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Weekly칼럼(51-100)

기다림의 영성...이스라엘의 형통 (97)

Joseph Lee 목사 2013. 10. 31. 06:03

 

 

기다림의 영성...이스라엘의 형통 (97)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 (요삼 1:2-4)

 

하나님 안에서의 형통을 믿습니다. 그 형통함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형통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계획하는 모든 일마다 성공하는 개념과는 많이 다릅니다. 우리는 고난이 없고, 아픔이 없는 그런 시간을 꿈꿉니다. 우리가 계획하는 모든 일이 잘 진행되어지는것을 형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러한 형통을 허락하시는 시간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형통을 경험하기 이전에 영적인 형통을 먼저 경험하게 하십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볼수 있는 믿음, 상황에 요동하지 않는 굳건한 마음 중심,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우선 순위, 하나님과 영혼에 대한 간절한 마음... 이러한 영적인 형통함이 먼저 입니다. 땅에 속한 축복도 중요할수 있습니다.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하늘에 속한 신령한 축복은 훨씬 더 중요합니다. 믿음으로 먼저 살아야 하는 의인의 모습을 먼저 가르쳐 주십니다. 영적인 축복이 진정한 형통의 시작입니다.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 주시지 않으면 하늘에 속한 축복이 보이지 않을것입니다. 중요성을 깨닫지 못할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누구보다도 당신의 자녀가 하나님 안에서 영육간의 축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다 주시고 싶어 하십니다. 문제는 우리입니다. 우선 순위가 마음과 몸에 깊이 새겨져 있지 않다 보니 쉽게 흔들려 버립니다. 어느날은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다가, 어떤 날은 쉽게 Down되어 버립니다. 요동합니다. 평상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의 방법이 살아서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에게 무엇보다 하나님으로 채우고 싶어하십니다. 하나님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한 원리는 기다림을 통해서 이루어 질때가 많습니다.

 

기다림...어떠한 연단보다도 견디기 힘든 하나님의 훈련 방법입니다. 1년을 기다리는것도 힘이 드는데...10년 또는 20년을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게 하는 경우는 말할것도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기다림의 사람이었습니다. 약속하신 아들을 25년동안 기다려야 했습니다. 결코 원하지 않았지만...아브라함에게 정하신 길입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우리가 원한다고 가고, 원치 않는다고 안 가는 그런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걸어가게 하시면 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그의 길을 그렇게 정해 두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믿음의 아버지로 세우시기 위해서...그의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은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기다리는것이 믿음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기다릴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동행하셔야만 기다릴수 있습니다. 기도 하는것도 성령께서 도우셔야 하겠지만, 하나님의 시간까지 기다리는 것도 성령께서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묶어 두십니다. 기다리게 하십니다. 그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것 같지만, 내면에서 겪는 갈등은 어떤 고난보다도 큽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비젼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수많은 생각과 갈등으로 고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밖에서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것 같아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다리는 사람의 심정은...온 마음이 다 타 들어가는 느낌입니다.

 

이삭은 외로움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라가 일찍 죽고... 사라의 독생자, 이삭은 깊고 짙은 외로움 속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날이 그날 같았던... 지루하고 외로왔던 이삭이 40세가 되어서야 아내 리브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기뻤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후, 20년이 더 지나서야 리브가의 복중의 태를 열어 주셨습니다. 야곱과 에서입니다. 하나님이 이삭을 위한 응답의 시간을 그렇게 정해 두셨습니다.

그 기다림에서 배웠던 이삭의 영성이 야곱으로 흘러 들어 갔습니다.

 

기다림의 영성...이스라엘의 형통.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셨던 아브라함이었지만, 이 기다림의 시간중에는 하나님이 침묵하셨습니다. 언약을 하시고 아브라함으로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으로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며, 아브라함을 통해서 큰 민족을 만들어 주시며, 열방들이 복을 받게 되는 그러한 축복의 근원으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기다림은 갈등을 가져 옵니다. 많이 지쳤을것입니다. 나이는 점점 들어가고 하나님의 약속은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남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아브라함에게는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아들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간절히 원하고, 기도해도 하나님은 침묵 하실 뿐이었습니다. 그의 나이...75세때 약속하셨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계속해서 침묵하셨습니다. 85세가 되었습니다. 마음이 초초해졌습니다. 아내 사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그 마음의 갈등은 인간적인 방법을 가져옵니다. 사라의 여종,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같은 연약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10년의 기다림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10년 동안, 겪어야만 했던 믿음의 갈등과 고뇌가 무척 깊었을 것입니다.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 마음을 결코 이해하기 힘들 것입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종, 다메섹 엘리에설을 상속자로 세우고 싶었습니다. 자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10년을 기다려도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자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이 태어났습니다. 이스마엘이 약속의 응답인줄로 생각했지만, 또 아니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아들처럼 생각하는 남종도, 여종의 태에서 나온 아들 이스마엘도 하나님의 응답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집안의 장래가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기다리라고만 하셨습니다.

