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Weekly칼럼(51-100)

영적 대수로 공사 (95)

Joseph Lee 목사 2013. 10. 31. 05:59

 

 

영적 대수로 공사 (95)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을 고치셨더라" (대하 30:20)

"유다 온 회중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이스라엘에서 온 회중과 이스라엘 땅에서 나온 나그네와 유다에 거한 나그네가 다 즐거워 하였으므로 예루살렘에 큰 희락이 있었으니 이스라엘 왕 다윗의아들  솔로몬때로부터 이러한 희락이 예루살렘에 없었더라 그 때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서 백성을 위하여 축복하였으니 그 소리가 들으신바 되고 그 기도가 여호와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 상달하였더라" (대하 30:25-27)

<josephlee0212@gmail.com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믿습니다. 모든 인생들을 향하신 놀라운 계획이 있다고 믿습니다. 거룩한 지성소 안으로 부르신 모든 영혼들을 향하신 소명과 사명, 목적을 가지고 계심을 압니다. 모든 사람들의 인생의 길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생의 발걸음을 인도하신다고 할지라도, 개개인의 운명이 기계처럼 정해져서 움직여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전지 전능하셔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고 할지라도, 오늘 이 순간, 하나님은 최선을 다하셔서 한 영혼의 인생을 이끄시고, 최선의 방법으로 도전하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모든 인생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 기계처럼 정해진 길로만 가야 한다는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예정과 운명론은 완전 다른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격적인 선택을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그 선택을 도와주시고, 늘 인격적으로 대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의 반응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섭리하시고, 인도하시는것은 분명합니다. 그러한 인생의 길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도전, 그리고 우리의 믿음의 반응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오늘, 비록 힘든 길을 걷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안에서 내일을 바꿀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어떠한 영혼도 비참하게 살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실패와 가난, 질병속에서 허덕이기를 원하시는 인생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러한 인생을 돌이키고 싶으셔서 계속 도전(challenge)하십니다.

"너의 인생이 이렇게 정해졌다...내가 정했으니...너는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애써봐야 헛수고가 될것이다..." 이렇게 말씀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사랑하는 자야...네가 지금은 이렇게 척박하고 힘든 길을 걷고 있다고 할지라도, 내게로 돌이키기만 하면...내가 반드시 건지리라..." 우리 하나님은 그러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의 반응이 중요합니다.

 

영적 세계에서의 영적인 흐름은 생각 이상으로 복잡합니다. 각개인에게 영적으로 묶여 있는 부분이 생각 이상으로 많을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우리의 모든 죄악을 용서하시고 믿음으로 구원의 길을 제시하셨음은 분명합니다.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 영적인 사탄의 모든 공격이 사라지고 한꺼번에 풀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죄사함을 받은것과 영적인 공격이 없다는 말은 다른 말입니다. 이땅에 살아가는 동안, 주님을 따라가면서 사탄의 불화살을 피할수 없을것입니다. 영적 세계에서 각자 어떠한 부분에 영적으로 많이 묶여있는지 세심하게 살펴 보는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했던 부정적인 말들에 묶여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늘 이래서 안돼. 저래서 문제야...투덜하는게 습관인 사람은 많은 경우에 말 그래도 묶여 있는것을 봅니다. 조상때 부터 내려온 악한 습관들이 자손 대대에까지 영적으로 영향을 미치는것을 종종 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만 끊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가정은 조상때부터 도박과 빚때문에 고통을 받았는데 몇 대에 걸쳐서 동일한 일이 벌어 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는 심각한 질병이 계속 유전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영적으로 묶여 있는 이유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유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께서 죄를 용서하셨다고 할지라도 죄의 결과는 반드시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예수를 믿어도 사탄의 역사가 은혜보다 훨씬 강해서 그런 사람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어도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가지 원인과 이유가 있을수 있지만, 하나님만 그 이유를 아실것입니다.

분명한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신다면 이러한 영적인 큰 흐름을 바꿀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육간에 묶여 있는것을 풀수 있습니다. 결코 기계적인 운명론은 주님 안에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구하면 거칠고, 힘든 인생은 반드시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어떠한 척박한 인생의 길을 걷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책임지시고, 새로운 길을 내십니다. 그리고, 평탄한 곳에 세우십니다.

 

각자 걷는 길이 다 다를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같은 사람이 없을것 입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지금이라도 나아가기만 하면, 영적이든 육적이든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실것입니다. 인생이 바뀌게 될것입니다.

 

한 사람이 주님께 붙잡히게 되면 한 사람만 세워 지고 축복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가정이 변하게 됩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은혜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주님 말씀을 들고 일어 났을때, 지역이 변화가 되고, 사회와 나라가 변하게 되는것을 종종 봅니다.

 

영적인 원리가 있습니다. 그러한 변화...묶여진것이 풀려지려면 생명을 걸어야 할것입니다. 평범한 마음 가짐으로는... 될대로 되라고 하는 마음으로는 그 어떠한 변화도 가져 올수 없을 것입니다.

