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Column

하나님께 부르짖기 보다는 고통스러운 현실에 순응하려고 할 수 있습니다.

Joseph Lee 목사 2016. 12. 18. 17:04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니라"(삿13:1) 사사기의 시대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금방 잊어 버렸고, 자신들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습니다. 하나님께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영적으로 암울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문화를 동경하면서, 그들의 우상을 받아 들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우상을 섬길 때 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기에 찌르셨습니다. 백성들은 고통스럽기에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사사를 세우셔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서 다시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사사 시대 350년 동안의 연속적인 영적인 흐름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빨리 버릴 수 있었던 것도 오직 자신들의 풍요와 평안함에만 초점이 맞춰 져 있었기에 그랬습니다. 어느 정도 편안해 지면, 하나님께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육신이 불편해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사모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을 통해서 흔드셨습니다. 고난의 기간이 길어졌습니다. 삿6장에서는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 7년 동안 붙여 두셨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우상을 섬기자, 삿13장에서 블레셋의 손에 40년 동안 붙여 두셨습니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핍박을 받는데도 백성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습니다. 운명이라고 체념합니다. 하나님은 삼손을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오히려 삼손을 블레셋에게 넘겨 주려고 합니다. "유다 사람 삼천명이 에담 바위 틈에 내려가서 삼손에게 이르되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관할하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같이 행하였느냐"(삿15:11) 우리의 영적인 모습일 수 있습니다. 부르짖기 보다는 현실에 순응하려고 할 수 있습니다. 체념하며 운명으로 현실을 받아 들인다면, 유다 백성 삼 천명과 똑같은 영적인 모습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