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olumn(5004회)■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 사랑과 그 긍휼로 그들을 구속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사63:9)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5-16)
<체휼>의 헬라어는 <쉼파데오- συμπαθέω>입니다. “함께”를 뜻하는 <쉰- σύν>과 “고난을 겪다”를 뜻하는 <파스코-πάσχω>에서 파생되어, “함께 고통을 느끼다. 깊이 공감하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분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감정적인 위로가 아니라, 사람의 연약함을 친히 겪으신 분으로서의 깊은 공감입니다.
우리를 살펴 봅니다.
“지금 누군가에게 말할 수 없는 아픔의 시간을 지나고 계십니까?
내면에 심히 큰 고통이 있으신가요?
아무도 내 마음을 모른다고 느껴지는 순간을 보내고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고통을 멀리서 바라보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가장 낮은 자리로 오셔서 인간의 눈물과 외로움과 아픔을 몸소 겪으셨습니다. 배신을 당하셨고, 오해를 받으셨고, 깊은 고뇌 속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주님은 내면의 상처를 다 이해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사랑은 멀리서 위로만 하시는 사랑이 아니라, 곁에 서서 함께 짐을 지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바로 <쉼파데오- συμπαθέω>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실 뿐 아니라, 그 고통 속에서 우리를 붙드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어쩌면 상황이 당장 바뀌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고난의 시간은 외면하시는 시간이 아닙니다. 주님이 그 시간 속에서도 놓지 않으십니다.
주님의 사랑은 여전히 우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오늘 제가 많이 아픕니다.”
“주님, 저를 꼭 붙잡아 주세요.”
그 짧은 기도 위에, 함께 아파하시는 주님의 사랑이 머물 것입니다.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
[러빙 Zoom 기도] 무엇을 의지하느냐가 우리의 영성을 드러냅니다 | Joseph Lee 목사 | Loving Wo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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