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Column

[Loving 칼럼] 내면의 성찰 앞에서 - 자기 확신인가, 영적 착각인가: 타르데마(תַּרְדֵּמָה)

Joseph Lee 목사 2026. 4. 12. 18:58

■Loving Column(5056)■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139:23-24)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1-12)

 

우리는 말씀을 대할 때, 자연스럽게 자신을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들에게 대비해서 비추어 보려고 합니다. “베드로의 회복, 다윗의 회개, 호세아의 사랑은 우리가 닮아 가고 싶은 Role Model로 늘 적용되어 왔습니다. 가룟 유다, 사울 왕, 고멜과 같은 인물들은 무의식적으로 우리 자신과 분리된 대상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어쩌면 그들을 나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믿고 싶은 마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자신을 돌아 보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적용이 과연 온전한 자기 인식에 기초한 것인지, 아니면 <타르데마- תַּרְדֵּמָה>와 같은 영적 무감각 상태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히브리어 <타르데마- תַּרְדֵּמָה>는 깊은 잠, 무감각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타르데마- תַּרְדֵּמָה> 깊은 잠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깊은 상태, 즉 깨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충분히 보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을 말씀에 비추어 해석하는 방식 또한 이와 닮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읽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보고 싶은 부분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 역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베드로와 다윗에 자신의 삶을 대입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들을 닮아가고 싶고, 그들이 받은 하나님의 은총을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씀 적용이 반복적으로 한 방향으로만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균형 잡힌 이해라기보다 자기 확증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의 내면은 점차 <타르데마- תַּרְדֵּמָה>의 상태로 한쪽으로 기울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보다 성숙한 신앙은 나는 누구인가를 단정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는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분별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때로 우리는 베드로처럼 믿음으로 결단하지만, 동시에 유다처럼 흔들릴 수 있으며, 다윗처럼 회개하면서도 사울 왕처럼 불안을 붙들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복합적인 내면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깨어 있음의 출발점일 것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특정 인물에 자신을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재 상태를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드러내는 일 인 것 같습니다. <타르데마- תַּרְדֵּמָה>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스스로를 미화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직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쩌면 영적인 교만 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영적인 착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제 자신의 실존이 깊이 변화되고 있는지 조용히 돌아보게 됩니다.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