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olumn(3850회)■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히9:15-17)
언약의 히브리어는 <베리트- ברית >입니다. “끊는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약속의 증표로 내세웠던 짐승을 절반으로 나눈 데서 유래했습니다. 만일,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짐승의 몸을 나누듯이, 상대방에게 똑같이 해도 된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그 정도로 강한 법적인 효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약속> <언약>의 헬라어는 <디아데케-διαθήκη>입니다. “유언하다, 언약을 세우다, 다시 만들다”의 뜻을 가진 <디아티데마이-διατίθεμαι>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디아데케-διαθήκη>는 상호 간의 계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약속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계약보다 유언에 가깝습니다. 꼭 해야 할 의무가 없는데도 수혜자를 위해서 은혜 주기 위해서 약속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일방적인 은혜였습니다. 죄로 타락한 사람에게 그러한 은혜를 주실 이유가 하나도 없으셨지만,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약속해 주셨고, 그 언약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영생에 대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아담과의 무너진 약속을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다시 세우셨습니다. <디아데케-διαθήκη>는 사람에게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언약>을 하실 수 있습니다. <언약>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디아데케-διαθήκη>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에서 완성됩니다.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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