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Column

그때,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셨을 때, “주여, 여기 있습니다”의 고백을 올려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Joseph Lee 목사 2015. 4. 5. 16:06

■“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마28:16-17)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나서, 제자들에게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의심했습니다. 믿지 않는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에 기적을 베푸실 때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생각의 틀을 깨뜨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이라면… Super Star의 모습을 기대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십자가의 형틀에서 잔인하게 죽으시는 모습에 제자들은 크게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잘하시던 예수님께서 빌라도 총독 앞에서 변명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에 제자들은 실망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 한 마디에 큰 기적이 일어났던 예수님의 사역이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못된 교리로 호도하는 사람밖에 되지 않는 모습에 혼란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미 어떠한 죽음으로 수난을 당하셔야 하는지에 대해서 예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자신들이 듣고 싶은 대로 들었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했습니다. 베드로가 “주여 그리하지 마옵소서” 라며 말리는 말씀을 드리기도 했지만, 제자들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미리 준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붙잡히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시간은 제자들의 모든 생각의 틀을 뒤흔드는 일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의 기적은 믿었지만, 죽으셨던 예수님의 부활은 쉽게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했기 때문입니다. 50일 뒤,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셨을 때, 제자들은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성령님의 인도에 온전하게 내어 드릴 수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내주하시면서, 마음을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부활의 능력은 성령님께서 우리의 고정관념이 된 딱딱한 생각과 마음의 틀을 깨뜨리시는 것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임재하셔서 마음 중심을 붙잡으실 때만 가능합니다. 그때,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셨을 때, “주여, 여기 있습니다”의 고백을 올려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