그 기다림의 끝이 언제 인지...또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실지 전혀 언급조차 없으셨습니다.

 

기다림은 사람의 힘을 빼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자아를 죽이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수많은 갈등 속에서 낮아질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계획대로 되는것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할수 없기 때문에 기다릴수 밖에 없습니다. 자존감도 낮아지고, 자아도 산산조각 나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믿었던 방법, 자존감, 자신의 방법, 의지했던 사람과 철저한 단절이 이 시간에 일어납니다.

 

기다림의 응답은 결국 마른뼈가 되는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서 마른뼈로 만들고 계십니다. 풍성하고 윤택한 시간이 아니라 세상적으로 아무 쓸모 없고, 별볼일 없는 그러한 마른 뼈로 만들고 계십니다.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나이 100살 즈음에... 그 시간이 되어서야 내년에 아들을 보게 될것이라고 다시 한번 약속하십니다. 25년을 기다렸던 아브라함은 지칠대로 지쳤습니다. 웃음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창 17:17)

 

오랜 기다림의 시간 뒤... 하나님의 응답의 시간이 가까이 왔을때는 자신에 대해서 쓴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 시간일 것입니다. 아무런 인간적인 가능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할수 있는 일도 아무것도 없고, 설령 하나님이 약속하시더라도 그것이 가능할까? 라는 의문이 강하게 드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의 시간은 반드시 옵니다.

 

기다림의 시간은 성령의 기름부으심의 통로가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회복의 Key입니다. 에스겔 37장의 마른뼈가 하나님의 군대가 되는것이 그렇습니다. 아무런 가능성이 없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먼저 만들어 버리십니다. 가능성 Zero...하나님만 바라보았는데 더 이상 갈 길이 없고, 사방의 모든 문들이 다 막혀 있다면...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시는것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방법이 잉태되고 있습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방법을 Open하게 됩니다.

 

사람의 가능성은 문제를 일으킬때가 많습니다. 눈에 보이는대로, 자신의 생각대로...하나님의 Confirm없이 행했을때...쉽지 않은 대가를 지불해야 할때가 있습니다.

사람의 방법이었던 이스마엘은 이삭이 태어 났을때 15살이었습니다. 육적인 아들, 이스마엘이 믿음의 아들, 이삭을 희롱하고 괴롭힙니다. 하갈과 그 아들은 함께 쫓겨가지만, 이스마엘의 자손은 훗날 계속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히게 됩니다.

우리는 한치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할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영적인 GPS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한발자욱도 나아가기 힘듭니다. 기다림 없는 인생은 조급한 결과를 가져 올때가 많습니다.

 

기다림의 시간 동안에는 육적인 형통이 별로 없을수 있습니다. 우리 계획대로 되는 것이 별로 없을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방법대로 할수 있다면 하나님의 약속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러한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성공과 축복은 커녕 이 시간... 눈앞에 펼쳐 지는 길이 황당할수 있습니다. 무엇을 하라는건지...하늘만 멀뚱 멀뚱 쳐다 보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다림의 시간동안 배우는 영적 원리는 엄청납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축복과 영적인 원리를 주시려고 육적으로 묶어 두시는 시간입니다.

 

사람의 열심으로 잠시 성공할수 있습니다. 우리의 방법으로 조금은 나아갈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과 도우심이 없이는 쉽게 넘어 질것입니다. 육적인 이스마엘의 또 다른 결과는 고통일 것입니다. 지금은 모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는 조급함의 열매가 나중에 인생의 문제가 될때가 많습니다.

 

아무나 기다리게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허락하실 것입니다. 기다림은 우리를 비우고, 하나님으로 채우는 시간입니다. 그만큼 영적으로 형통해지는 시간입니다. 영적인 가치를 Body Memory로 만드는 시간입니다. 땅에 속한 축복에 대해서 자신을 지킬수 있는 능력을 주는 시간입니다. 넘쳐도, 부족해도...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쳐서 순종할 수 있도록 만드는 훈련이 이 시간동안 치열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이러한 기다림의 시간에는 하나님의 약속 뿐만 아니라 기다림 뒤에 맡기실 소명과 사명에 대한 Key가 담겨져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눈앞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이 시간을 통해서 나중에 맡기실 일에 대한 영육간의 훈련을 미리 다하고 계십니다. 그 시간이 되어 보면..."아...이 일을 위해서 이렇게 훈련을 받았구나...이런 계획이 있으셔서 이렇게 미리 가르치셨구나"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것입니다.

