십니다. 우리에게 그런 일들을 일으키고 싶으시기 때문에 야베스를 통해서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그 시간부터 인생 대역전이 시작될것입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것... 가보지 못했던 길들을 새롭게 걷게 될것입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것 이상으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왜 이렇게 고난이 길까? 왜 이렇게 오랫동안 아프게 하실까? 하지만,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지경이 넓어지게 될때 그 이유를 알게 될것입니다.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야베스를 높이고 또 높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야베스를 세우셨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존귀하게 보실뿐만 아니라 결코 누추하게 하시지 않습니다. 응답의 때가 될때,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세상가운데서도 존귀하게 만들어 버리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오랫동안 무시당하고, 업신여김을 당하는것을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사역과 연단의 때는 어느 정도 이런 일이 있을수 있지만... 끝까지는 아닙니다. 하나님을 찾고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존귀의 축복이 함께 하게 될것입니다. 야베스에게는 이러한 축복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기도로 모든것을 바꿀수 있습니다. 기도의 통로를 통해서 인생의 대역전이 시작될수 있습니다. 믿음의 기도가 이 모든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은 야베스를 찾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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