육적인 환경을 변화 시키기 위해서는 영적인 대 변화가 필요합니다. 필수 입니다. 하나님께 왜 응답하시지 않냐고 불평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변화를 먼저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면 잘 믿겠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쉽게 속지 않으십니다. 철저하게 믿음으로 반응하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모습을 올려 드릴때... 하나님께서 영육간에 응답을 주실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다...먼저는 도전 의식이 필요합니다. "이대로는 안됩니다. 우리 가정...이제는 주님과 함께 비상하게 해 주세요. 주님께서 허락하셨던 사업. 주님께서 책임져 주세요. 지금까지 해 왔던 사역의 모습...이대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나아가시지 않으면 전 한발자욱도 나가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은혜를 주옵소서. 책임져 주옵소서. "

현실에 대한 문제 의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과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영육간의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한 인식 없이는 도전이 있을수가 없습니다.

매주, 여러번씩 듣는 말씀을 통하여 개개인의 삶의 변화에 대한 문제 의식을 조금도 느낄수 없다는 심각한 문제 일수 있습니다. 말씀을 읽든, 묵상하든...자신이 어떠한 부분에 깨어져야 하며, 앞으로 주님의 손길에 의해서 어떻게 변화 되었으면 좋겠다는 도전이 없다면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수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거기에는 비젼이 없을수 있습니다.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대로가 좋사오니... 머물러서 잠자고 있는 영적인 상태가 될수 있습니다. 지금 현실의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도전하시는 문제가 무엇일까요? 교회 안에서의 생활에서만 도전을 하시지 않습니다. 내면의 변화에도 중요한 도전을 하실것입니다. 생활 전반에 일어나는 모든 부분, 가정에서도, 비지니스에서도, 사역에서도, 진로와 장래...등등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을 문을 두들기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문제의식을 제기하게 되면 미래를 향해서 꿈을 가지게 됩니다. 현실에 안주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야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젼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것이 목적입니다. 미래의 시간을 위한 계획이 그림으로 그려지게 됩니다.

 

문제의식을 가지면 기도하게 되는데... 처음 겪게 되는 감정이 좌절과 낙심일수 있습니다. 그만큼 과거의 환경, 과거의 틀을 깨는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기도를 오래 심어도 금방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을수 있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얽어 매이던 요소들이 더 힘들게 하는것을 볼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아무런 변화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기도했더니 더 엉망이 되더라... 하나님을 붙잡았더니 더 힘든 문제들이 괴롭게 하더라는 고백이 나올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넘어가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을 믿음으로 넘어 가면 하나님의 큰 영광이 나타나게 될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시종을 우리는 전혀 알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할뿐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것이 우리가 할일입니다.

 

히스기야가 왕이 되고 나서 맨처음 한 일이 제사와 예배의 회복, 성전 개혁과 절기의 회복이었습니다. 온 백성이 하나님께 예물을 들고 나와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왕에서 귀족들, 모든 백성들에 이르기 까지 한 마음이 되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했습니다. 역대하 29-31장에 걸쳐서 하나님은 이러한 히스기야와 백성들의 모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어떠한 태도보다도 더 귀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조상때부터 행해온 우상 숭배, 영적인 타락, 교만...하나님앞에서 패역해 왔던 백성이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모습에 대해서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고 백성을 치유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거룩한 제사와 향기나는 예배가 여호와의 거룩한 처소에 상달되었더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유다에게만 큰 영적 변혁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엄청난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는것이 아니라 열납하시고 기쁨으로 흠향하시는것을 볼수 있습니다.

 

유다의 처절한 과거의 영적 굴레를 벗어나는 일이 히스기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더 이상...이대로는 안된다. 하나님 보좌 앞으로 거룩함과 정결함으로 나아가야 한다" 는 문제 의식과 결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반응하면서 온 백성들에게 도전하기 시작합니다. 백성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백성들도 자의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한마음이 됩니다. 히스기야, 한 사람에게 하셨던 하나님의 도전이 온 백성...그리고 온 나라로 흘러 들어 가게 됩니다. 그 어떠한 육적인 개혁... 사회와 세금, 군사, 법적인 정비를 하기 이전에 하나님을 찾는 일에 열심을 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어리석을수 있습니다. 시간 낭비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영적인 예배에 모든 생명을 걸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러한 예배와 인격적인 태도를 열납하셨습니다.

 

이스라엘 경내의 모든 우상들을 깨뜨리고, 산당과 단을 제하며 각자의 생활로 돌아 가더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영적인 부흥의 바람은 쉽게 꺼지지 않았습니다.

