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olumn(3504회)■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12)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창32:24)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창32:28)
<씨름하다>의 히브리어는 <아바크-אָבַק>입니다. “대항해서 싸우다, 끝까지 싸우다, 서로 겨루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아바크>는 원래 “먼지”를 의미했습니다. “먼지를 다 덮어 쓸 정도로 아주 거칠게, 끝까지 싸우다”의 뜻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과 씨름하는 야곱의 모습에서 <아바크- אָבַק>가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겼을 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과연 하나님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아바크-אָבַק>는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붙잡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코 그 손을 놓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붙잡는 손을 놓지 않고 <씨름>하게 될 때, <내> 안의 육의 속성이 깨어지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수 많은 갈등과 아픔 속에서 <내> 자아가 죽어 가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과 <씨름- 아바크>의 과정을 거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먼지-아바크>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곧, 하나님 앞에서 먼지와 같은 존재, 티끌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내>모습을 깊이 보게 됩니다. <내>안의 가장 낮은 밑바닥의 모습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과 영적인 씨름을 하는 그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기적을 경험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서 진정한 겸손을 깨달아 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는 원래 티끌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주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오늘도... ■Joseph Lee 목사 (http://blog.daum.net/my-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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