 

기다림의 시간동안 많은 부분을 부족하게 하실 수 있을것입니다. 이른비, 늦은비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반대로, 어느 시점에 가서는 갑자기 넘치도록 부어 주실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자신을 쳐서 절제하고 자제하는지 보려고 하나님께서 저울질 하는 시간일수 있습니다. 정말 조심해야 할 시점은 부족한 시간이 아니라 넘치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 목이 뻣뻣해지고, 자신의 방법이 다시 살아 날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 라는 그릇이 빚어 질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기대해 봅니다. 정금같이 나오는 모습이 어떨까하는 소망도 생깁니다.

이 시간 동안에 영적인 원리도 많이 배우고, 영적 전쟁도 많이 했을것입니다. 어쩌면 상당한 은사와 능력, 말씀과 인생의 원리, 사람들을 보는 눈, 통찰력과 분별력도 생겼을것입니다.

 

<기다림의 과정중에서>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쳤을 수도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Balance입니다. 영적 세계의 모든 것을 아는것처럼 착각하면 오만입니다. 자신이 Something인것 처럼 생각될때는 어쩌면 더 이상의 기름부으심이 없는 영적인 가뭄의 시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영적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생명령이 넘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사랑이 시작됩니다. 그 생명력의 시작은 하나님과의 사랑에서 시작합니다. 말씀과 기도를 넘치도록 해도...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역을 해도, 섬겨도...그 어떠한 일을 해도 생명력에서 부터 오는 사랑이 가장 중요합니다.

 

기다리는 것은 우리를 지치게 만듭니다. 마음을 딱딱하게 무감각하게 만듭니다. 당연히 지치고, 웃음도 사라질수 있겠지만...하나님께서 기다림 이상으로 원하시는 것은 기쁨과 생명력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2:1-4)

 

사도바울이 3차 전도 여행 가운데 가장 온 힘과 열정을 쏟아 부은 곳이 에베소였습니다. 3년을 사역했습니다. 마술과 아데미 신전이 그 도시의 중심 문화였지만, 바울의 사역으로 인해서 마술사와 주술의 힘이 쇠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을 통해서 수많은 기적이 일어 났습니다. 바울의 손수건을 가져다 얹기만 해도 질병이 나았습니다. 또, 두란노 서원을 통해서 2년을 가르쳤고, 수많은 제자들이 만들어졌습니다. 믿음직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붙잡혀서 가이사랴와 로마에서 각각 2년씩 구금 됩니다.

그 사이에 에베소 교회는 엄청난 영적 전쟁을 경험합니다. 니골라당...이단의 세력이 교회를 어지럽히기 시작합니다. 거짓 사도들이 일어나고, 악한 자들이 교회를 시끄럽게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에베소 교회는 이 거대한 영적 전쟁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잘 이겨내게 됩니다.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까지 모두가 너무 지쳐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에베소 교회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칭찬해 주십니다. 거짓사도와 가르침을 배격한것을 칭찬하십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첫사랑을 잃어 버린것에 대해 책망하십니다. 처음 행위를 가지지 않으면 촛대를 옮겨 버리시겠다고 하십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력으로 채우시기를 원하십니다. 힘든것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더 돕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가장 참기 힘들어 하시는것은 사랑이 메마른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치열한 영적 전쟁과 기다림을 통해서 너무 많이 지쳐 버렸습니다. 메말라 버렸습니다. 그런 에베소 교회를 다시 한번 권면하고 계십니다.

 

얼마나 오래 기다려 왔던지...상황이 각자 다 다를것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과 환경에 있든지 하나님은 첫사랑의 회복을 강조하십니다. 첫번째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거기에서 생명력이 다시 흘러 넘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수많은 영적 은사를 받고, 능력이 나타나더라도 하나님과 영혼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께서는 촛대를 옮기실 만큼 고민하실 것입니다. 거기에는 예수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형통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면서 받게 되는 영적인 형통함에서 시작될것입니다. 비록 오래 기다린다고 할지라도 세상이 감당할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넘치게 되어서, 첫사랑의 황홀함이 살아서 움직인다면...곧 육적인 형통도 시작될것입니다. 세상이 상상할수 있는 수준보다 더 높은 영육간의 형통의 축복이 시작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