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Weekly칼럼(101-150)

별보다 더 높고 아름다운 (111)

Joseph Lee 목사 2013. 10. 31. 12:54

[LJM 칼럼 - 별보다 더 높고 아름다운 (111)]

 

"아하수에로 왕의 칠년 시월 곧 데벳월에 에스더가 이끌려 왕궁에 들어가서 왕의 앞에 나아가니 왕이 모든 여자보다 에스더를 더욱 사랑하므로 저가 모든 처녀보다 왕의 앞에 더욱 은총을 얻은지라 왕이 그 머리에 면류관을 씌우고 와스디를 대신하여 왕후를 삼은 후에 왕이 크게 잔치를 베푸니 이는 에스더를 위한 잔치라 모든 방백과 신복을 향응하고 또 각 도의 세금을 면제하고 왕의 풍부함을 따라 크게 상 주니라" (에2:16-18)

 

인생은 예측한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오늘 좋지 않은 일때문에 힘들다가도 내일 갑자기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순간, 좋은 기회가 온 것처럼 느껴지다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서 상황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사람 손으로 해결 할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버립니다. 좋지 않은 일이 갑자기 좋은 일로,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순식간에 축복의 길로 바뀌기도 합니다. 이런 것이 인생입니다.

어느 누구도 인생에 대해서 100%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은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방법과 길은 수만 가지가 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잠잠히 겸손하게 기도 할뿐입니다. 그날이 변함없이 그날 같고... 계속 기대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내일 역시 오늘 같으리라고 생각할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순식간"일때가 많습니다. "갑자기" 예상치 못한 곳에서 길이 열리고, 생각지도 못한 만남이 이루어져서 무슨 일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채 하나님이 급하게 일을 이루실때도 많습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자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내면이 깍여 나가고 성숙해 질때는 육적인 큰 응답과 성장이 없을때가 많습니다. 아무리 허둥지둥 거리면서 바쁘게 뛰어 다녀도 하나님이 막으시면 한발자욱도 못나아 갑니다. 하나님께서 눈물과 기도를 심는 시간으로 허락하셔서 그렇습니다. 사람은 모든 일이 형통할때는 영적인 의미와 원리에 큰 중요성을 두지 않습니다. 깊은 묵상을 할수가 없습니다. 갈등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것이 평안하기에 주어진 시간을 누릴뿐입니다. 그러나, 눈물로 씨를 뿌리는 시간은 매 순간이 갈등입니다. 어느 한 순간도 평안하지 않습니다. 고통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아름다운 응답의 열매를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러한 약속을 가지고 오랫동안 하나님을 바라보는것은 우리 힘으로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길을 함께 걸어 주실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참지 못합니다. 조그마한 인내도 없습니다. 이러한 눈물과 기도는 우리가 심는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함께 심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와 열심은 조금도 없습니다.

오랫동안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대 하는 사람이 겪는 좌절과 아픔은 참으로 클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좌절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회의와 갈등이 있을수도 있습니다. 회개도 감사도 생명걸고 해 보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때 마치 하나님께서 버려 두신것 같습니다.

버림 받은 느낌...그러나, 계속 기도의 자리에 나아갑니다. 지속적으로 은혜를 사모합니다.

버림 받은것 같지만,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리에 있다면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인생은 염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입니다.

오늘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것 같지만, 하나님의 시간이 되었을때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 넘는 기이하고 기묘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순서대로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신원해 주시고, 갚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흘린 눈물은 반드시 보상과 신원이 따릅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는것 같지만, 자신의 수단과 방법이 살아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을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이 더 소중하기에, 자신이 우상이기에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의 입술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보다 불평, 불만이 더 많습니다. 갈등과 회의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마음이 딱딱해져 있습니다. 소망과 희망보다 자신의 욕심에 대한 좌절이 마음 중심을 차지 할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 진정으로 돌이킬때, 하나님을 진정으로 바라 볼수 있을때... 영육간에 희망이 있을것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살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 하시는 인생은 신비로움 그 자체입니다. 걸어 갈수 있는 길인것 같은데 끊어져 있기도 하고, 길이 없는 것 같은데 거기서 탄탄 대로가 펼쳐 지기도 합니다. 중요한것은 우리가 이 모든 것을 모른다고 할지라도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만 신뢰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정확한 분이십니다. 언제, 무엇을 행하셔야 할지 정확하게 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평상시는 방관하시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개입하시기 위해서 최상의 시간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그 시간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크게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서 선을 이루는 놀라운 축복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리 준비하고 계십니다. 여러 민족을 위해서도,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도, 한 영혼을 위해서도 하나님은 미리 준비하고 계십니다.