영적인 것도 바람과 마찬가지입니다. 미풍에서 시작된 바람이 히스기야의 영적인 개혁으로 돌풍이 되고, 온 백성들이 한 마음으로 화답하여 태풍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온 백성의 마음 중심에 하나님으로 충만했습니다. 영적인 거대한 물줄기가 무너진데를 보수하면서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의 불순종과 악행, 우상때문에 고통받으면서 생긴 쓴뿌리속에서 낙심하고 좌절하는것이 아니라...패배의식 속에 젖어 있는것이 아니라 영적인 부흥의 바람을 타고 하나님의 보좌로 더 깊이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갈망과 열망...하나님께서 부어주신 뜨거운 은혜였습니다. 살아 있는 믿음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명력이 더 이상 갇혀 있지 않고, 온 민족 가운데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절기를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우상이 깨어졌습니다. 온 백성이 십일조를 기쁨으로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이 넘쳐 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수종드는 사람들이 넘쳐 났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하나님은 형통하다고 표현하십니다.

"무릇 그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 하나님을 구하고 일심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대하 31:21)

 

유다의 영적인 대수로 공사는 한 사람...히스기야가 하나님의 율법에 믿음으로 반응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도 은혜를 주시면서 계속 더 나아가도록 도전하셨습니다. 율법이 선포되고, 성전에는 온 백성의 제사와 예물로 가득찼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찬양과 감사로 넘치게 되었습니다. 불순종으로 얼룩졌던 시대인 사사기 이전...가장 온전하게 순종했던 여호수아 시대의 이스라엘의 예배가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매말랐던 영적인 수로에 생명의 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한번 흐르기 시작한 물은 거대한 물줄기가 되어서 끊임없이 흘러갔습니다. 그 생명력이 우상과 모든 죄악들을 함께 씻기 시작했습니다.

히스기야의 문제 의식...더 이상 이대로 안주 할수 없다고 주님께 기도하면서 가졌던 결단이 온 백성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거룩한 결단은 절대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칩니다. 다른 영혼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끌어 올립니다. 거룩한 제사장이 되게 합니다.

영육간에 복잡하게 얽히고 설켰던 그 당시의 대내외적인 분위기를 영적으로 풀어 보려는 시도는 히스기야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영화가 다 사라져 버린것 같은...다시는 볼수 없을것만 같았던  하나님의 영광이 히스기야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시간, 대외적으로는 무척 혼란스러웠습니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 군대에 의해서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너무 쉽게 무너 졌습니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을 아주 잔인하게 짓밟았습니다. 앗수르로 부터 보호막 역할을 했던 북이스라엘이 무너지면서 남유다는 그 강대국과 마주 대하게 되었습니다. 잔학하고, 잔인한 앗수르때문에 남유다는 두려움에 떨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시간...히스기야는 이 모든 문제를 영적인 회복으로 풀려고 합니다. 군사력 강화보다 하나님께 온 백성이 돌이키도록 생명을 겁니다. 군사력도 앗수르에 비해서 무척 미약했습니다.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의 진정한 개혁은 영적인 대수로 공사에 있었습니다.

온 백성이 여호와를 찾도록 만드는 일...진정한 부흥이었습니다. 무너지는 데를 보수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현실의 문제는 여전히 현실처럼 보였습니다. 높고 험난했습니다. 앗수르의 왕과 군대는 유다에 대한 정복 야욕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히스기야와 온 백성이 회개하며, 제사와 경배, 절기와 말씀의 회복 운동을 펼쳤지만... 눈 앞에 펼쳐진것은...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를 치러 전쟁을 일으킨 것이었습니다. 아주 절묘한 시간입니다.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앗수르왕 산헤립이 유다에 들어와서..." 

그동안 하나님 앞에서 생명걸었던 찬양과 경배의 결과가 눈앞에 펼쳐진 전쟁과 적의 침략인것 처럼 보였습니다. 영적인 부흥이 육적으로 아무런 영향도 못미치는것처럼 보였습니다. 하나님앞에서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세상 일은 별개라는 느낌을 갖게 해 주는 시간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 대수로 공사의 결과는 결코 비참하지 않았습니다. 허무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실망시키는 분이 아니십니다. 결단코 버리시지 않습니다. 책임지십니다. 그러한 상황에도 히스기야와 이사야, 모든 방백과 백성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늘을 향해서 부르짖었습니다. 쉬지 않고 하나님의 보좌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러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산헤립은 계속 협박하고 조롱하였습니다. 하나님까지 비웃었습니다.

영적으로 부흥을 꿈꾸는 백성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 뜨거운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한 천사를 보내서 앗수르의 군사, 18만 5천명을 한 순간에 다 쳐버리셨습니다. 영적인 부흥은 육적인 회복과 보호를 함께 가져 옵니다. 무너진데를 보수하는 영적 대수로 공사는 그 어떠한 육적인 어려움도 다 이겨 내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면 한순간입니다. 시간이 필요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는 능치 못하실 일이 없습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영적으로 무너진데를 보수하는 일이 먼저 입니다. 우선순위를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을 움직이지 않고는 그 어떠한 문제도 우리 힘으로 해결할수 없습니다.

육적인 문제를 하나님과 영적으로 먼저 풀어 보려고 씨름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영적 원리를 깊이 아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쉬지 않도록 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