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olumn(5055회)■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겔37:8-10)
에스겔 37장은 깊은 회복의 장면을 보여줍니다.
골짜기에 가득한 마른 뼈들, 이미 생명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존재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작을 선포하십니다.
<겔37>을 깊이 묵상할 때 마음에 깊은 감동으로 오는 히브리어 단어는 <루아흐- רוּחַ>입니다.
<루아흐- רוּחַ> 는 “바람”이나 “호흡”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영, Spirit”이라는 깊은 뜻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생명, 운행하심, 그리고 회복의 능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환상 속에서 뼈들은 먼저 서로 연결되고, 힘줄이 생기며, 살이 오르는 과정을 보여 주십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아직 생명이 없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영적인 원리를 깨닫게 됩니다. 외적인 형태의 회복이 곧 생명의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의 눈에 겉모습이 갖추어졌다고 해서 참된 생명이 살아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말씀하십니다.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겔37:9)
여기서 영적인 깊은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말씀과 <루아흐- רוּחַ>가 함께할 때 비로소 생명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말씀 선포와 함께, 하나님의 <루아흐- רוּחַ>가 임할 때, 죽은 것들이 살아나게 됩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되돌아봅니다.
혹시 “형태만 있는 신앙”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루아흐- רוּחַ> 흐르는 믿음 가운데 살고 있는지?
내면을 성찰하는 깊은 깨닫음의 여정을 가지려고 합니다.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읽으며,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마치 뼈들이 맞춰지고 살이 붙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춘다면 여전히 생명이 없는 상태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루아흐- רוּחַ>가 깊이 임하셔야 합니다. <루아흐- רוּחַ>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임하시지만, 동시에 말씀 위에 역사하십니다. 에스겔은 자신의 감정이나 능력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그대로 대언하였습니다. 그 순종 위에 <루아흐- רוּחַ>가 임하였습니다.
생명은 인간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말씀에 대한 순종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호흡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미 끝났다고 느껴지는 상황, 회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관계, 낙심과 고통으로 무너진 믿음 위에 하나님의 <루아흐- רוּחַ>의 깊이 임재하시면 에스겔 37장의 놀라운 역사가 오늘도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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