오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나님은 일하지 않는 분이 아니십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오래되면 오래 될수록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크고 위대할 것입니다.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나아 갈뿐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실망시키시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기도는 처음에는 간구와 필요에 의해서 나아 갈수 있지만, 깊은 기도속에서 신뢰와 평안으로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기도이기에 그렇습니다. 큰 문제들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시는 것을 임재가운데 알게 될 것입니다.

 

위기의 상황은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길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 눈에는 모든 것이 막혀 있지만, 어딘가에서 생각지 못한 문이 열릴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위기의 상황에 놓일때가 참 많았습니다. 분명한것은 여호와를 찾고 부르짖을때는 항상 승리하면서 문제가 해결될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그 어떤 진리보다도 더 확실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살게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바사 나라가 바벨론을 멸망시킨후 초대 왕인 고레스의 마음에 여호와께서 감동을 주셔서 흩어져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 갈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에레미야와 여러 선지자를 통해서 약속하셨던 하나님의 언약이었습니다. 스룹바벨이 Leader가 되어서 1차로 귀환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은 척박했습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허허벌판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미리 예상했던 백성들은 일부분만 귀환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애국심으로, 어떤 사람은 여호와의 약속을 붙잡고 돌아 왔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에서 안정된 생활을 누렸던 많은 백성들은 귀환 보다 바사 나라에 정착하길 더 원했던것 같슽니다. 하나님께서 감동 주셨던 사람은 귀환했지만, 여전히 돌아와야 할 사람은 바사 나라에 남아 있었습니다.

 

고레스와 다리오 왕을 이어서 아하수에로 왕이 들어 섭니다. 포로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은 스룹바벨과 함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재건축합니다. 무너진 예루살렘을 성전 중심으로 재건하겠다는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다리오 왕때 건축이 완성됩니다. 비록 솔로몬 성전 때보다는 초라했지만, 포로 생활 가운데 예루살렘 귀환과 성전의 건축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여호와의 영광을 보면서도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도 모두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지 않습니다. 이방에 정착하면서 번영했던 사람들은 "여기가 좋사오니..."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은 하나님보다 우리를 위한것입니다. 이 시간에 사람의 근시안적인 눈으로는 모든 것이 평안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아하수에로 왕이 들어서서 아말렉 족속, 아각의 후손인 하만이 총리가 되었을때 이스라엘 백성이 전멸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때 항상 위기였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아말렉을 진멸할수 있는 기회를 몇번 주셨습니다. 사울왕때 그랬습니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을때는 오히려 공격당하게 되었습니다. 진멸해야 할 대상에게 진멸당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어 버렸습니다. 고레스 왕때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지 않고 바사나라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오는 진멸의 두려움은 컸습니다. 인간적인 눈에 보였던 번영과 평안이 순식간에 위기와 멸망의 상황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참 크고 놀랍습니다.

여호와께서는 하나님의 언약이 있는 백성이 아주 무너 지는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여호와의 이름이 개입되어 있는 백성이기에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가 있는 하나님의 사람에게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위기 상황이 올것을 미리 아시고,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히브리어로 "별"을 의미하는 에스더였습니다. 하나님의 방법과 대안이 에스더 였습니다. 하만이 권위와 권세로 이스라엘을 핍박하기 이전에 에스더를 아하수에로의 왕후로 궁에 들여 보내셨습니다. 개인의 영화와 영광같았습니다. 에스더도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을 하셨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감사했지만, 곧 알게되었습니다. 하만에게서 이스라엘 백성을 건지시려는 하나님의 방법이 에스더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치 앞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모든 것을 앞서 나가십니다.

