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olumn(5235회)■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1-14)
홍해 앞에 선 이스라엘은 뒤에서 몰려오는 애굽의 군대를 보았습니다. 눈앞에는 홍해의 막다른 바다가 가로막고 있고, 뒤에는 죽음의 위협이 있었습니다. 그 순간 입술에서 흘러나온 말은 원망이었습니다.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구원받은 백성이 다시 애굽의 종살이의 기억을 그리워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모세의 눈은 하나님께 향하고 있었습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여기서 마음에 깊은 감동으로 다가오는 히브리어 <하라쉬- חָרַשׁ>가 있습니다. “잠잠하다, 침묵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에서 침묵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 사람의 조급함을 내려놓는 거룩한 훈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기대하기에, 그러나 사람이 생각하는 방법과 시간이 다르기에 침묵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홍해 앞에서 필요한 것은 사람의 더 큰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더 빠른 순발력도 아니었습니다. 애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절망감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마음의 소음을 잠재우며 주만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여정에서 앞은 막히고 뒤는 쫓겨오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 그런 시간을 보내는 영혼이 있을 것입니다. 오래 기다려도 변화가 없고, 기도해도 응답이 더딘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마음은 자꾸만 과거로 돌아갑니다. “차라리 그때가 나았을 텐데.”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길이라면 막다른 길처럼 보이는 순간조차 구원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영광이 드러나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하라쉬- חָרַשׁ>의 영성은 여기에서 깊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실 영역을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소란스러운 말과 사람의 조급함, 환경을 먼저 바라보는 두려움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데 영적인 큰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막다른 길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시간입니다. 전쟁의 주체가 바뀌는 순간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시는 것을 믿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크신 영광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도 홍해는 우리의 능력으로 갈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열립니다. 홍해가 열리기 전이 가장 어두울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잠잠해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침묵의 시간이 찾아올 때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길을 준비하고 계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잠잠한 것은 깊은 영성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세미하게 듣기 위해 마음을 집중하는 믿음입니다.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깨닫게 되었던 <하라쉬- חָרַשׁ>의 영성이 오늘도 깊은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두려움이 내면에서 소리칠 때에도 말씀을 붙들고, 낙심의 아픔이 과거를 계속 돌아보게 할 때에도 약속을 따라가며, 하나님께서 문을 여시기 위해 친히 싸우시는 순간에는 사람의 조급함을 앞세우고 싶지 않습니다.
침묵 속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될 것입니다. 기다림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의 길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을 것입니다. 막힌 바다 앞에서도 하나님께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기에, 잠잠히 기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싸우시기에,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여시기에, 오늘도 믿음으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
■Joseph Lee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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