 

인도에서 구스지방까지 127 지방을 다스리고 있었던 아하수에로 왕, 왕후 와스디의 갑작스런 폐비로 새롭게 왕후로 간택된 에스더, 왕 다음의 자리를 차지 할 정도로 권력을 가진 아말렉, 아각 사람 하만, 이러한 하만에게 무릎 꿇지 않았던 에스더의 양부 모르드개. 그에 대한 분노로 이스라엘 온 백성을 전멸하고자 했던 하만. 이 소식을 접한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의 태도로 금식하면서 여호와께 나아갑니다. 그리고, 대반전, 민족 운명의 대 역전.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만들었던 오십 규빗의 나무에 하만이 매달리게 되고, 이스라엘 백성을 멸절 하려던 대적들이 일시에 진멸하게 됩니다. 그날이 부림일입니다.

 

이러한 일이 오늘에도 일어 나고 있습니다. 기도해도 당장 응답이 없는것 같지만,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서 에스더를 미리 준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시간과 방법을 신뢰할 뿐입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되었을때는 하나님께서 이런 축복을 왜 허락하셨는지 몰랐지만...하나님께서 하만을 통해서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겪는 어려움속에서 하나님의 방법인 에스더를 각자에게 허락하실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다 이기고 나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셨으며, 어떻게 영광 받으셨는지 우리 눈에 분명히 보여 주실 것입니다. 그 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첫번째, 하나님의 사람에게 그 은혜와 은총이 가장 소중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은혜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공급되는 영육간의 은혜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사람은 어디를 가더라도 감동과 은총이 따릅니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더 따르게 하십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하십니다. 누가 함부러 업신여기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은 존귀한 은총이 함께 합니다. 에스더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유대 민족이 누구인지로 모르는 아하수에로 왕의 눈에 큰 감동을 주셨던 분은 여호와셨습니다. 에스더를 바로 보았을때 깊은 감동과 은총이 따르도록 하셨던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에스더가 이뻐보이고 아름답게 보이도록 만드셨습니다. 세상적인 준비를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만나는 사람과 하는 일마다 돕는 사람이 따르고, 깊은 감동이 함께 하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과 깊은 관계가 있는 사람은 어디를 가더라도 존귀한 자리에 앉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 해결의 중심에 서게 되어 있습니다. 말에 권위가 있습니다. 사랑 받게 되어 있습니다. 각 가정과 자녀들 모두 사모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은혜입니다. 아무리 세상적으로 많은 준비를 했다고 하더라도 가는 곳마다 마찰이 일어나고 미움을 받는다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입은 사람은 가는 곳곳마다 다른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이 함께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더에게 허락하셨던 은총이었습니다.

 

두번째,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때는 특별한 뜻이 있습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되었을 때는 집안과 가정,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할 따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자신을 이 자리에 세우셨는지 에스더는 알지 못했습니다. 왕후가 되어서 얼마되지 않아 하만이 유대 민족을 진멸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에스더가 왕후였지만, 할수 있는 일은 결국 금식과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담대한 마음으로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서 자신의 민족을 구제 하게 해 달라고 간청하게 됩니다. 왕의 부름없이 왕에게 나아가는 것은 죽음에 처해 질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에스더는 자신을 이렇게 높이셨던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의지하며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셨고, 하만이 뒤에서 어떠한 음모를 꾸몄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에스더를 통해서 하나님은 미리 준비 시키셨고, 하만이 거대한 음모를 꾸몄을때, 에스더를 통해서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우리 모두를 축복하시길 원합니다. 그러나, 그 축복 속에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계획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만 잘 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닙니다. 흘러넘치며, 수많은 영혼을 건져 내게 하고 싶으신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이 축복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가 마음 깊이 새겨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위대한 일을 행하실것입니다. 결국 희생과 사랑입니다. 인간적인 모든 것을 손에서 놓을 수 있는 사람에게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세번째,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사람에게 핍박과 조롱이 따라 오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했던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왕후로 앉더라도 우쭐되거나 거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과 태도가 한결같았습니다. 조상대대로 유대 민족의 원수였던 아말렉 족속, 아각의 후손 하만이 무릎 꿇으라고 요구 했을때 모르드개는 생명을 걸고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신만을 높였던 하만, 조상 대대로 여호와의 원수가 되었던 아말렉 사람, 하만에게 무릎 꿇을수 없었던 것입니다. 한번 머리 숙여서 굴욕적인 복종을 했더라면 쉽게 넘어 갈수 있었던 일이 모르드개의 거룩한 순종 때문에 일이 심각하게 꼬이게 됩니다. 모르드개 뿐만 아니라 온 유대 민족이 멸절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은 참 어렵고 힘듭니다. 예배와 기도는 순종하기 위한 Basic일 뿐입니다. 진정한 순종은 생활가운데 매순간 치열한 영적인 전쟁을 가져다 줍니다. 수많은 갈등과 시험, 마음 속에서 요동치는 생각을 이겨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순교와 같을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쉽게 타협해 버리면 될 일들이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핍박과 조롱이 따라오고 큰 환란으로 들어가게 될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운 시간을 잘 넘긴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신원해 주실것입니다. 반드시 건져 주시며, 회복하시며, 올리실 것입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이러한 축복을 누렸습니다.

 

네번째, 기도만이 사람의 마음을 녹일수 있습니다.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고 금식하며 기도했을때 그녀의 마음은 죽음까지 각오 했습니다. 왕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죽음에 처해 질수 있었습니다. 그당시 법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하수에로 왕의 마음에 깊은 연민과 감동을 허락하셨습니다. 오히려 에스더의 청을 들어 주도록 하셨습니다. 말과 설득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녹일 수 없습니다. 오직 기도로만 가능합니다. 사람의 변화도 기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가시와 핍박과 같은 환경도 기도할때 변화될 것입니다. 어느 순간 가까운 사람이 놀랍게 변화되는 것을 보게 된다면 그 배후에는 많은 눈물의 기도가 쌓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줄수 있는 최고의 축복은 배후에서 흘리는 눈물의 기도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어디 가더라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Touch하는 사람이 되게 됩니다. 기도는 영혼을 변화시킵니다. 사람의 마음을 녹일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다섯번째, 하나님 안에서 우연은 없습니다. 그 어떠한 것도 하나님의 손에서 허용되고 허락될때 이루어 질수 있는 것입니다. 하만의 악한 꾀를 마귀가 격동시켰습니다.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인 유대 민족을 다 멸절 시키고 싶었던 사탄의 음모가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마귀보다 하나님이 항상 빠르십니다. 그 어떠한 계획을 마귀가 도모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미리 준비하시고, 예비 하십니다. 하만이 높아져서 오만과 교만으로 음모를 꾀하기 전에 하나님은 에스더를 미리 심어 두셨습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할때, 밤에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던 아하수에로 왕이 역대 일기를 읽는 가운데 모르드개의 공적과 업적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정확한 시간에 아하수에로 왕의 눈에 모르드개가 띄도록 하셨습니다. 하만이 죽이고 싶어했던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의 손에 의해서 존귀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 어떠한 일도 우연히는 없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나아갈때 불행처럼 보이는 일도 축복으로 변하게 될것입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하나님께 순종하다가 목숨까지 위태로와 지는 상황에 놓이게 되지만, 끝까지 하나님만 신실하게 바라 보았던 그들을 여호와께서 결코 버리지 않았습니다. 존귀의 축복으로 그들을 올리셨습니다. 세상적인 우연은 하나님앞에서 은혜의 필연으로 연결되어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서 아름다운 선을 이루게 될것입니다.

 

여섯번째, 악한 환경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무너 뜨리십니다. 유대민족을 위기상황으로 몰고 갔던 하만의 음모는 하늘 높은줄 몰랐습니다. 왕의 조서까지 받았던 하만의 악한 계획은 인간적인 눈으로 보기에는 거의 성사된것 처럼보였습니다. 시간 문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에 전혀 개입하시지 않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조서가 선포되었을때 유대 백성은 울부짖는것 외에는 할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오고...상황은 달라지지 않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조용하고 고요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백성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에스더와 모르드개를 통해서 일하고 계셨습니다. 한치 오차가 없었습니다. 악한 환경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내버려 두시지 않았습니다. 하만의 음모가 오히려 자신과 아들, 자신의 세력들의 머리에 그대로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바라보는 자에게 주어진 가시과 환란은 반드시 무너집니다. 정확하게 하나님은 일하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만의 나무처럼 높고 강한 가시가 많을것입니다. 육적인 눈으로는 아무런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부르짖기만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별이라는 의미의 에스더는 하나님만을 의지하였기에 그 어떤 별보다 높고 아름답게 오늘도 우리 영혼에 새겨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